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비감을 주는 주자이거우의 물빛.

오랜만에 낯익은 이름으로 이메일이 왔다.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는 대런이다.

“잘 지내나요? 한국의 날씨는 어때요? 지금 창밖을 봐요~ 
 생각난 김에 저도 봐야겠어요. 아! 나의 창밖은 전혀 아름답지 않네요.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까지 와요. 그래도 내 생각엔 올해가 당신이 스코틀랜드를 방문하기에 
 가장 좋은 해가 될 것 같아요. 전 이번 여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고,
 잠시 여행한 뒤에 캐나다에서 살게 될 테니 말이에요.”

벌써 4년 전이다. 80일간의 아시아 일주를 했었을 때니 말이다.
필자의 루트는 중국으로 배를 타고 들어가 중국 곳곳을 여행한 후
육로로 베트남, 라오스를 거쳐 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중국의 청두(成都)에서 떠나볼까 회원인 은경과 함께 주자이거우(九寨溝) 여행을 하게 됐다.
호스텔에서 버스표를 예약하고 다음날 새벽 숙소 차량으로 버스터미널에 갔다.

운전사는 매표소로 가더니 버스표를 끊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표를 주며 “오케이?” 한마디를 던지더니 사라졌다.
표가 예약된 줄 알았는데 그제서야 매표소에서 끊어주다니 어이가 없다.

잠시 뒤엔 버스표에 적힌 가격을 보고 또 한 번 놀라게 됐다.
예약비로 준 돈은 110위안인데 버스표엔 78위안이라 써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새벽 픽업 서비스를 해줬다 하더라도 숙박비가 20위안인데,
32위안이 픽업 비용이라면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다.

허탈해하며 버스 플랫폼으로 갔는데 이번엔 세 번째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표의 출발 날짜가 오늘이 아니라 내일로 되어 있단다.
화가 났지만 그래도 오늘 날짜로 표를 바꾸려고 매표소에 갔더니 이번엔 취소비용으로 10위안을 내란다.
이쯤 되자 정말 뒷골이 당겨온다. 옆에는 같은 숙소에서 온 두 명의 서양 남자가 있었는데
이들 역시 황당해하긴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그중 한명이 10위안을 못 내겠다며
“나는 미국 사람이 아니라 영국 사람입니다. 잉궈(英國)야, 잉궈!”라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펄펄 뛰는 모습도 우스웠지만,
중국 사람들이 미국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영국인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울며 겨자 먹기로 표를 바꾸고 에어컨도 없는 낡은 버스의 가장 뒤쪽 자리에 앉았다.
옆을 보니 우리가 예약비로 지불한 금액과 같은 요금의 주자이거우행 쾌적한 버스가 출발하는 게 보였다.
편안해 보이는 여행자의 모습을 보니 다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런 과정을 함께 겪은 두 서양 남자의 이름은 사이먼과 대런이다.
아까 펄펄 뛰던 영국 친구는 사이먼으로 20대 초반에 잘생겼지만 철이 없어 보였다.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대런은 스코틀랜드인으로 점잖고 매너가 좋아 우리들의 호감을 샀다.

◇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대런(뒷줄 왼쪽)과 사이먼(뒷줄 오른쪽),
    뒷줄을 가운데 한국 남자분은 주자이거우에서 만났다.
    그리고 필자(앞줄 왼쪽)와 은경,

자그마치 11시간, 낡은 버스로 굽이굽이 높은 산을 넘고 또 넘었다. 진이 다 빠졌을 때쯤 버스는 우리를 주자이거우 입구에 내려줬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주자이거우 입구는 닫혀 있었고, 국립공원 안에서 숙박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할 수 없이 주변의 숙소를 찾는데 2인실 요금이 140위안으로 어마어마했다. 오늘 하루 일진이 왜 이런가 싶어 한숨을 쉬는데 대런이 제안을 한다.

“숙박비가 너무 비싼데 우리 이렇게 하자. 먼저 우리가 너희 가방을 함께 가지고 호텔에 체크인할게. 그런 뒤에 너희는 투숙객처럼 호텔에 들어와 우리 방에 오는 거야. 그러면 한 사람당 35위안. 어때?”

누가 뭐래도 감사한 아이디어였다. 잠시 뒤 우리는 호텔방 안에서 ‘007작전’의 성공을 기뻐하며 깔깔대고 웃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4명, 침대는 달랑 두 개. 침대가 작지 않아 우리는 한 침대에서 자고, 대런은 사이먼에게 침대를 내주고 바닥에서 잤다. 대런이 그래도 형인데 사이먼은 정말 철이 없다.

다음날, 호텔에 짐을 맡기고 주자이거우에 들어갔다. 이곳이 바로
“황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을 보지 않고, 주자이거우의 물을 보고 나면 다른 물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던 그곳이구나!

대런과 사이먼과는 몇 시간 뒤 첫 번째 다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수정마을을 둘러보다 아무래도 이런 큰 규모의 공원을 하루 만에 본다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한국 남자 한 명을 이곳에서 만났는데 자기가 묵고 있는 집을 소개해줬다. 숙박요금도 15위안으로 저렴한 데다 운치 있는 전통 좡족(壯族) 가옥에서 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대런과 사이먼을 만나야 했다. 이곳에 묵는다고 말하고 함께 맡겨놓은 짐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분명히 첫 번째 다리라고 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버스가 내려가고 해가 질 때까지 말이다. 그날 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별과 반딧불이를 처음으로 봤지만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걱정이 앞섰다.

다음날 아침 불안한 마음으로 마을을 나서는데 앞쪽에 대런이 약속이나 한 듯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역시 어제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기다린 것이었다. 반가운 나머지 은경은 대런에게 달려가서 안기고 깡충깡충 뛰었다. 필자도 얼마나 반가웠던지 하루 만에 이렇게 정이 들 수도 있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4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불현듯 메일을 보내고, 또 익숙하게 받는 나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올해는 대런을 만나러 스코틀랜드에 가봐야 할 것 같다. 

◇ 전통 옷을 입은 좡족 할머니.

주자이거우(九寨構)
쓰촨(四川)성에 있는 국립공원으로 푸른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아름다운 물과
신선이 나타날 것 같은 신비한 매력으로 사시사철 관광객이 넘쳐난다.
1992년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여행정보

주자이거우로 가는 직항은 없고 경유 노선이 있다.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청두까지 간 후 국내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청두까지는 4시간, 주자이거우까지는 50분이 소요된다. 버스로는 청두의 차뎬쯔(茶店子)와 신난먼(新南門) 터미널에서 출발하고 10∼11시간이 걸린다.

입장료는 4∼10월 220위안(학생은 170위안), 12∼3월은 80위안이다. 공원 안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관광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요금은 90위안이다. 필자가 묵었던 공원 내 숙소는 모두 철거되어 지금은 공원 정문 앞의 숙소에서만 머물 수 있다. 요금은 2인실이 60∼200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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