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의 호텔이란 이름의 호스텔,

Hotel Espana~


아침식사 시간이 되면
원하는 메뉴를 돈을 내고 주문하면 된다.
(보통 호텔이나 호스텔은 포함된 경우가 많다)

밥을 먹는데, 내 의자를 누가 자꾸 툭툭~ 친다.

"뭐야? -_-+"

하고 돌아봤더니 아무도 없다.

툭툭치는 진동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오길래 보니,
이런!!!

거... 거북이닷! +.+

아니, 얘가... 왜 물에 안있고
이렇게 호스텔을 돌아다녀...=_=
.
.
.

육지거북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처음 안 나는,
그때 당시 거북이가 죽을까봐 전전긍긍..=_=

일하는 사람에게 얘기했더니
그냥 두란다. 아.. 그냥...그냥 둬야된다. -_-

거북이는 슬금슬금 기어 이번엔 다른 의자를 향한다.



덜그덕~ 덜그덕~

의자 다리 밑으로 기어들어가려는 거북이..-_-;;

이 사람들도 깜짝 놀라 바닥을 보고
또, 놀란다. ㅋㅋㅋ


거북이가 한마리가 아니었어.

동물들이 모두 함께 있으니 좋았다.
나도, 동물, 거북이도 동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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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 입니다

    2010/03/11 00:08
    • 쁘리띠님  수정/삭제

      일상얘기쪽에 쓰는데... 요즘은 배가 불러서(임신)
      잘 못나가네요~ ㅋㅋ 노래 잘하시는데요? +.+

      2010/03/11 00:36
    •  수정/삭제

      비밀댓글 입니다

      2010/03/11 00:54

◇일이 고되지만, 마더하우스 봉사자들의 표정은 항상 밝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결심한 것이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은 인도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자원봉사로 마무리하겠다고 말이다.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콜카타까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콜카타는 5년 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여행자들의 거리인 서더 스트리트도 그대로였고, 낡아빠진 숙소, 심지어 샌드위치 가게까지 그대로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머무는 패러건 호텔의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마더하우스의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봉사자 오리엔테이션은 1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마더하우스에서 운영하는 7개 시설에 대한 소개를 듣고 한국 수녀님과의 상담을 통해 일할 곳을 배정받게 된다.

봉사자들의 일상은 단순하다. 오전 6시 정도에 일어나 간단히 세수를 하고, 30분에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숙소를 나선다. 걸어서 무슬림 거리를 지나 마더하우스에 7시쯤 도착하면 식빵 두 조각, 바나나 한 개, 차이(인도의 전통 차)로 아침식사를 하며 다른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식사가 끝나고 종이 울리면 “We have our hope in Jesus…”로 시작되는 노래를 부른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봉사자들이 있으면 생큐 송을 불러주며 축하해 주기도 한다.

이후에 ‘차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셔터문이 열리고 찬란히 쏟아지는 햇빛 속에 봉사자들은 삼삼오오 각자의 봉사지로 떠난다. 필자는 이 시간을 매우 좋아했는데, 빛 속으로 사라지는 봉사자들의 모습이 꼭 날개 없는 천사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필자가 봉사활동을 하던 곳은 프렘단이라는 곳으로, 병든 성인 남녀를 수용하는 곳이다. 며칠에 한 명씩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이지만, 많은 봉사자들이 선호하는 ‘칼리가트’(성인 환자들이 수용된 곳으로 병세가 심각한 사람들이 많다. ‘죽음의 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에 가려져 봉사자의 일손이 항상 부족한 곳이다.

프렘단은 기찻길 옆의 빈민촌에 있는데, 문을 열면 환자들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 “굿모닝 안티.”(안녕, 이모: 여자 봉사자들은 모두 안티라 불린다)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르고 일할 곳으로 가면 산더미 같은 빨랫감들이 우리를 맞는다. 겹쳐 놓은 벽돌을 의자 삼아 빨래와의 전쟁을 끝내면 간식 시간이 주어진다. 평범한 비스킷과 차이지만, 이 맛을 그리워하는 봉사자들이 많다.

간단한 휴식이 끝나면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배식을 한다. 간혹 음식이 모자라기도 하기 때문에 골고루 잘 배분되도록 신경 써야 한다. 설거지까지 끝내면 이날의 봉사활동이 끝난다.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점심을 먹고 각자 시간을 보낸다.

◇ 콜카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릭샤라는 인력거.

봉사활동이 익숙해진 어느 날 아침, 혼자서 마더하우스로 걸어가고 있었다.
필자의 느릿한 발걸음과 비슷한 속도로 가는 동양 남자가 있어 말을 걸었다.

“Hi, Are you going to Mother House?(안녕하세요, 당신도 마더하우스에 가고 있나요?)”

“Yes, I’m going to there.(네, 저도 그리로 가고 있어요.)”

“Where are you from?(어느 나라 사람이죠?)”

“I’m from South Korea.”

“한국사람이셨어요?”


머리형과 옷차림이 특이해서 일본 사람인 줄 알았더니 한국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신유철. 1년간의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아시아 여행을 하는 중이다.
보통은 위에 소개한 대로 수녀님과 상담해서 봉사지를 선택한 후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는 등록도 하지 않고 일주일에서 열흘씩 7곳 모두를 차례로 돌며 일을 하고 있었다.

◇ 2006년 10월 콜카타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을 응원하는 유철과 필자.(뒷줄 가운데와 오른쪽)


말도 별로 없고 한국 봉사자 그룹과 조금은 떨어져 지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이메일을 교환해 연락을 하게 되었다. 5개월 반의 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복학해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더니, 얼마 전에 S중공업에 취직이 되었다.

부산에 갈 일이 있어 그가 일하는 거제도에 들러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다. 마더하우스에서 일하면서 뭘 느꼈냐고 물었더니 인간은 결국 누구나 한번은 죽고, 인생은 무상하다는 것을 배웠단다. 그래서, 항상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그의 모습이 참 예뻐 보인다.

“행복이라… 그럼, 여행할 때랑 지금이랑 언제가 더 행복해?”

“여행할 때가 더 행복하긴 하지만, 힘들게 취업 준비 중인 친구들에 비하면 안정된 직장을 가진 지금도 행복해요.”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마더하우스의 봉사활동을 준비하던 그 시간에 이제 그는 직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여행자는 항상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그 역시 올여름 이집트 여행을 준비 중이다.

콜카타(Kolkata)
인도 서벵골주의 주도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1772년부터 1911년까지 인도의 수도이기도 했다. 콜카타라는 이름은 인도의 죽음과 파괴의 여신인 칼리에서 나왔다. 1690년 영국인들이 처음 도착한 곳이 칼리카타(Kalikata, ‘칼리의 땅’이란 뜻)라는 마을이었는데, 여기에서 콜카타(Kolkata)란 이름이 지어졌다. 관광지로는 칼리 신전(Kali Temple)과 영국군의 요새로 사용되었던 포트 윌리엄(Fort William), 빅토리아 여왕의 추모 기념관인 빅토리아 메모리얼(Victoria Memorial),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시인 타고르의 자취를 볼 수 있는 타고르 하우스(Tagore House) 등이 있다.

