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제 글, 아시아 지역의 '생활의 발견'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짐작하시겠지만,
생활의 발견은 그 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느끼는 '컬쳐쇼크'에 해당하는... 그런 소소한 이야기입니다.
유럽편은 여행의 팁이 될 수 있는 부분도 넣었으니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


네덜란드! 하면 떠오르는 '튤립'과 '풍차' :)

네덜란드 사람들은 사실 이러한 오래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차라리 램브란트와 반고흐, 또는 하이네켄과 밤문화가 더 적절하겠네요.

특히나, 암스테르담에 도착한다면 이러한 '튤립과 풍차' 이미지와는 매우매우매우매우~ 거리가 있는
그런... 이미지와 만나게 되지요.

바로, 홍등가(Red light District)라 불리우는 합법화된 매춘구역과


커피숍이라 불리는 '소프트 드러그(마리화나 등)' 판매소입니다.

 
네덜란드는 17세기 해상무역의 황금기를 누렸던 국가로
특히, 암스테르담은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암스테르담의 홍등가는 14세기에 선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져
17세기 해상무역의 황금기에 함께 번창~했던 산업으로
그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요, 2000년부터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죠.
 
매춘과 마약문제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
매춘여성들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노동환경을 보장해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던 문제들을 국가가 직접 제어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지금은 또다시 범죄의 온상이 된다며 구역을 축소하려고 하고 있습니다만...-_-)

보통 영화에서 보면,
대부분 서양에서의 매춘은 길거리에서 언니들이 서 있으면
픽업하는 남자들이 있는 1:1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암스테르담은 홍등가 구역이 있어 서양인들은 매우 흥미롭게 생각합니다.

한국이나 아시아지역에서는 일반적인 형태라 홍등가가 신기하지는 않겠지만 -_-;
우리에게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관리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위의 사진] 암스테르담 홍등가 근처의 조각

실제로 홍등가에 가면 빨간 조명 아래 통유리 건너편에서
자극적인 몸놀림을 하는 매춘여성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대한 에티켓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해서는 안됩니다.)

매춘을 양지로 끌어올려 이를 관광상품화한 네덜란드의 아이디어는
개방성을 넘어 17세기 해상왕국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죠. -.-

또한, 소프트드러그(마리화나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커피숍이라고 쓰인 가게에서는 가벼운 마약류를 구입해 피우는 것이 합법화되어 있는데요,
그렇다고 암스테르담 사람들이 마약에 빠져사는 것이 아니랍니다.
네덜란드인의 평균 대마 흡연율은 금지국인 미국의 1/2, 영국보다 낮으니까 말이죠.
(신기하죠? 왠지 합법화 하면 마약천지가 될 것 같은데 말이죠~)

덕분에 암스테르담은
유럽인들 사이에는 주말여행의 핫스팟으로 유명해
주말이 되면 항상 숙소들은 만원입니다.
(숙소요금도 꽤 많이 올라가니 암스테르담은 주중에 방문하는게 저렴합니다~)
 
얼마전 있었던 故 장자연씨 사건에서
성접대는 강요받았는데 성접대를 받은 사람은 없다던지
또, 성매매를 하거나 룸살롱에가서 성접대를 받는 산업(?)은 활발한데
즐겨(?) 가는 남자는 없는 신기한~ 우리나라랑 많은 비교가 됩니다.

이야기가 좀 무거워졌나요? =_= 이러려고 시작한 것은 아닌데...--;;;;
이번엔 좀 소소한 이야기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자전거, 자전거, 자전거

[위의 사진] 암스테르담 기차역 옆의 자전거 보관소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랍니다. +.+ 우리나라였으면 주차장이었을텐데 말이죠~

암스테르담에 도착한다면, 아니 네덜란드의 도시를 돌아다닌다면
가장 친숙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전거입니다. :)

우리나라도 점차 걷기여행 붐이 일어나고 있고,
유해가스를 내뿜는 자동차 대신에 친환경적인 자전거를 이용하자며
자전거 전용도로를 건설하고 무료 자전거를 시범 운행하고도 있는데요,
네덜란드는 자전거 사용이 오랜시간 정착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산이 없는 평지라 자전거타기가 좋은 환경이기도 합니다.

[위의 사진] 자전거 전용 신호등

저도 이곳에서 자전거를 빌려 암스테르담의 아름다운 운하 곳곳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었는데요,
문제는.... -_-;;; 다른데 있더군요. -_-;; 바로, 자전거가 너무 높다는 것. ㅠㅠ

[위의 사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앞에 바구니달린 핑크색..등등의 여성용 자전거는 이곳에서 볼 수 없습니다. ㅠㅠ
다들 롱다리들이라 이뿐 언니들도 다 저런 모양의 자전거 밖에 안탄다는 사실.

빼놓을 수 없는 운하


우리나라와 매우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바로 운하입니다.

