◇ 미코노스의 야경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그리스 섬들은 아름답지만, 섬 사람들은 항상 바람에 신경을 썼다.
바람이 많이 불면 파도가 높고, 파도가 높으면 배가 뜨지 못해 섬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펜션의 주인 아저씨가 선착장까지 차로 태워줬는데 차 안에서 들어올 배를 기다렸다.
그 사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날씨가 흐린 데다 파도가 높아 과연 배가 들어올 수 있을까 싶어 아저씨에게 물었다.

“벌써 20분이나 지났는데, 정말 오늘 배가 들어오는 거 맞죠?”
“오늘 아침에 배가 뜬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현지 사람의 말이니 믿어야 한다.
잠시 뒤 맹렬한 엔진 소리를 내며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우리가 탄 차 앞에 세우더니 유리창 문을 열고 다급한 소리로 묻는다.

“배가 떠났나요?”
난 이 와중에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벌써 떠나버렸는데 어쩌죠?”

라고 말해버렸다. -.-;;;;

차 안에는 키애누 리브스와 닮은 남자 하나가 타고 있었는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늦잠을 자서 배를 놓쳤다는 자책감의 포즈를 취한다.

이 사람이 배를 타려고 하는 사람인가보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말했다.

“아니에요, 농담이에요. 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요.
 저도 그 배를 기다리고 있는걸요.”

그는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환호성을 지른다.
농담했다고 혼날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

선착장 근처에 배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펜션 주인들은 떠나고 우리만 남았다.

키애누 리브스를 닮은 이의 이름은 마오리시오.
칠레 사람인데 유럽을 여행하고 있단다.
배를 타고 소파에 앉아 오랜만에 사용해보는 스페인어로
더듬더듬 이야기를 나눴다.

무엇보다 남미의 여행자가 그리웠던 터라
스페인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마오리시오는 멋진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게 의심쟁이다.
항상 급조심, 급경계,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남미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어쩌면 이해할 수도 있겠다.
남미는 그만큼 위험한 나라니까 말이다.

한번은 경유하는 곳에서 배표를 사는데 표를 사고선 옆의 두 여행사와 비교하고 바가지를 씌운 것을 알게 됐다.
주변의 모든 사람과 선착장 관계자, 심지어는 전혀 관계가 없는 터키의 쿠사다시 항구에서 근무하는 사람까지
조사하고 다녔다. 물론 좀 더 주의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바가지를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미 지나간 어쩔 수 없는 일에 너무 심하게 의심하며 대하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배표뿐만 아니라 버스터미널에서 버스표, 식당에서의 음식값, 심지어
정찰제인 슈퍼마켓에서까지 그런 모습을 이어갔다. 답답했다.

십 년 전 터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주소를 찾지 못해 길 한가운데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터키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
영어를 하지 못했던 그는 말 대신 손짓과 몸짓으로 모든 것을 설명했다. 길을 알려줄 테니 따라오란다.

터키에서 사람을 믿었다가 몇 번의 사기를 당했던 터라 섣불리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라 일단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길을 앞서 걸으며 종종 뒤를 살펴 내가 잘 따라오고 있나 체크해
중간에 다른 골목으로 몰래 빠져나갈 틈도 없었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역시, 내게 돈을 달라는 거였어’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가볍게 악수를 청하고 행운을 빈다는 몸짓을 하더니 그냥 가버렸다.
 
의심의 눈길로 경계했던 자신이 너무 후회스럽고 미안했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길에서 그를 다시 만나 “친절을 베풀던 당신을 의심해서 미안해요.” 라고 꼭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다.

여행은 낯선 사람과의 소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여행에서 누군가를 너무 믿었다가는 이용당하거나 사기를 당하기 쉽다.
그렇다고 무조건 경계했다가는 좋은 친구나 재미난 경험, 행운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항상 그 둘의 균형감각을 지켜나가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는 비단 여행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 미코노스의 상징, 펠리컨과 주민


미코노스(Mykons)
미코노스 섬의 모양은 독특하게 들쭉날쭉 찢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에 얽힌 신화가 있다. 이곳은 오래전 제우스와 자이언트(거인)의 전쟁터였다. 이 시기 헤라클레스(Hercules)는 자신의 부인과 자식을 죽인 속죄로 헤라가 낸 12가지 과제를 풀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로 신들의 골칫거리인 거인을 죽이고 바다에 던진다. 그 거인은 화석이 되어 커다란 바윗덩이로 변해 미코노스 섬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델로스의 왕의 아들인 영웅, 미콘스(Mykons)의 이름을 따 미코노스라 불리게 되었다. 미코노스의 볼거리는 크게 중심 마을인 ‘오라’ 와 해변, 그리고 ‘야간 문화’로 나눌 수 있다. 게이들이 많이 방문하는 섬으로 동성 커플을 볼 수 있기도 하다. 특이한 점은 서울 넓이의 6분의 1이지만 무려 365개의 교회가 지어져 있다.

여행정보
그리스 아테네로 들어가는 직항은 없다. 1회 경유하는 저렴한 항공으로는 네덜란드항공, 타이항공, 터키항공 등이 있다. 미코노스는 그리스 본토에서 비행기 또는 페리로 들어갈 수 있는데 비행기는 올림픽항공과 에게안항공이 있다. 이들 비행기는 그리스의 아테네와 테살로니키, 로도스, 산토리니, 크레타를 연결하는데 여름에만 운행한다. 요금은 시기와 예매 날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편도로 80∼110유로 정도이고, 아테네에서 45분이 소요된다. 페리는 아테네(3∼5시간 30분 소요), 크레타(4시간 40분 소요), 산토리니(2시간 30분 소요) 등을 연결한다. 미코노스는 다른 섬들보다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파도가 높고 바람이 불면 배 운항이 종종 취소되기도 하니 항상 체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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