여행정보
한국에서 콜카타로 가는 직항은 없다.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싱가포르항공과 태국 방콕을 경유하는 제트 에어웨이 인디아(Jet Airways India), 타이항공이 있다. 인도는 사전 비자가 필요하며 인도대사관의 비자 대행사에서 받을 수 있다. 6만5000원의 인지대와 8690원의 비자 수수료가 필요하다. 신청하면 다음날 받을 수 있다. 화폐는 루피(Rupee)를 쓰는데 1루피는 26원 정도다. 저렴한 호텔의 도미토리는 80∼100루피 하는데, 콜카타에서 깨끗한 숙소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10∼30루피면 서민적인 식사를 할 수 있고, 차이는 3∼5루피정도 한다. 깨끗하고 잘 갖추어진 음식을 먹고 싶다면 100루피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인터넷은 1시간에 15∼20루피다.

ps : 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글을 읽어주세요. :) --> [인도, 캘커타] 마더 테레사 하우스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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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로스 가르델 집 주변에는 그의 얼굴을 그린 많은 벽화와 악보가 그려져 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페루나 볼리비아 등 남미와는 또 다른 유럽풍의 활기찬 분위기다. 도시 분위기에 조금 익숙해지자 유독 한 남자의 얼굴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길거리와 음반매장 등 곳곳에서 중절모를 쓰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인상적인 그의 이름은 카를로스 가르델. 그는 탱고의 황제였다.

우리는 ‘탱고(Tango)’라 부르지만 현지에서는 ‘땅고’라고 부른다. 아르헨티나는 탱고의 본산지다. 가르델은 ‘20세기 남미가 낳은 전설의 가수’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그의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진다면 영화 ‘여인의 향기’나 ‘트루 라이즈’를 떠올리면 된다. 그는 그 영화들에서 소개된 유명한 탱고음악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를 부른 가수이다.

<영화, 여인의 향기 중>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그가 살던 집과 묘지 등이 있는데 무료 투어가 있어 자세히 들어보기로 했다. 투어는 영어로 진행되었고 카를로스 가르델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그의 동상에서 시작했다.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가 지긋했는데 유독 한 명 어려보이는 친구가 있어 말을 걸었다. 영어 투어라 당연히 외국인인줄 알았는데 아르헨티나인으로 관광학과를 다니는 여학생이다. 이름은 나탈리. 공부도 할 겸 투어를 들으러 왔단다.

그녀는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20여일동안 영어로 이야기를 나눈 유일한 아르헨티나인이 되었다. 참고로 중남미를 여행할 계획이 있는 사람은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스페인어를 익혀서 가는 것은 필수다.

카를로스 가르델은 1887년(혹은 1890년)에 태어나 동상이 세워져 있는 아바스토 시장(Abasto Market) 근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성인이 된 후 주로 바와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을 했었는데 마르티노와 호세 라사노와 트리오로 노래를 불렀다. 1917년 ‘미 노체 트리스테(Mi Noche Triste, 나의 슬픈 밤)’ 음반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데 당시 10만장이나 팔렸다고 한다.

 <까를로스 가르델, 미 노체 트리스테(Mi Noche Triste, 나의 슬픈 밤)>
이후 칠레 우르과이 브라질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에 이어 스페인 프랑스, 미국에서도 공연하며 탱고의 황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1935년 순회공연의 일환으로 콜롬비아에 갔다가 메데진(메데인·Medellin)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514곡의 탱고를 비롯해 총 770여곡의 노래를 작곡했으며 가수와 영화배우로 눈부신 활약을 했다.

◇ 카를로스 가르델의 집. 현재는 그의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카를로스 가르델 지하철역, 카를로스 가르델 거리, 동상, 길거리의 수많은 벽화들, 그가 작곡한 음악을 악보로 그려놓은 건물 등 가르델이 사망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거리 곳곳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은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나탈리, 카를로스 가르델과 탱고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음∼. 그렇게 잘 알고 있지는 않지만 카를로스는 탱고에 있어 전설적인 인물이야. 탱고는 원래 춤이 중심이었던 장르지. 춤을 추는 데 필요한 보조 수단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카를로스는 탱고에 있어 음악이 중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독립시켰어. 그러니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 사건이라 할 수 있지. 내 부모님들도 열렬한 팬이셔.”

“젊은 사람들은 어때? 젊은 사람들도 그의 음악이나 탱고를 좋아해?”

“아니, 우리들은 레게나 힙합, 팝과 같은 음악을 좋아해. 젊은이들은 탱고가 옛날 노래라 치부하는 경향이 심해. 주로 어른들이 탱고 음악을 좋아하시지. 사실, 탱고를 추는 사람들도 나이 드신 분들이 많고 젊은 사람들은 거의 추지 않아.”

탱고가 아르헨티나의 젊은이들에게는 흘러간 음악일지라도 관광객들에게는 이 나라의 역사이며 문화다.

◇ 투어에서 만난 나탈리와 함께.


그날 저녁 탱고바에서 탱고 공연을 보러갔다.
한국에서 살사를 배우던 중에 탱고를 추는 친구를 따라 탱고바에 가본 적이 있다.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 보니 달라도 너무 달랐다. 탱고바에서는 카를로스 가르델의 감미롭고 감성이 뚝뚝 떨어지는 음악과는 또 다르게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음악이 흘렀다.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움직임하며 역시 본토의 느낌은 다르구나 싶어 다음 날 당장 탱고 클래스를 신청해 배워보기도 했다.

매년 그가 사망한 6월 24일이 되면 전 세계의 추모객이 그를 기억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한다.

“Gracias Por La Musica y por todo.(당신의 음악과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오래전 사망한 카를로스 가르델을 기리며 2001년 그의 묘지에 누군가가 남긴 글이다. 죽은 후에도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은 영광스럽고 가치 있는 일이다.

머나먼 한국의 서울에서 카를로스 가르델의 CD를 들으며 언젠가 그의 음악에 맞춰 누군가와 함께 탱고를 출 수 있는 날을 조금 상상해봤다.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아르헨티나의 인구 3분의 1인 1300만명이 살고 있다. 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남미 대부분의 도시처럼 스페인의 식민도시로 건설돼 18세기에는 식민지 수도로 발달했다. 탱고 음악과 춤의 본산지로 보카(Boca)지구에 가면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다. 유명한 사람으로는 세간의 평이 엇갈리는 전 대통령 부인인 에바 페론과 국민 영웅인 마라도나가 있다. 축구에 열광하는 국가 중 하나이며 나이트라이프가 매우 발달해 있다.

여행정보
한국에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들어가는 직항은 없다.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을 거쳐야 하며 최소 1회 이상의 경유해야 한다. 미국을 경유하는 대한항공 같은 경우는 항공요금만 500만원대로 매우 비싼 편이다. 2회 경유를 하는 에어캐나다와 영국항공은 170만원 이상으로 다른 대륙의 항공권보다 비싸다. 하지만, 입국 시 90일간은 비자가 필요 없고 현지 물가는 매우 저렴한 편이다. 따라서 여행 기간 동안의 총 비용은 유럽여행을 하는 것보다 저렴하거나 비슷한 비용으로 남미여행을 할 수 있다. 화폐는 페소(Peso)를 쓰는데 1페소는 약 330원 정도다. 저렴한 호스텔은 20페소, 식사는 10∼20페소 정도로 저렴하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는 세계 최고의 스테이크를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데 15∼20페소 정도 한다.

<세계일보에 올려진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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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cidhun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탱고 음악 좋아해서 아르헨티나는 항상 가보고 싶던 곳 중 한 곳이었는데, 이 글보니까 더 가고싶네요. ㅎㅎ

    2010/03/10 14:50
    • 쁘리띠님  수정/삭제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여행지 블랙홀 중 한 곳으로
      다들 떠나지 못하는 도시랍니다~ :)

      정말 너무 좋고, 고기도 너무 맛있고,
      또 가고싶어요. ㅠㅠ

      2010/03/10 15:22


이 글은 열 여섯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위의 사진] 마을을 떠나며... 이날 오랜만에 9시쯤 출발했다.
 