아시겠지만, 네덜란드의 뜻은 '(바다보다) 낮은 나라'로
육지가 해수면과 별로 차이가 없어 비가올 때면
많은 피해를 겪곤 했습니다.

덕분에 운하를 만들고, 물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잘 갖춰
지금은 국토의 1/4이 바다를 메운 간척지랍니다~

도시를 걸어다닐 때는 잘 모르지만,
지도를 보면 운하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곳곳이 물이고, 수로를 잘 활용하고 있지요.

[오른쪽 사진] DHL 운송회사의 보트입니다. :)
DHL 차량은 많이 봤지만 보트를 보기엔 처음이라
제겐 너무 신기했어요~ +.+

예쁜 길 안내 표지


[위의 사진]
은 암스테르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길안내 표지입니다.
주로 여행자들을 위해 만든 예쁜 표지죠. :) 이 안내 표지만 있으면 길을 잃지 않아요~

그런데.... 보시면, 사람 모양이 있지요? 그 모양이 도시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

[위의 사진] 덴하그와 델프트의 표지

표지판의 색깔도 다르고, 글자체도 다르고, 상징도 다르지만
일정한 유형을 유지하면서 통일성을 지닌 모습이 깔끔하고 좋아보였는데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디자인은 다양하지만 통일성이 너무 떨어져서...-_-

이런 점들을 좀 배워서 반영했으면 좋겠어요~

들쭉날쭉한 운영시간

[위의 사진] 오픈시간이 상점마다 다 달라요~ +.+

우리나라 같은 경우 상점들의 운영시간이 거의 일정한 편이잖아요?
보통 10시에서 8시, 어떤 곳은 밤 10시까지. 그런데, 네덜란드는 시간이 다 다르답니다. +.+
보시면 월요일과 일요일은 거의 정오에서나 열고, 평일날도 시간들이 조금씩 다르죠.

한국에서의 생활패턴대로 생각하고 있다간
네덜란드에서는 낭패를 당하기 쉽습니다. -.-

저도, 떠나기 직전 뭔가 사려다 가게의 오픈시간이 늦어 그냥 떠나야했던 적이 있는데요,
네덜란드에서는 미리미리 시간을 잘 봐 두세요~
보통, 가게의 정문에 붙어있어요. :)
 

공중화장실
운하 옆에는 남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공중 화장실이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공중화장실은 암스테르담에서만 보았어요.


 [위의 사진] 안에는 들어가보지 못해서 못찍었어요. =_=

또, 길의 곳곳에는 노상방뇨를 응징하기 위한 이런 설치물도 볼 수 있죠. +.+

[위의 사진] 중간중간 붙인 철판에 오줌이 튀어 젖도록 만들었습니다.
모르고 눴다간 된통 당할 듯. ㅋㅋ

[위의 사진] 이런 것도 있군요~ :)

그런데 말이죠, 남자들은 왜 노상방뇨를 하는 것일까요? +.+

생물학적인 특성으로 노상방뇨를 하기 편한 구조라 그런건지... 아니면,
본능인건지...-_- 노상방뇨는 전 세계 남자들의 공통점으로... 제겐 풀리지 않는 의문입니다. =_=

자판기 스타일 음식
이것도 네덜란드에서만 보았던 풍경인데요, 자판기 형식의 인스턴트 음식 판매소입니다.
가격도 1유로 대고 맛도 썩 나쁘지 않아 종종 먹었던 음식 중에 하나죠~

[위의 사진] 동전을 넣으면 음식문을 열 수 있어요~ :)

사실, 서유럽 사람들은 이런 스타일의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네덜란드에서만 유난히 성공한 듯 해서 신기했어요~

가만 생각해보면 네덜란드의 음식문화가 그리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군요. +.+

암스테르담에 가면 쿠폰을 잘 챙기세요~

[위의 사진] 이런 쿠폰은 숙소의 로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어요~ :)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시스템화된 명함 쿠폰을 본 적이 없는데
유독 네덜란드만 발달된 것 같아 찍어보았습니다.

이런 명함 쿠폰들이 있으면 엽서 등 기념품을 무료로 받거나
일정금액 할인이나 또는 음료수를 공짜로 마실 수 있죠. :)

잘 활용하면 비싼 유로를 절약할 수 있습니다. ^^
 

암스테르담 무료!! 시내 워킹투어
보통 가이드투어는 유료인데, 암스테르담만 신기하게 무료더라구요~ +.+
가이드와 함께 암스테르담 시내를 3시간 동안 돌아다니며 역사, 문화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영어로 진행되고 영어를 썩 잘하지 못하더라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투어입니다.
예약할 필요도 없고 중앙역(11:00/15:00)이나 담 광장의 국가기념탑(11:15/15:15)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홍등가 투어도 있는데, 저녁에 진행되고 이건 유료에요~ :)