일어나자마자 몸 상태를 체크했다.
어제 알베르게의 침대에서 말라 죽은 빈대 몇 마리를 봐서...-_-;;;

긴팔 후드티에 모자를 쓰고, 긴바지에, 양말까지 신고 잤는데...
오른쪽 발목 좀 위에 커다란 수포가 생겼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이다. ㅠㅠ

며칠만에 또 벌레에게 물린건데
특이하게 커다란 수포를 만들어서 정말 무시무시했다.
(이 벌레는 나중에 다른 사람이 물린 것도 한번 보게 되는데... 정말 무서운 벌레다.-_-;)

벌레에 물린 모습을 본 롤란드는(롤란드도 충분히 내가 벌레에 계속 물린 것을 알고 있다)
자기가 인도 여행할 때 어떤 벌레는 피부 아래에 숨어 살면서 밤이 되면 나와서
몸을 무는 벌레가 있는데 그 벌레가 아니냐며 나를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이게 했다. ㅠ_ㅠ

잘 생각해봤지만, 그 벌레라면 매일매일 물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

밖에 나와 어미 개가 잘 있는지도 살폈다.
문을 나서니 반갑게 꼬리를 치며 인사한다. 얘는 잘 잤나보다. ㅠ_ㅠ

[위의 사진] 누가 만들었는지 너무 예쁘다.


나의 순례자의 길에 변화가 생겼다.

이전과 다른게 있다면,
매일 혼자걷다가 어제부터 롤란드랑 함께 걷게 된 것과
내 개는 아니지만 남의 개를 돌봐주기 시작한 것과 -_-
모처럼 매우 늦은시간(롤란드는 나보다 더 늦게 걷기 시작한다. 9시쯤 부터)에 걷게 된 것이다.

롤란드와 이야기하며 걷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개가 언제 돌아갈까 자꾸 걱정이 됐다.

걷다가 어제 함께 저녁식사를 한 아이슬란드 친구 3명을 다시 만났다.

그 중에 한 여자는 나와 비슷하게 벌레에 잘 물리는 체질이었는데,
어제 그 숙소에서 엄청 물렸단다. -_-; (음.... 거기 갔어도 마찬가지였겠군..-_-;;;; 조금 위안이...)

그런데, 얘네들 속도가 정말 빠르다. 다리가 아파 못 쫓아가겠다. ㅠ_ㅠ

가만보니 롤란드도 하루에 40~50km 걷는 친구인데 어제 내 발걸음에 맞춰서 걸어준거였다.
롤란드랑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아이슬란드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함께 걸으니 그걸 알겠다.
롤란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들과 보조를 맞추며 걷는데... 난 못따라 가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따라가기 힘들어서
좀 천천히 갈테니 있다 숙소에서 보자고 하고 뒤로 빠졌다. -_-; 아이고, 내 다리...

 [위의 사진] 멀어지는 친구들

앞서가는 친구들은 이해하지만,
어미개는 나와 롤란드를 번갈아가면서 보더니 몸을 훽~ 돌려 롤란드를 따라간다. -_-;

나쁜 것. 물과 밥을 챙겨주는 건 난데...-_-;;
누가 여자아니라고 남자 따라가는 것 좀 봐.. 오늘 저녁 안챙겨줄까봐. 씨. -_-;;;; 

열 일곱 번째 날, 비야카사르 데 시르가(Villacazar de Sirga) 19.5km

9시 5분 출발, 3시 45분 도착.
6시간 40분 소요.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아까 다리긴 친구들이랑 함께 걷다가
내 페이스를 잃는 바람에
힘들었던 하루. -_-;;;;

[왼쪽 사진] Villasirga Casa del Peregrino
요금 : 도네이션제 (5유로 냈다)

롤란드도, 아이슬란드 친구들도
어미개도 도착해 있다.

씻고, 나가서 장을 봐 왔다.

뭘 먹을까 하다가 간단한 통조림과
빵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문어를 먹어봤으니 오징어를 먹어봐야지~
오징어는 스페인어로 깔라마리라고 한다.

 
[오른쪽 사진] 깔라마레스(복수) Calamares 통조림

문어처럼 익혀 올리브유에 담근 줄 알았는데,
오징어 먹물기름인가...-,.- 색깔이 까맣다.

가격도 착하고(0.8유로) 맛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문어가 훨씬 맛난다.

앞으로는 뿔뽀 Pulpo를 사랑할테다.

밥을 먹는데, 한 남자가 눈에 띤다.
키가 2m나 되는 네덜란드인 얀이다.

배가 출출하다며 주방의 찬장을 뒤적거리더니 마카로니를 찾아냈다.
(순례자들이 두고 간 음식은 누구나 먹을 수 있다.)

얀은 마카로니를 삶더니 접시에 건저내 기름과 설탕을 쳐서 슥슥 비비기 시작했다.
보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웠는데...--; (느끼해서.. 우웩) 동양인인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다들,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맛있어? -,.-"

"응, 맛있어. 난 옛날부터 이렇게 먹었는데... 맛있어."
 
내가 아무리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걸 좋아해도...-_-
이 음식만은 도전하지 못하겠다.

세상의 진실
이날, 주방의자에 앉아 롤란드와 나,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세상에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롤란드는 진실을 찾아 20살부터 10년동안 세계를 여행했으며, 실제로 많은 진실 Truth을 찾아냈단다.

매스미디어가 말하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진실이 아니며('빅 브라더'처럼)
세상을 조종 Control 하는 자들이 그렇게 믿도록 만드는 것이며
그래서 롤란드는 신문이나 뉴스, 잡지 등은 보지 않으며 인터넷도 메일정도만 이용한다고 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닭, 소, 돼지 등의 동물을 포함한 대량 생산, 재배된 것들 또한
Control의 코드(원하는 대로 쉽게 길들일 수 있는)가 들어있기 때문에 그는 베지테리언이 되었다고 한다.

지구에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본성)을 잠식당한 채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서는
먹을 때는 음식을 집중해 천천히 먹고, 잠잘 때도 집중해 자며, 걸을 때도 걷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모든 것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참된 삶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왔고, 조지 오웰의 1984와(좋아하는 책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The Truth is out there)고 말하는 미국 드라마 X파일(좋아하는 드라마다-_-)과
또는 영화, 컨스피러시(Conspiracy Theory, 음모이론)와 매우 닮아있었다.

얀은 롤란드를 선지자(또는 정신나간 사람)로 생각하고 아틀란티스 대륙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롤란드는 다빈치코드에서 나오는 언어학자의 고미술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아틀란티스 대륙은 독일의 북쪽의 한 섬이라고 증명했다. (난 이곳에 꼭 가볼테다. ㅎㅎㅎ)

또한,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냐는 질문에 롤란드는
"정말 진실을 알고 싶습니까?"
라고 반문하며 진지하게 답해주기도 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이라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에 쓰지는 않겠다. 궁금하면 직접 묻길...^^;)

그의 말이 사실이던 그렇지 않던,
그의 눈은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것처럼 맑았고 빛이 났다.

난 빛이 나는 사람이 좋다.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밀아다.

세상엔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위의 사진] 이 순례자 동상은 벌써 수만명의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을테다.
 

2008. 4. 13(2010.3.9 업데이트) pretty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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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열 여섯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어미개는 앙상하게 말라 뼈만 남아 있었다.
 

    다이어리를 보니 이날은 몇시에 일어났는지도 써 있지 않다.
    아마도 어제 힘들었으니 늦게 일어나 출발했을 것이다.

    순례자의 길 내내 자주 만났던(앞으로도 만나게 될) 기세라와 실야, 그리고 나초 모두 떠나고 없었다.
    촉촉한 아침 길을 걷는데 문득, 헝가리인 실야와 어제 나눴던 얘기가 생각났다.

    "그는 정말 좋은 남자였어."
    "그런데 왜 헤어졌어?"
    "자꾸 거짓말을 했어.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음... 실야, 거짓말을 하는 남자는 좋은 남자가 아니야."

    실야는 산티아고까지 빨리 가야해서 그동안 함께 걷던 롤란드와 헤어지고 앞서 걷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으흠, 실야는 롤란드를 좋아하고 있어.

    "올라, 굿모닝, 아니따~"

    뒤를 돌아보니 롤란드다. 아이고, 깜짝이야. ㅋㅋ

    "안녕, 롤란드. :)"

    알고보니 같은 마을에서 묵었다.
    이런, 실야가 이 사실을 알면 정말 안타까워했겠군! =_=

    롤란드 주위에 개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마을에서 본 개다.

    어제 마을의 광장에서 차에 치여 다리 하나가 거의 떨어질 듯하게 너덜너덜 거리는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보고 깜짝놀라 애써 눈을 돌렸었다.

    알베르게의 여행자들은 스페인 사람들은 강아지가 저런데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화를 냈었는데...
    바로 그 새끼강아지를 포함한 몇몇 강아지들의 어미개다.

    "저 개는 왜 데리고 왔어?"
    "내가 데려온게 아니야. 마을에서부터 날 따라왔어."
    "롤란드, 저 개는 새끼가 있어. 마을로 돌아가게 해야해."

    몇 번이나 가라고 쫓았지만, 막무가내다.
    롤란드도 따라오는 어미개에게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롤란드와 하루종일 함께 걷는 동안 어미개는 계속 따라왔다.
    [위의 사진]과 같은 끝없이 펼쳐진 땡볕의 밀밭길도 말이다.

     

      중간에 자그마한 교회가 나왔다.

      이 교회는 순례자들에게 매우 유명한 교회로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싶어하는 곳이란다.

      오래도 되었고, 내부 모습도 아름답다.
      진작 알았다면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렀을텐데 아쉬운 곳이었다.

      한 아줌마가 따라오는 개를 보자,
      "Que pasa.."  (께 빠사~ What's up? 잘 지내?) 라고 말하며 개를 불렀다.

      아줌마에게 이전 마을부터 따라오고 있는데, 새끼 개가 있고 벌써 마을에서 멀리 떨어졌으니
      이제 돌려보내야한다고 사정을 설명하자 걱정스러운 눈길로 어미개를 쳐다봤다.

      아줌마는 교회 안에서 물을 떠와 개에게 마시게했다.
      그러는 동안 롤란드에게 눈짓을 해 개를 두고 가자고 하고 조용히 걸어갔다.

      [위의 사진] 하지만, 다시 따라오는 개. ㅠ_ㅠ

      정말이지 걱정이 되었다.

      이 어미개가 순례자의 길 내내 롤란드를 쫓아다니면 어떻게 될지 상상했다.

      마을의 새끼 강아지들은 젖이 없어 굶어죽을지도 몰랐다.
      어미개 역시 뼈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루에 몇십키로씩 걷다간 언제 죽을지 몰랐다.

      따라오는 동안 물도 챙겨줘야하고, 먹을 것도 챙겨줘야했다.
      길의 끝까지 따라온다면 산티아고에선 어떻게 할건지도 걱정되었다.

      물론, 나의 개는 아니다. 날 쫓아온 것이 아니니.
      하지만, 롤란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ㅠ_ㅠ

      물도, 먹을 것도, 새끼들도...

       [위의 사진] 수도의 손잡이가 너무 예쁘다.

      열 여섯 번째 날, 보아디야 델 까미노(Boadilla del Camino) 30km

      [왼쪽 사진] 롤란드와 함께 묵었던 알베르게. Alvergue Municipal de Peregrinos
      요금 : 무료


      오래된 침대에 아무도 없어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보려했지만,
      롤란드가 자긴 이곳에서 묵겠다길래
      혼자 숙소를 구하러 가기 그래서 그냥 함께했다.

      어미개가 마을에 들어올 때 동네 개들이 경계했지만, 알베르게의 뒷마당 그늘에 자리를 잘 잡았다.

      물을 주고 쉬게했다. 그녀는 오늘 30km를 따라왔다.
      거의 먹지도 못하고(점심 때 내가 빵을 조금 준게 다였다) 너무 많이 걸었다. 게다가 너무 멀리 왔다. 나는 점점 더 걱정이 되었다.

      알베르게에 주방이 없어 마을 구경(?)겸 저녁을 위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위의 사진] 앗. 좋은 알베르게 겸 식당 발견! ㅠ_ㅠ


      벌레 공포증 때문에(물렸던 전적..-_-)
      항상 깨끗해 보이는 알베르게를 찾는 거였는데,
      아무도 없는 알베르게보다 이곳이 훨씬 더 좋아보였다.
      게다가 수영장도 있다. ㅠ_ㅠ
      가격은 5~6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이곳에서 아이슬랜드 친구들을 만났다.
      걷는 초기에 만났던 친구들이라 반가워 알베르게에서 함께 운영하는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어미개를 위한 음식을 챙겼다.

      롤란드는 다른 사람들이 후식을 먹을 때까지 아주 느린 속도로 본 음식을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투덜거렸지만 난 그런 그가 마음에 들었다.

      [위의 사진] 롤란드가 찍어준 내 사진.
      몇 장 안되는 전신 사진 중 하나다.

      2008. 4. 13(2010.3.9) pretty ch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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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열 다섯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눈도 귀도 막았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어줄 수 없겠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오늘도 눈을 뜨면 나 혼자 뿐일거라 생각했는데
같은 방의 독일인 언니가 짐을 싸고 있는 것이다! +.+

외롭지 않은 아침을 맞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흑. ㅠ_ㅠ

그런데, 짐을 정말 독일인스럽게 싸고 있다. ㅎㅎ
침대 위에 모든 걸 펼쳐놓고 분류한 다음, 착착착~

짐싸는 모습을 흥미롭게 구경했더니
언니가 독일인들의 특별한 정리벽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 ㅎㅎ

가만....그러고 보면 나도 좀 비슷한 편인데....?
난 짐을 푸르자마자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미친 듯이 어지르고
짐을 챙길 때는 독일 사람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나. -,.-;;;;

난... 뭐지? 짬뽕인가? -,.-

독일인 언니는 영어 선생님인데 1년 휴가를 받았다고 했다.
4월 중순 자기 생일날부터 걸었는데 (앗, 나도 생일날부터 걸었는데! +.+)
슈퍼마켓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단다. (앗, 나랑 똑같다. --;)
걷는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싶어 하루에 15~20km씩만 걷는데(아,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ㅠ_ㅠ)
자긴, 동양인들처럼 중간중간에 많은 사진을 찍는단다. (정말 동양인같다. +.+)

언니가 하는 말이 정말 흥미로와서 "ineteresting~" 이라고 몇번 말했더니
자기가 아는 한국 여성이 있는데, 그녀도 항상 그렇게 말했다면서 신기해한다.
(사실은 '흥미롭다'는 말의 표현을 이거 하나밖에 몰라서 그러는 건데...--;;;;;)

르 퓌에서부터 걸었는데 그쪽 길은 정말 너무 험난해서(정말 아름다왔지만!) 
피레네를 넘을 땐 너무 쉬웠단다. (아...정말이지 난 산은 더 이상 못 넘겠다. ㅠ_ㅠ)

"난 1년 동안 받은 휴가를 열심히 즐기고 있어.
하지만, 하루에 30~40km를 걸어서야
어떻게 진정으로 길을 즐길 수 있겠어?"

언니의 말이 맞다.
하루에 30~40km씩 걸으면 15~20km씩 걷는 것 보다 온전히 길을 즐길 수 없다.
꼭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놓치는 것을 자전거를 타면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하루에 15~20km씩 걷는 언니보다 왜 내 발걸음은 더 느린거지...? -_-;;;

그래서 언니와 헤어지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름도 못 물어보고...
이메일 주소라도 물어볼 껄 하는 후회가 든다.