[위의 사진] 국가기념탑 앞에서 무료투어를 기다리는 사람들


 반가운 한국어 :)
[위의 사진] 첫번째 사진은 암스테르담의 안네프랑크 하우스,
두 번째 사진은 잔센스칸스의 나막신 만드는 공장

생각지도 못했던 한국어를 네덜란드에서 본다면 기분이 매우 으쓱해지겠지요? :)
네덜란드는 한국인에게 매우 우호적이고 축구와 히딩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행하면서 종종 한국어를 만날 수 있어요~ :)


------------

자,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

네덜란드는 합법적인 매춘과 마약(일부지만...)으로 호기심으로 접근할 수도 있지만,
조금 진지하게 살펴보면 에이즈환자와 매춘여성들의 인권이 가장 잘 보장된 나라이고
세계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이들의 입양도 인정한 나라로

매우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국가입니다.

아마도, 무역을 했던 상인들의 개방성과 합리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요.

국토의 1/4이 바다를 메꿔 땅을 만든 사람들이니 정말, 대단하죠?

제게 네덜란드는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나라로
앞으로 이들이 또 어떤 깜짝 놀랄 만한 기록을 만들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


자세한 것은 여행지에서 직접 느껴보셨으면 좋겠네요. ^^


 

ps : 네덜란드 여행을 준비중이라면, 여행정보가 궁금하시죠?
제가 참여한
중앙북스의 '프렌즈 유럽' 네덜란드 편을 참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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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패딩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생한 사진과 정보 잘 보고 갑니다.
    노상 방뇨 방지 시설이 인상적이네요.. 왜 저는 못 봤는지..

    2010/03/12 17:54
    • 쁘리띠님  수정/삭제

      사실, 좀 으슥한 곳에 있어 잘 안보여요~ ㅋㅋ
      저도 무료 워킹투어하다가 가이드가 이야기해줘서
      알게되었거든요. :) 그 다음부터는 눈에 보이더라구요~^^

      2010/03/12 17:56
  2. wonnie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는 '관광객'이 아니라
    '문화를 읽는 사람' 같아요.

    2010/03/12 17:59
    • 쁘리띠님  수정/삭제

      네덜란드는 알면 알수록 재미난 나라더라구~

      여러번 가니까 처음에 여행했던 때랑 달리
      이것저것이 눈에 들어오더라~ :)

      2010/03/12 18:20
  3. 완두아빠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자전거 정말 부럽네요.
    저도 요즘 왠만한 거리는 자전거 타고다니는데...자동차도 자동차인데 사람들이 너무 막무가네로 안비켜줘요 ㅠㅠ
    결국 별수 없이 자동차와 달리는게 편하더라고요. 위험천만;
    우리도 같은 세금 내고 사는데 보호받는 느낌좀 받고 살아봤으면 좋겠네요~
    매이매일 사지로 내몰리는것만 같아서 씁쓸하네요 ^^

    여행기 잘 봤습니다~

    2010/03/12 19:19
    • 쁘리띠님  수정/삭제

      곧 아빠가 되실껀데 조심하면서 다니세요! +.+
      서울 시내 곳곳에 자전거 도로 생긴걸 보긴 했지만,
      좌회전할 때는 자가용이랑 만나게 되어 위험하더라구요~

      자전거 인프라가 탄탄해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요~ 그때까지 화이팅! :)

      2010/03/13 00:31


 [위의 사진] 독일어로 Fürstentum Liechtenstein(퓌르스텐툼 리히텐슈타인)은 리히텐슈타인 공국이란 뜻입니다. :)


여러분들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들의 랭킹을 알고 계시나요? :)

오늘 소개할 리히텐슈타인도 꽤나 작은 국가 중 하나이지만,
세계에서 작은 나라 랭킹을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위는 바티칸 시국(0.44km²), 2위는 모나코 (1.95m²), 3위는 나우루(21m², 오세아니아 지역의 섬나라),
4위는 투발루(26m², 폴리네시아의 섬나라), 5위는 산마리노 공화국(61m², 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독립국),
6위는 리히텐슈타인(160m²) 순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총 면적은 100,032km²입니다. ^^)

1위에서 6위까지 국가 중 4개국이 유럽에 있는데요,
그 중 유럽에서 바티칸과 모나코는 많은 분들이 가보셨겠지만
산마리노 공화국과 리히텐슈타인은 아직 가보지 못하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

대부분의 유럽국가를 다녀왔지만 저 역시 생소한 그런 나라들이죠.
그 중에 서유럽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리히텐슈타인에 다녀왔습니다. :)

일단, 리히텐슈타인의 위치를 자세히 보죠~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언어는 독일어를 사용하고, 화폐는 스위스와 같은 스위스프랑(CHF)을 사용합니다.
수도인 파두즈(Vaduz)가 있는데 기차로는 연결되지 않아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는 방법은 스위스의 부쉬(Buchs)와 사르간즈(Sargans)에서 버스편이 있고
(부쉬는 20분 정도, 사르간즈에서는 30분 소요),
오스트리아쪽에서는 펠드크리쉬(Feldkirch)에서 버스로 30분이 걸립니다.

어떤 루트가 편리한지, 자세한 기차편과 버스 시간은
이전의 목적지에서 파두즈(Vaduz, Post)를 넣어 이곳 D-Bhan에서 검색하시면 됩니다. :)


저는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사르간즈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위의 사진] 사르간즈 기차역, 라커가 없으니 짐을 맡길 수는 없어요~ :)
기차표 파는 곳에 환전소가 함께 있습니다.

작은 기차역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나가는 방향이나
버스 타는 곳 안내 표지판을 따라가면 버스정류장이 나옵니다.
정류장은 기차역에 붙어있어 찾기 쉬워요. :)

D-Bhan에서 찾은 버스타임테이블 스케줄에 맞춰 버스가 도착합니다.
또는, 정류장 벽쪽의 타임테이블을 참고하시면 버스시간을 아실 수 있어요~

버스는 이렇게 생겼어요~ :)

[위의 사진] 사르간즈<->파두즈를 연결하는 버스

[위의 사진] 사르간즈에서 출발한 버스가 파두즈에 내리는 곳(중앙우체국 앞)과
오른쪽 사진은 바로 건너편에 있는 사르간즈행 버스가 출발하는 버스 정류장입니다.

요금은 3.6CHF(2009.6) 버스를 타면 운전사 아저씨에게 묻지 않아도
모니터가 다음 정류장에 몇 분 뒤에 도착하는지 쉽게 보여줍니다~

[위의 사진] 버스정류장 내부

내릴 곳인 파두즈 포스트(Vaduz Post)까지 30분 정도가 걸립니다. :)

가는 동안에는 이런 풍경을 보실 수 있어요~

[위의 사진] 발저스(Balzers)의 성

파두즈 포스트 정류장에 도착 해 중앙우체국 건물 뒤쪽으로 걸어가면 관광안내소가 나옵니다.

[위의 사진] 리히텐슈타인 관광안내소

이곳에서 무료지도와 정보 등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2유로(스위스프랑도 가능~)를 내면 여권에 도장을 찍어줍니다.

여권에 도장을 찍는데 왜 돈을 내야하냐고 묻는다면,
저도 할 말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리히텐슈타인에 가면
예쁜 우표를 사고 여권에 도장을 찍고 싶어합니다. -.-

아마도 작은 국가라는 희소성 때문에 그런 것이겠죠~ :)

[위의 사진] 저도 받았습니다. -.- 뒤로 보이는 건물은 성 플로린 성당(Kathedrale St. Florin)입니다.

우표로 유명한 나라답게 관광안내소에서도 우표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길거리에서도 수집용 우표를 구입할 수 있어요~ ^^

[위의 사진] 관광안내소의 우표들

가격은 스위스프랑이 써 있으니 환율대로 계산하면 됩니다. :)
예를들어, 왼쪽 아래의 5프랑짜리 우표는 약 6천원(1CHF=약, 1,190원으로 계산 시)정도네요.



 

아래는 국왕부부의 모습을 그린 우표입니다. :)


저도 이곳에서 엽서와 우표를 사서 한국의 신랑에게 엽서를 썼죠. :)
엽서요금은 0.9CHF, 우표 요금은 1.8CHF
엽서를 써서 관광안내소에 맡겨도 되고 바로 앞의 우체국에 가셔도 돼요.

[위의 사진] 교회 옆 공원에서 엽서를 썼어요~ :)

그리고, 우체국으로 고고씽~!

[위의 사진] 중앙우체국

엽서도 보냈으니, 본격적인 도시 구경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

1. 역사 박물관(Liechtensteinisches Landesmuseum)

 
이 작은 박물관안에 리히텐슈타인의 신석기/구석기 유물부터 현재까지 모두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가 작은 박물관에 들어있다니 신기했어요~

2. 현대미술관(Kunstmuseum Liechtenstein)
 
리히텐슈타인이 유럽에서 고가의 소장품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심 기대하고 왔는데... 기획전시실이 메인이더라구요. -.-

3. 우표박물관(Postmuseum)

 
리히텐슈타인의 유명한 생산품인 우표, 우표박물관입니다. 무료! :)

입구의 우편배달부. :)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왼쪽의 패널을 잡아당기면 우표 스크랩이 열려요~ :)

 

꽤 촘촘히 있는데 우표 수집하시는 분들에게 흥미로울 듯.

리히텐슈타인에 괜찮은 소장품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려는 순간,
현대 미술관 밖에서 보테로의 작품을 발견합니다. +.+

 
이런! 보테로의 작품이 길거리에~ :)

그녀는 편안히 누워 하늘 저 편을 응시하고 있었는데요,

 
날이선 건축물들 사이에서 편안히 누워
먼 산을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파두즈의 메인거리 곳곳에는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재미난 표정과 포즈의 청동상. :)


 이런 작품도 있구요,

이런 작품도 있어요.