정말 나랑 코드가 맞는 언니었는데...

[위의 사진] 앞서 걸어가는 독일 언니의 모습

달리던 롤란드
한동안 걷는데 갑자기 뒤에서 다다다다 소리가 나더니 누가 휙~ 지나간다.

앗, 롤란드다. +.+ (아소프라에서 처음 만난 친구다.)

"올라~ 롤란드!"

달리던 롤란드를 불러세웠다.

"올라, 굿모닝, 아니따~"
"넌 왜 달리고 있는 거야?"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
"오늘은 Full of Energy야. 그래서 달리고 있는거야."

아하하하하. 역시, 신기한 친구. ㅋㅋ
에너지가 넘쳐 흐르면 물집잡힌 발로도 순례자의 길을 달릴 수 있는 거구나..-_-;
(롤란드는 발에 적당한? 사이즈의 물집이 잡혀 있었다. )

"그래, 그럼 계속 달려~* +.+"
"아스딸라 루에고(다음에 봐), 부엔까미노(잘 걸어), 아디오스(안녕),  굿바이 아니따"
(정말 롤란드는 이렇게 말했다. -_-; 뭐 항상 이렇게 말했지만...)

[위의 사진] 다시 달려가는 롤란드, 항상 한 손에는 1.5l 물을 들고 있다. 

 잠시 뒤에 마을이 나타났다.

고양이 두 마리가 대화하는 것 같아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 쪽에서 음매에~ 소리가 나서 보니 염소였다.

아저씨가 날 보더니 [왼쪽 사진] 의 염소는
방금 태어난 거라며 알려주신다.  

와.. 방금 태어난 염소..+.+

방금 태어난 생명을 봤으니
오늘은 행운이 가득할 거라고 아저씨가 말했다.

행운이라....흠.
가만보니 옛날 중국여행에서도 양인지 염소인지가 태어난 걸 봤었는데 그날, 행운은커녕 대판 싸웠던 기억이 났다.

행운은 무슨...-_-;;;;


사막의 시작

[위의 사진]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이 시작되었다.

어린왕자 책에서나 또는 그냥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길이
"와~ 금빛으로 빛나는 밀밭이다~ 이렇게 광활한 평지에 펼쳐진 밀밭은 정말 이국적인걸~ +.+"
하겠지만...

순례자들에게 이런 길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ㅠ_ㅠ

그늘 한 점, 물 한방울 없는 밀밭 길은 사막과 같다.

이런, 이전 마을에서 물을 받지 못했는데...ㅠ_ㅠ
4.5km 뒤에 Sambol이라는 마을이 있다고 해서 안심했다가
식수대가 없어 지나쳤는데 그냥 알베르게에 들러 물이라도 받을 껄. ㅠ_ㅠ

"이러단 죽어버리고 말겠어. ㅠ_ㅠ"

바삭바삭 말라가는 밀처럼 나도 황금빛으로 누렇게 떠서 죽을 것 같았다.

[위의 사진] 식수대가 나타나라고 기원하며 돌 하나를 올려 놓았다. ㅠ_ㅠ

가방 무겁다고 물통 큰 거 안들고 다니고,
식수대 외에 물 받기를 부끄러워하고,
얇은 안내서조차 없이 순례자 협회에서 준 종이 달랑 두장만 들고 다니면
가끔가다 이렇게 큰 난관에 봉착한다. (언제나 물 문제. ㅠ_ㅠ)

그날, 500ml도 안되는 물로 6.5km를 걸었다. -_-;

순례자의 길을 걸은 사람들은 미쳤다고 할테다.
나도 나의 생존력에 놀라 자빠질 뻔 했으니.... -_-

인간의 목숨은 참으로 끈질기다.

[위의 사진]이 표지판을 보고 얼마나 기뻣는지 아무도 모를꺼야. ㅠ_ㅠ

[위의 사진] 드디어 마을이 보인다. ㅠ_ㅠ
항상 마을에서 첫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장 높은 교회의 첨탑이다.
앞에서 날 추월하며 걷던 분, 하나도 목 안말라 보였다. ㅠ_ㅠ

[위의 사진]  사막의 오아시스에 도착한 느낌은 바로 이런 걸꺼야.
마을이 가까이 오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ㅠ_ㅠ

열 다섯 번째 날, 온타나스(Hontanas) 21km

 7시 25분 출발, 1시 30분 도착. 5시간 30분 소요.
이렇게 조금밖에 안 걸었는데
이렇게 힘들긴 처음이다. ㅠ_ㅠ

다 물 때문이야. ㅠ_ㅠ
정말이지 밀밭에서 객사할 뻔 했다.
다음부터는 꼭 물을 열심히 챙겨야지. ㅠ_ㅠ

[왼쪽 사진]은 Albergue Municipal, 5유로
시설은 괜찮았고,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좋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스트리아 언니인 기세라와
요즘 들어 자주 만나는 실야를 또 만났다. :)

아참, 그리고 앞으로 종종 나올 스페인 친구,
나초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

나초는 경찰인데 스포츠로
순례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샤워를 하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하게 정신이 돌아왔다. 정말 신기하다. --;

빨래를 널러 밖에 나왔더니 재미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위의 사진] 왼쪽은 스페인 할머니, 오른쪽은 이탈리아 할머니.

스페인 할머니는 그늘에서, 이탈리아 할머니는 선탠을 하려고 햇볕에서 의자에 앉아
각자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즉,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로.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는 꽤나 비슷한데 그래서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이 두 나라의 말을 각자 사용해도 의사소통이 어느정도 가능하다.

아마도 한국인과 조선족의 느낌이 아닐까 싶은데
그래도 우리는 같은 언어지만 이쪽은 다르지 않는가!

정말 신기했다. :)

나중에 이탈리아에 갔을 때 아무도 영어를 못 알아듣길래
이날 할머니들이 서로 의사소통 했던게 기억이 나 스페인어로 말했더니
이탈리아 사람이 정말 알아들었다는...-.-;;; (나는 못 알아들었지만...-_-)
신기했던 건 이탈리아 사람이 외국어를 집중해서 듣고 있다는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듣고 그냥 자연스럽게 이탈리아어로 대답해서 너무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위의 사진] 이날 먹었던 저녁, 전식과 후식만 있고 본식 사진이 없다..--;; 오늘의 메뉴 8유로

이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작은 마을의 작은 식당에
쿠바에서 온 언니가 일하고 있었다.

세상은 참 넓고도 좁았고,
난 죽을뻔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있었다.

2008. 3. 28(2010.3.9 업데이트) pretty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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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소중함

쁘리띠의 월요편지 2010/03/09 12:57 Posted by 쁘리띠님


안녕하세요, 쁘리띠입니다. :)

요즘은 제가 참가한 중앙북스의 유럽 가이드북 개정을 하고 있습니다. :)

제가 맡은 나라는 베네룩스와 프랑스, 이번 책에는 그리스가 추가될 예정인데요,
애기낳기 전에 끝내고, 파리 책도 써야해서 마음은 급하고 그러네요~

아마 태어난 아기는 자기가 유럽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_-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유럽 정보를 꿰차고 태어난다던지 말이죠.  -_-

지난주말에 지도개정을 끝내 겸사 운동 겸
출판사가 있는 시내에 나가려고 잔뜩 준비를 했는데
일어나보니 글쎄 물이 나오지 않는 거에요. -_-;;;

아차! 가만보니 일주일동안 엘레베이터 안에
월요일 아파트 보일러 교체 때문에 단수공지가 떳었는데...ㅠㅠ
그만, 까먹었던 것입니다.