오른쪽의 두 청동상 뒤에는 시청(Rathaus)이 있습니다.


현대 미술관에서 본 작품들 보다
길거리에서 본 작품들이 훨씬 훌륭하고 멋지네요.

생활의 예술, 이것이 유럽문화의 큰 특징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리히텐슈타인의 거리는 미술작품으로 그야말로 우아합니다. :)

4. 파두즈 성(Schloss Vaduz)
이번에는 성으로 올라가 보도록 할게요.
메인 거리에 산으로 올라가는 표지판이 있으니 그냥 따라 올라가면 됩니다.

 

이런 경사진 산책로를 따라가면 되는데
산이긴 산입니다. =_=

 [위의 사진] 위쪽에서 바라본 파두즈 시내의 모습

조금 더 올라가면 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꽤 힘들었어요. =_=

[위의 사진] 아담한 성의 모습

리히텐슈타인의 독립기념일은 8월 15일인데,
이날을 기념해 축제가 열립니다.

 
파두즈 성의 입구입니다. 현재도 왕의 가족들이 살고 있어 들어가볼 수는 없지만,
역시 성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는게 훨씬 아름답네요. -.-


5. 레드하우스(Rotes Haus, Red House)
성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오른쪽 편에 와이너리 있어 가보기로 했습니다.
도시 주변에 와이너리 모습을 보는 것은 여전히 신기합니다. :)

시음도 할 수 있다는데 제가 갔을 때는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고 있었네요.
관광청에서는 리히텐슈타인의 와인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포도가 잘 영글어가고 있네요. :)

[위의 사진] 레드하우스에서 바라본 파두즈 시내. 왼쪽 산 위에 파두즈 성도 보이네요. ^^

리히텐슈타인의 관광청 문을 여는 10시부터 오후까지, 한나절 동안
리히텐슈타인을 돌아봤습니다.

숙소가 호텔 밖에 없어서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리게 되었지만
호스텔이 있었다면 1박 정도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리히텐슈타인의 수도, 파두즈 밖에 가보지 못했지만,
파두즈와 비슷한 도시인 샨(Shaan)도 있고,
무엇보다 리히텐슈타인의 하이라이트는 말분(Malbun)과 같은 산악 마을을 거점으로

스키와 하이킹을 즐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유럽의 작은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있으시다면
리히텐슈타인에 들러보세요. :)

pretty ch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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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onnie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렸을 때 '먼나라 이웃나라'인가??? 에서 리히텐슈타인이라는 나라를 처음 듣고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런 나라보다 이름도 멋있고 해서 동경했던 적이 있어요.
    상상했던 것처럼 작고 예쁜 나라네요^^

    2010/03/12 15:14
    • 쁘리띠님  수정/삭제

      나도 이름이 너무 예뻐서 궁금해서 한번 가봤어~

      유럽에 작은 나라로는 안도라공국이랑,
      산마리노 공화국이 있던데 담에 가봐야지~ :)

      2010/03/12 17:44
  2. 패딩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히텐슈타인에 기회가 되면 가보려 했는데..
    노선을 잘 못짜서 못간것이 아쉽네요..
    안도라 공국도 좋았습니다. ^^
    옛날같지는 않지만 쇼핑에 특화된 나라인듯 하더라구요..

    2010/03/12 17:58
    • 쁘리띠님  수정/삭제

      오~ 안도라 공국에 다녀오셨군요! :)

      저도 꼭 가보고 싶은데... 쇼핑이라...
      의외인데요.

      2010/03/13 00:32
  3. 패딩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도라는 쇼핑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곳..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전 지역이 비과세 지역이에요..
    여행 안내소에서 여기서 가장 좋은(best) 쇼핑 센터가 어디냐고 물어봤더니
    여기 전체가 베스트 쇼핑 센터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

    2010/03/13 01:02
    • 쁘리띠님  수정/삭제

      아! 비과세라서.. 그렇구나.
      여튼 안도라 공국은 이름이 너무 신비해요. ㅎ

      2010/03/14 21:52
  4. pennpenn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의 모습이 매우 멋있습니다.

    2010/03/13 05:49
  5. 뿌와쨔쨔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소에 관심이 많던 나라였는데 이렇게 접하고 가네요.
    잘 봤어요 쁘리띠님 님 ^^

    2010/03/13 15:12
    • 쁘리띠님  수정/삭제

      오~ 태터앤미디어 그때 행사에서 뵈었었는데...
      제가 '이밥차'라는 요리 책을 정기구독했는데
      거기안에 뿌와쨔쨔님 만화가 있어서 방가왔어요~ :)

      재밌더라구요~ ^^

      2010/03/14 21:54

[그리스, 미코노스] 골목의 끝

여행이야기/유럽 2010/03/11 16:16 Posted by 쁘리띠님

골목은 항상 마법과 같은 흡입력이 있어.

계속 쳐다보다간
빨려들어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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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산토리니>

고대 그리스의 옷을
현대에 접목시키면
이런 의상들이 나오게 되는구나.

가만보니 몇몇 옷들은 한국에서도 보았다.

자연스럽고 편해보이며
동시에 여성미가 물씬~ 넘치는 의상들에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 =_=

내 몸매에 어울리는 의상이 있었다면...
아니면, 의상을 위해 내 몸매를 맞추던가...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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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의 터키 전통옷을 파는 가게


여러나라를 여행하면서
상인의 피가 대대로 흐르는 나라가 몇 있다.

1. 이스라엘
 당연히 말할 것도 없다.
피도 눈물도 없는 셈의 달인들~
세계 경제를 꽉 잡고 있다.

2. 인도, 중국
인도는 사기의 달인, 중국은 바가지의 달인..
뭐 둘다 바가지를 많이 씌우긴 하지만..
인도는 '친구'를 빙자한 사기가 추가된다. -_-;;

3. 이집트, 터키
'정'을 내세워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상술을 쓴다.
중동의 가게에 가면 기본적으로 나오는 '차'
조금 있다보면 금새 친구가 되어버리고
손엔 물건이 들려있다. =_=


1/2/3의 모든 상인들은
정말 피를 타고 났다.

이스탄불의 시장 길을 걷다
경지에 달한 터키 상인의 디스플레이를 봤다.


태국 마네킹에 밸리댄스 스카프를 허리에...ㅋㅋ
아... 인터내셔널해~

더 최고는 바로 이거였다지~!


인디언 오빠들은,
이 사실을 알까몰라~

중남미의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했다. :)

"이스탄불에 가면 말이죠.
당신들 마네킹에 밸리댄스 스카프가 매어져 있어요, 그거 알아요?"

라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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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패딩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2년 월드컵 직후 한참 우리나라와 터키간의 사이가 좋을때.. 이스탄불에 갔습니다.
    돈 단위가 워낙 커서 계산이 안되었을때 택시를 탔다가 바가지 썼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매우 좋아하면..
    We are friends.. 라고 하더니 뒷통수를.. 쩝~~ ^^

    2010/03/12 18:00
    • 쁘리띠님  수정/삭제

      ㅋㅋ 저도 택시탔다가 바가지 쓴 적 있어요~
      그때는 급해서 탄거였는데 막 뺑뻉~ 돌더라구요~
      (제가 지도보면서 갔었는데...-_-;)

      근데, 현지에서 정말 전쟁 때 도운 형제라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우리나라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것처럼
      미국이 돈준대서 참전한 거라지요. ㅠㅠ

      2010/03/12 18:22
    • Vhs-Cover  수정/삭제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유엔 참전국가 16개 나라들 모두가 돈 아니면 이득 때문에 참전한 셈인지라 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우리나라만 보셔도 그렇잖아요

      말씀하신대로 베트남전쟁 미국이 막대한 돈 줘서 참전한 용병이나 다를 거 없지만, 그런 이야기하면 괜시리 우리나라 군인 노병들 마구 화내더군요. 피식..헛소리들 하긴

      거저 참전하나.

      2010/03/15 07:39
    • 쁘리띠님  수정/삭제

      저는 처음에는 터키사람들이 정말
      '형제의 나라'라서 참전했구나..하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날 밤, 술자리를 갖고 계신 할아버지 무리 중 한 분이
      자괴감 섞인 표정으로 '미국 때문에' 참전했다고
      말씀하시기에... 그게 진실이구나... 싶었어요.

      씁쓸하지만,,, 정말 그게 진실이겠지요.

      2010/03/15 16:01
  2. 보라건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형제의 나라라면서 저는 지나가는데 막 쉬고가라고 해서 차도 그냥 대접받고 식사 대접도 받고 좋았었어요
    터키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2010/03/15 01:23
    • 쁘리띠님  수정/삭제

      저도 친절한 사람들 정말 많이 만난 곳이 바로 터키에요~ :)
      세번쯤 다녀왔는데 또 가고 싶어요. ㅠㅠ
      다음엔 아기랑 같이 가려구요~ :)

      2010/03/15 15:58



잔잔하지만 묘한 설레임이 있는
진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쓴 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은 사람이라면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2003)'가 무척 반가우셨을 겁니다. :)

제게 슈발리에의 소설이 매력적이었던 건
그녀가 '진주 귀고리 소녀' 를 보고 예술가다운 상상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풍경과 분위기를 상상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그림이 탄생했는지
실타래가 풀리듯 술술~ 이야기를 지어냈으니까요.