밖에 해가 떠 있을 때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단수는 6시까지 한다고 공지되어 있었고,
물 준비를 안한 덕분에 먹을 물만 간신히 있었네요~

일단 밥을 먹어야해서 토마토를 꺼내 식수로 씻고
토마토 계란 덮밥을 만들어 먹었죠.

찝찝한 얼굴은 물티슈로 닦고, 이 떡진 머리는 어떡하지...-_-; 하면서
출판사 갈 일을 걱정하며 하루종일 있는데
물이 없어서 점심 밥도 못하고, 라면조차 끓여먹을 물도 없어
물이 언제 나오나 전전긍긍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화장실이 제일 고역이었죠. -_-;;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원하는 만큼 쓸 수 있었던 물이
어제만큼은 왜이리 소중하고 간절한지....

가만 생각해보니 예전에 이집트를 여행할 때
다합에서 만난 이집트 친구네 시골의 망고농장에 갔던게 생각났어요~

거기서 일주일인가 열흘인가를 지냈었는데
정말 집 안에 소가 같이 살고(낮에는 밖에 내놓고, 밤에는 거실같은 곳에서 자요~),
화장실에 가면 닭과 병아리들을 몰아내고
볼일을 봐야하는 그런 곳이었죠.

샤워는 문도 없는 푸세식 화장실에서 해야하는데
그때마다 친구의 여동생이 양동이에 물을 받아왔어요.


40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여서 마음같아서는 매일 2~3번씩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여동생은 그 물을 받으러 동네 우물까지 걸어갔다와야했기 때문에 2양동이를 요구하는 건 무리였죠.
미안해서 하루 한번 샤워도 고심에 고심 끝에 해야했었답니다. =_=

그 한 양동이 물을 가지고, 머리도 감고 샤워도 마쳐야했는데
처음엔 샴푸거품을 없애는 데만도 한양동이가 모자르더라구요. -_-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물을 딱 맞게 쓰는
요령이 생기더군요. -.-

그렇게 한참이나 모자르다고 생각하던 물로
사실은 모든 걸 할 수 있었던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그동안 물을 너무 펑펑 쓰고 있었구나... 싶었으니까요.

4시 반쯤 되어서 아파트에 드디어 물이 나오기 시작하고
저는 기다리던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물의 소중함에 진심으로 감사했네요.

그리고, 매일 양동이 샤워를 가능하게 해준 무함마드의 여동생, 아미라.
그 때.... 제가 24살, 그녀는 16살이었는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

<1998. 이집트에서 만난 아미라>

ps : 오랜만에 그 때 샤워를 했던 화장실이 생각나서
오래~~전에 그렸던 만화를 첨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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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cidhun  수정/삭제  댓글쓰기

    외국 여행할때 당황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화장실 문화인 것 같아요. 재밋게 보고 갑니다. ~~

    2010/03/09 14:51
    • 쁘리띠님  수정/삭제

      지금 다시 보니, 중국 화장실을 추가했으면
      더 재밌을 뻔했네요. 중국에서 버스타다가
      돈내고 가는 화장실...정말 충격적이었는데...>.<

      2010/03/09 18:19



잔잔하지만 묘한 설레임이 있는
진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쓴 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은 사람이라면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2003)'가 무척 반가우셨을 겁니다. :)

제게 슈발리에의 소설이 매력적이었던 건
그녀가 '진주 귀고리 소녀' 를 보고 예술가다운 상상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풍경과 분위기를 상상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그림이 탄생했는지
실타래가 풀리듯 술술~ 이야기를 지어냈으니까요.

그녀의 책은 비록 허구이지만 베르메르와 하녀간의 로맨스를 상상해
그 상상만으로 '정지된' 그림을 어떤 비밀이 감춰진 그림으로 숨쉬게 만들고
베르메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만듭니다. :)

그래서 '진주 귀고리 소녀' 그림도 아름다웠지만
이러한 작가의 창조적인 상상력 또한
그에 못지 않은 감동을 가져오게 해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답니다.

제게는 그런 책이었으니 영화가 나오자
배경이 된 네덜란드의 '델프트'라는 곳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

[위의 사진] 진주 귀고리 소녀처럼 포즈를 취한 스칼렛 요한슨 :)
왼쪽 사진은 수채화에요~ 유화는 아래에 있습니다~

책과 영화의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내용은 이렇습니다.
1665년 플랑드르 지방, 델프트에 사는 중산층의 화가 베르메르의 집에 하녀가 한명 들어옵니다.
16살인 그녀의 이름은 그리트, 타일도공인 아버지를 둔 개신교 집안의 소녀인데
집이 가난해 천주교를 믿는 베르메르의 하녀로 들어오게 된거죠.

베르메르와 그리트는 묘한 감정이 오가며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물감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그의 일을 돕게까지 하지만
특별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이 있는 매력적인 내용입니다. :)

하녀에게 값비싼 진주귀고리를 걸어주기 위해 귀를 뚫어주는 에로틱한(?) 장면이나
완성된 초상화를 보고 배신감과 질투심에 울부짖는 그의 아내의 모습이
(그림에서 자신의 진주귀고리를 건 하녀를 보았으니까요)
이 영화의 가장 격정적인(?) 장면입니다. :)

이번 기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에 대해 소개할 수 있어 즐거운데요,
올 여름, 많은 분들이 방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북구의 모나리자, 진주 귀고리 소녀
 [왼쪽 사진]은 '북구의 모나리자' 또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리우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1665년)'입니다.

커다란 눈망울, 립글로즈를 바른듯한 촉촉한 붉은 입술,
머리는 이국적인 푸른색과 노란색의 천으로 꼼꼼히 가렸고
귀에는 아주 커다란 진주 귀고리가 걸려 있습니다.

지금도 저 정도 크기의 진주 귀고리는
희귀할 뿐만 아니라 매우 고가인데요, -.-
베르메르가 살았을 당시에도 진주 귀고리는
부유한 여성들이나 소유할 수 있는 귀한 보석이었고
크기가 클수록 부유함의 상징었습니다.

매혹적인 모습의 소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궁금증을 유발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베르메르의 일생처럼
모델에 대한 정보가 없어 더욱 신비로운 그림으로 남게 되었죠.

사실, 이 그림은 1881년 A.A. des Tombe라는 사람이
헤이그의 경매에서 2.3길더(겨우! =_=)에 샀다가
1902년 상속자없이 사망하면서
마우리츠하우스에 자동으로 기증된 작품이랍니다.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1866년 예술 비평가인 Thoré Bürger에 의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사진] 진주 귀고리 소녀가 있는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우스(Mauritshuis)

[위의 사진] 책과 영화 덕분에 미술관의 기념품점에는 '진주 귀고리 소녀'가 가득합니다. :)


델프트의 베르메르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1632~1675)가 태어나 평생을 산 곳은 델프트(Delft)입니다.
그런 이유로 '델프트의 베르메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위의 사진] 델프트는 걸어다닐 수 있는 아담한 도시입니다.
가운데 여백이 보이는 곳이 중심가인 마르크트(광장)이고 신교회와 시청이 있어요.

그는 이곳에서 1653년에 Saint Luke 길드의 조합원이 되었고, 일생동안 35여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중 델프트를 배경으로한 풍경화가 2점이 있고, 나머지는 초상화나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렸죠.

그는 델프트에서만 잘 알려진 화가였는데 이유는 워낙 작품을 조금만 그리기도 했고, 생도 짧았고,
또, 이 지역의 그림 수집가였던 Pieter van Ruijven 이 그의 그림을 대부분 샀기 때문입니다. 
그는 적은 편수의 그림의 수입에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그리 부유하게 살지도 못했고,
사망 당시에는 남은 빚 때문에 그의 부인은 그림을 팔아야할 정도였습니다.