그녀의 책은 비록 허구이지만 베르메르와 하녀간의 로맨스를 상상해
그 상상만으로 '정지된' 그림을 어떤 비밀이 감춰진 그림으로 숨쉬게 만들고
베르메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만듭니다. :)

그래서 '진주 귀고리 소녀' 그림도 아름다웠지만
이러한 작가의 창조적인 상상력 또한
그에 못지 않은 감동을 가져오게 해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답니다.

제게는 그런 책이었으니 영화가 나오자
배경이 된 네덜란드의 '델프트'라는 곳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

[위의 사진] 진주 귀고리 소녀처럼 포즈를 취한 스칼렛 요한슨 :)
왼쪽 사진은 수채화에요~ 유화는 아래에 있습니다~

책과 영화의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내용은 이렇습니다.
1665년 플랑드르 지방, 델프트에 사는 중산층의 화가 베르메르의 집에 하녀가 한명 들어옵니다.
16살인 그녀의 이름은 그리트, 타일도공인 아버지를 둔 개신교 집안의 소녀인데
집이 가난해 천주교를 믿는 베르메르의 하녀로 들어오게 된거죠.

베르메르와 그리트는 묘한 감정이 오가며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물감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그의 일을 돕게까지 하지만
특별히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이 있는 매력적인 내용입니다. :)

하녀에게 값비싼 진주귀고리를 걸어주기 위해 귀를 뚫어주는 에로틱한(?) 장면이나
완성된 초상화를 보고 배신감과 질투심에 울부짖는 그의 아내의 모습이
(그림에서 자신의 진주귀고리를 건 하녀를 보았으니까요)
이 영화의 가장 격정적인(?) 장면입니다. :)

이번 기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에 대해 소개할 수 있어 즐거운데요,
올 여름, 많은 분들이 방문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북구의 모나리자, 진주 귀고리 소녀
 [왼쪽 사진]은 '북구의 모나리자' 또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리우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1665년)'입니다.

커다란 눈망울, 립글로즈를 바른듯한 촉촉한 붉은 입술,
머리는 이국적인 푸른색과 노란색의 천으로 꼼꼼히 가렸고
귀에는 아주 커다란 진주 귀고리가 걸려 있습니다.

지금도 저 정도 크기의 진주 귀고리는
희귀할 뿐만 아니라 매우 고가인데요, -.-
베르메르가 살았을 당시에도 진주 귀고리는
부유한 여성들이나 소유할 수 있는 귀한 보석이었고
크기가 클수록 부유함의 상징었습니다.

매혹적인 모습의 소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궁금증을 유발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베르메르의 일생처럼
모델에 대한 정보가 없어 더욱 신비로운 그림으로 남게 되었죠.

사실, 이 그림은 1881년 A.A. des Tombe라는 사람이
헤이그의 경매에서 2.3길더(겨우! =_=)에 샀다가
1902년 상속자없이 사망하면서
마우리츠하우스에 자동으로 기증된 작품이랍니다.
 
베르메르의 작품들은 1866년 예술 비평가인 Thoré Bürger에 의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위의 사진] 진주 귀고리 소녀가 있는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우스(Mauritshuis)

[위의 사진] 책과 영화 덕분에 미술관의 기념품점에는 '진주 귀고리 소녀'가 가득합니다. :)


델프트의 베르메르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1632~1675)가 태어나 평생을 산 곳은 델프트(Delft)입니다.
그런 이유로 '델프트의 베르메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위의 사진] 델프트는 걸어다닐 수 있는 아담한 도시입니다.
가운데 여백이 보이는 곳이 중심가인 마르크트(광장)이고 신교회와 시청이 있어요.

그는 이곳에서 1653년에 Saint Luke 길드의 조합원이 되었고, 일생동안 35여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중 델프트를 배경으로한 풍경화가 2점이 있고, 나머지는 초상화나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렸죠.

그는 델프트에서만 잘 알려진 화가였는데 이유는 워낙 작품을 조금만 그리기도 했고, 생도 짧았고,
또, 이 지역의 그림 수집가였던 Pieter van Ruijven 이 그의 그림을 대부분 샀기 때문입니다. 
그는 적은 편수의 그림의 수입에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그리 부유하게 살지도 못했고,
사망 당시에는 남은 빚 때문에 그의 부인은 그림을 팔아야할 정도였습니다.

이 시대의 상황을 알면 좀 더 재미가 있는데요,
17세기는 네덜란드가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척하고 식민지를 경영했던 '황금시대'입니다.
이 시기에 가장 강력하게 두각을 나타낸 계급은 당연 부유한 상인들이었죠.