이 시대의 상황을 알면 좀 더 재미가 있는데요,
17세기는 네덜란드가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척하고 식민지를 경영했던 '황금시대'입니다.
이 시기에 가장 강력하게 두각을 나타낸 계급은 당연 부유한 상인들이었죠.

왕족이나 성직자 그리고 귀족들이 미술작품을 주문했던 중세시대와 달리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장식하고 부유함을 보여줄 미술작품을 원하게 됩니다.
이들이 원하는 작품들은 사진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초상화를 많이 원했고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사실주의 화풍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잘 아시는 렘브란트는 '렘브란트 라이트'라는 조명같은 빛을 활용해 인물을 강조했었는데요, 
베르메르는 사실주의 작가이면서도 '렘브란트 라이트' 같은 강한 극적인 느낌의 빛보다는
빛을 한번 순화시킨듯 부드러운 느낌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위의 사진] 진주목걸이를 한 여자(1662~1664, 독일 베를린 Staatliche 박물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인데, 아직 직접보지는 못했답니다. :)
있는 그대로를 묘사한 작품이지만, 빛이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자연스럽죠? :)

제가 델프트를 찾았을 때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는데요,
기차역에서 중심가까지는 운하를 따라 조금 걸어가야 합니다. :)

 [위의 사진] 네덜란드는 어딜가나 운하입니다. :)

 [위의 사진] 마르크트(광장)의 신교회에서 바라본 델프트의 모습

 [위의 사진] 마르크트에서 바라본 신교회

영화는 마르크트에서 시작해 마르크트에서 끝이 납니다.
[위의 사진]에서 동그란 원형으로 표시된 곳은 나침반으로 16세기에 있었다가 사라진 것인데요,
영화 제작을 기념으로 다시 복원했다고 하네요~

영화 전반부에는 스칼렛 요한슨이 베르메르 집의 하녀로 들어가기 위해 지나치던 곳이고,
또 하녀에서 쫓겨나 광장으로 걸어 나올 때도 같은 장소에서 잠시 생각을 하듯 서 있죠.


나침반 가운데에는 'Elck wandel in godts wegen' (모든 길은 신의 뜻에) 라고 쓰여 있습니다.

[위의 사진] 영화에서의 신교회, 광장을 지나쳐가는 그리트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곳은 주로 이 주변에서 찍었는데
델프트 뿐만 아니라 베니스, 벨기에의 Damme, 룩셈부르크 영화 촬영소에서 찍었다고 하네요.

  [위의 사진] 신교회의 내부는 네덜란드 독립의 아버지, 오렌지 왕자의 무덤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 델프트의 신교회는 왕가의 무덤이 안장된 곳입니다.
현재의 왕족들 역시 죽으면 이곳에 묻히게 됩니다.

 [위의 사진] 근처에는 구교회가 있는데 개신교였던 베르메르는
1653년 카타리나 볼너스와 결혼한 후 부인을 따라 카톨릭으로 개종했죠.
부인과 사이에 11명의 자식을 낳았다고 합니다. +.+


그래서 그의 무덤은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무덤

델프트의 곳곳에는 아래처럼 큐브가 세워져 있습니다.

 [위의 사진] 베르메르와 관련된 스팟에 세워진 큐브.


인포에 가면 베르메르와 관련된 무료 지도가 있는데
지도에 표시된 곳을 찾아 돌아다니면 됩니다. :)

태어난 곳, 살았던 곳, 그림을 그렸던 곳 등
여러 장소가 표시되어 있으니 산책겸 둘러보세요~ :)

덧붙여, 베르메르가 남긴 유명한 작품들을 몇점 보여드릴게요.
아래 작품들은 네덜란드와 여러 나라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아래 그림 중 마음에 드는게 있다면 소장된 곳을 눈여겨 봐 두세요.
그리고, 유럽여행 때 직접 보러 가보시길... :)


그림은 직접 눈으로 보는게 가장 감동적이에요.

 [위의 사진] 레이스를 뜨는 소녀(1669~1700,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위의 사진] 델프트 풍경(1659~1660,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우스)
그림을 그린 장소에 가봤지만 풍경이 너무 많이 변해 잘 모르겠더라구요~

[위의 사진] 우유를 따르는 하녀(1658,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역시 제가 좋아하는 그림, 진주 귀고리 소녀처럼 겨자색과 파란색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


그의 작품들은 '이상한 나라의 폴'(아시는지 모르겠지만...=_=)이란 만화에서
시간을 정지시켰을 때처럼 그림을 보는 동안 시공간을 '정지'시켜 버립니다.

심장의 박동은 느려지고 뇌파는 편안해지지요. :) 

엄숙한 종교화나 심심한 풍경화(제게는...-.-)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세밀하고 따뜻하게 그려낸
베르메르의 작품들이 정말 좋습니다. :)

* 베르메르 센터 : http://www.vermeerdelft.nl
* 베르메르의 모든 그림 보러가기 :
http://www.vermeer-foundation.org

pretty ch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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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sepoboy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림에는 절대 문외한이고 네덜란드는 물론 아직 제주도도 못가본 저지만 이 영화는 재밌게 봤습니다..스칼렛 요한슨때문에...;; 언급하신것처럼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묘한 긴장감을 주죠...ㅋ 글 너무나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2010/03/06 15:17
    • 쁘리띠님  수정/삭제

      저도 책과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답니다. :)
      그래서 델프트까지 가게되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0/03/06 21:38
  2. 묵?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칼렛 요한슨하고 싱크로율이 거의 비슷하군요..
    영화는 아직 못봤지만 꼭 한번 봐야겠네요~
    네덜란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나라인데 나중에 제대로 한번 더 가고 싶네요~^^

    2010/03/06 15:42
    • 쁘리띠님  수정/삭제

      여행 가신 분들이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만 다녀오셔서 안타깝더라구요~
      (네덜란드쪽 가이드북을 썼거든요..-.-)

      정말 좋은 곳이 많은데...
      네덜란드에 다시가신다면 꼭 다녀오시길~ :)

      2010/03/06 21:39
  3. freeday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그림 멋있네요~~ㅠ_ㅜ 나도 언 제 쯤 저정도 그래 본다나..ㅠ_ㅜ

    2010/03/06 15:58
  4. 텍삼  수정/삭제  댓글쓰기

    델프트 정말 멋진 곳이죠..또 가고 싶어지는 곳이라는....:)

    2010/03/06 21:43
    • 쁘리띠님  수정/삭제

      저두 너무 좋았어요~ :)

      정말 낭만적인 곳인데 잘 안알려져있더라구요~

      2010/03/06 22:00
  5. 텍삼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좋다는...:) 사촌동생이 델프트에서 지금 공부하고 있는데, 그김에 한번 가야하는데....

    2010/03/07 04:25
    • 쁘리띠님  수정/삭제

      우앙~ 거기 그 유명한 공대 다니는 거에요? +.+

      로얄 델프트 앞이 그 대학이었는데!!

      2010/03/09 13:05
  6. 릴리폰드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고가요. 2002년부터 충성스런(?) 정회원인데, 요즘 로그인이 잘 안되네요... 서울에 산다면 오프라인에도 나가고, 쁘리띠님과 동갑이니까 정말 친해질 수도 있었을텐데...
    하여간, 저 이 소설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터라 굉장히 반가웠어요~ ^^ 언젠간 꼭 델프트에 가보고 싶네요. 나침반 위에도 서보고 싶어요. 기분이 어떨까 궁금해요...

    2010/03/07 05:56
    • 쁘리띠님  수정/삭제

      2002년이면... 정말 오래되신 회원이시네요. :)
      게다가 저랑 동갑이시군요! :)

      정회원방 로그인은 정상적으로 하실 수 있는데
      윗쪽에 있어 그런지 접속을 잘 안하시는 것 같아요~

      델프트 작고, 좋아요.
      베르메르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

      2010/03/09 13:06
  7. 초코홀릭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초콜릿때문에 베네룩스 가면서.. 준비겸 여러책을 읽다가 빠지게된 베르메르..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영화를 넘 재밌게 봐서.. 그 후 소설도 보고.. 베르메르 관련 책도 보면서.. 여행의 중심이 베르메르로 살짜쿵 옮겨갔었더랬죠.. 암스테르담에서 봤던 우유따르는 여인.. 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어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델프트 풍경.. 그림들 직접보면 정말 너무 좋구요. 깊고.. ^^ 마을은 아담하니 산책하기 좋아요.. 책과 영화를 재밌게 보셨던 분들은 마을 곳곳이 배경이기 때문에 느낌이 새롭답니다. 베네룩스로 많은 분들이 가셨으면 좋겠어요. 넘넘 좋은 곳이더라구요. ^^

    2010/03/08 03:53
    • 쁘리띠님  수정/삭제

      우아~ 직접 다녀오신 분은
      정말 거의 보지 못했는데... 초코홀릭님은 다녀오셨군요! :)

      저도 베네룩스 많이 가셨으면 좋겠어요~
      책 쓰면서 더 알게된 곳이지만,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지역!!

      2010/03/09 13:08


미미양은 고질적인 피부병이 있는데 털이 길면 심해져서
오늘 산책겸 미용실에 다녀왔어요~

미용실에서 두시간쯤 걸린다기에 저도 목욕탕에 갔죠~

원래 다니던 목욕탕에 갔더니
하필 오늘 보일러 교체한다고 문을 닫아서
조금 더 걸어 다른 목욕탕에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무슨 '목욕데이'인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_=

때밀이 아주머니에게 예약하러 다가갔더니
오늘 사람이 많다고 1시간이 넘게 기다려야한다고 하시며
임산부라 순서를 좀 바꿔보려 친구분과 막 노력하시더니
(제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어요. =_=)
결국 안되겠다며....안쓰럽게 바라봅니다.

하긴, 임신한 이후 목부터 가슴까지 여드름같은게 심하게 났는데
여긴 어떻게 미나 싶었는데 그냥 포기하고
때비누를 사서 혼자 밀기로 결심했죠.

임산부는 양수가 데워지면 안된다고 해서
탕에서 다리만 담그고 앉아있는데
절 지긋이 바라보는 한 할머니의 눈길이 느껴집니다.

"산달이 다 됐나봐~?"

전 지금 8개월이지만, 사실 5개월부터 만삭소리를 들어서
이런 말이 제일 부담스러워요. =_=

그래서 지하철이나 길에서 만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3개월 때부터 +2개월씩 추가해서 말했는데...--;
안그러면 일단 놀란 눈->"근데 배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어요?" "쌍동이에요?" "둘째인가?" 등등
너무 말을 많이 구구절절해야해서 그냥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2개월씩 추가했는데 지금은 2개월 추가하면 곧 애기 낳아야해서...--;;
이제 4월에 애 낳는다고 뻥을...ㅠㅠ

"아, 네~"

"배가 참 이뿌네. 아들인가봐~ 아들배야."

"...딸인데요..=_="

그냥 그러고 멀뚱멀뚱 있었는데,
제가 때를 밀 장소를 찾아 두리번 거리자
아까 그 할머니가 누군가 맡아놓은 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막 그러시는 거에요. ㅠㅠ

"자리가 있는데요..."

"탕에 왔다갔다 하는데 앉을 시간이 어딨어~
다른데 자리도 없는데 그냥 거기 앉아서 때밀어~"


아... 난감했지만 앉을 수 밖에 없었어요. ㅠ_ㅠ
할머니의 말씀이 너무 완고하시고
제가 앉을 때까지 옆에서 지키며 서 계셨어요. ㅠㅠ

결국 거기 앉아있는데
젊은 아줌마 한 분이 오더니 자기 자리라고 말해서
저는 자리를 옮겨야했죠. =_=

지하철에서도 자리를 비켜주시는 분들은
젊은 남자나 여자들보다 애기를 낳아본
아줌마나 할머니들입니다.

신경 써 주시는 모습에 항상 감사하지만,
이럴땐 난감하기 그지없어요. =_=


ps : 미용이 끝난 미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엘레베이터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여지없이...

"산달이 다 됐나봐..?"

또 궁금해하십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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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쁘리띠님 안녕하세요~^^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그사이 결혼도 하시고 임신중이시고,강아지도 있고~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모양입니다~^^;;
    히스토리를 보면 2007년같은데요.
    늦었지만 결혼도 임신도 모두 축하드리구요~ㅎㅎ글들 재밌게 읽었습니다.ㅋㅋ
    어디다 글을 올리나 두리번 거리다가 여기에 올리고 갑니당~ㅎㅎ
    그리고 독일 여행 글을 못 찾겠네요~없나요??

    2010/03/07 16:15
    • 쁘리띠님  수정/삭제

      오랜만에 방문주셨네요. :)

      블로그로 옮기니까 글을 좀 더 쉽게 쓸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독일여행 어떤글 말씀이신가요?

      예전에 직접 쓰셨거나, 다른 분들 여행기라면
      위에 카테고리에 '여행기방'을 클릭하시면 돼요. :)

      아니면 제 글이라면, 아직 사이트 글을
      이쪽으로 다 옮기지 않아서 그런 거니..
      어떤 글인지 알려주시면 업데이트 하도록 할게요. ^^

      2010/03/09 13:10


 
몇년 전,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책을 읽은 후배가 내게 말했다.
 
"언니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요."
.
.
.
그 미래가 언제쯤 올까 싶었는데.... -.-
 
이제 내 뱃속의 아이가 발길질을 하고,
꼬르륵 배꼽시계가 울려 음식을 먹을 때나 아침에 일어날 때가 되었다고
아이가 뭔가 행동을 취하라며 꿈틀꿈틀 움직일 때면 곧 당장은 아니겠지만,
아이가 걷고 말을 이해할 때 함께 여행할 때를 상상해 보곤한다.
 
길에서 배우고 느낄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이는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커갈까.
여행이 아이의 삶과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궁금한 마음에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난
선배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책을 손에 들었다.
 
세상에,
걸어서 20분 거리인 목적지까지
아이와 함께 간다면 1시간 반이 걸릴 수도 있구나! =_=
 
느림과 기다림, 무한한 인내심, 그리고 여유가 필요한
여행패턴으로 바뀌게 되는구나!
 
이때까지 내가 해온 여행과는 다른 여행이 되겠지만,
그녀의 책을 읽으니 역시 아이를 갖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글에서 아이를 낳아본 어머니들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가 묻어난다.
 
이 세상 어머니들만이 가질 수 있는 깨달음과 지혜,
그래서 엄마가 되고 싶었고, 그 중에 딸이 갖고 싶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내 평생 소원 중 하나는 어린 딸과 함께
여행가는 것이었어. :)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하지만, 언제나 그 만큼의 희생이 따른다.
 
엄마가 될 준비를 단단히 해야지.
 
"우리의 행동은 제약 받을 수밖에 없어요.
이 약하고 어린 것들과 함께하니 말이죠.
그리고 그 사람의 행동이 극도로 제한되면 그의 사고 또한 제한되지요.

나는 중빈이 아기였던 시절, 그 시기를 '분석이 없는 시기'라고 불러요.
그런데 그 분석이 없는 시기가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보면, 그 시기를 통과하는 동안 분명히 '진화'했거든요.

작고, 느리고, 지루한 것들을 반복해서 무비판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나는 조금 따뜻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전엔 남과 다른 것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남과 같은 것에도 진심으로부터 눈물이 나올 때가 있어요.
어머니라는 자리가 준 선물이죠."
<272p 중에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소희와 JB 사람을 만나다 - 터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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