왕족이나 성직자 그리고 귀족들이 미술작품을 주문했던 중세시대와 달리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장식하고 부유함을 보여줄 미술작품을 원하게 됩니다.
이들이 원하는 작품들은 사진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초상화를 많이 원했고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사실주의 화풍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잘 아시는 렘브란트는 '렘브란트 라이트'라는 조명같은 빛을 활용해 인물을 강조했었는데요, 
베르메르는 사실주의 작가이면서도 '렘브란트 라이트' 같은 강한 극적인 느낌의 빛보다는
빛을 한번 순화시킨듯 부드러운 느낌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위의 사진] 진주목걸이를 한 여자(1662~1664, 독일 베를린 Staatliche 박물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인데, 아직 직접보지는 못했답니다. :)
있는 그대로를 묘사한 작품이지만, 빛이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자연스럽죠? :)

제가 델프트를 찾았을 때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는데요,
기차역에서 중심가까지는 운하를 따라 조금 걸어가야 합니다. :)

 [위의 사진] 네덜란드는 어딜가나 운하입니다. :)

 [위의 사진] 마르크트(광장)의 신교회에서 바라본 델프트의 모습

 [위의 사진] 마르크트에서 바라본 신교회

영화는 마르크트에서 시작해 마르크트에서 끝이 납니다.
[위의 사진]에서 동그란 원형으로 표시된 곳은 나침반으로 16세기에 있었다가 사라진 것인데요,
영화 제작을 기념으로 다시 복원했다고 하네요~

영화 전반부에는 스칼렛 요한슨이 베르메르 집의 하녀로 들어가기 위해 지나치던 곳이고,
또 하녀에서 쫓겨나 광장으로 걸어 나올 때도 같은 장소에서 잠시 생각을 하듯 서 있죠.


나침반 가운데에는 'Elck wandel in godts wegen' (모든 길은 신의 뜻에) 라고 쓰여 있습니다.

[위의 사진] 영화에서의 신교회, 광장을 지나쳐가는 그리트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곳은 주로 이 주변에서 찍었는데
델프트 뿐만 아니라 베니스, 벨기에의 Damme, 룩셈부르크 영화 촬영소에서 찍었다고 하네요.

  [위의 사진] 신교회의 내부는 네덜란드 독립의 아버지, 오렌지 왕자의 무덤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 델프트의 신교회는 왕가의 무덤이 안장된 곳입니다.
현재의 왕족들 역시 죽으면 이곳에 묻히게 됩니다.

 [위의 사진] 근처에는 구교회가 있는데 개신교였던 베르메르는
1653년 카타리나 볼너스와 결혼한 후 부인을 따라 카톨릭으로 개종했죠.
부인과 사이에 11명의 자식을 낳았다고 합니다. +.+


그래서 그의 무덤은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사진]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무덤

델프트의 곳곳에는 아래처럼 큐브가 세워져 있습니다.

 [위의 사진] 베르메르와 관련된 스팟에 세워진 큐브.


인포에 가면 베르메르와 관련된 무료 지도가 있는데
지도에 표시된 곳을 찾아 돌아다니면 됩니다. :)

태어난 곳, 살았던 곳, 그림을 그렸던 곳 등
여러 장소가 표시되어 있으니 산책겸 둘러보세요~ :)

덧붙여, 베르메르가 남긴 유명한 작품들을 몇점 보여드릴게요.
아래 작품들은 네덜란드와 여러 나라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아래 그림 중 마음에 드는게 있다면 소장된 곳을 눈여겨 봐 두세요.
그리고, 유럽여행 때 직접 보러 가보시길... :)


그림은 직접 눈으로 보는게 가장 감동적이에요.

 [위의 사진] 레이스를 뜨는 소녀(1669~1700,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위의 사진] 델프트 풍경(1659~1660,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우스)
그림을 그린 장소에 가봤지만 풍경이 너무 많이 변해 잘 모르겠더라구요~

[위의 사진] 우유를 따르는 하녀(1658,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역시 제가 좋아하는 그림, 진주 귀고리 소녀처럼 겨자색과 파란색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


그의 작품들은 '이상한 나라의 폴'(아시는지 모르겠지만...=_=)이란 만화에서
시간을 정지시켰을 때처럼 그림을 보는 동안 시공간을 '정지'시켜 버립니다.

심장의 박동은 느려지고 뇌파는 편안해지지요. :) 

엄숙한 종교화나 심심한 풍경화(제게는...-.-)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세밀하고 따뜻하게 그려낸
베르메르의 작품들이 정말 좋습니다. :)

* 베르메르 센터 : http://www.vermeerdelft.nl
* 베르메르의 모든 그림 보러가기 :
http://www.vermeer-foundation.org

pretty ch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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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asepoboy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림에는 절대 문외한이고 네덜란드는 물론 아직 제주도도 못가본 저지만 이 영화는 재밌게 봤습니다..스칼렛 요한슨때문에...;; 언급하신것처럼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묘한 긴장감을 주죠...ㅋ 글 너무나 재밌게 잘읽었습니다^^

    2010/03/06 15:17
    • 쁘리띠님  수정/삭제

      저도 책과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답니다. :)
      그래서 델프트까지 가게되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0/03/06 21:38
  2. 묵?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칼렛 요한슨하고 싱크로율이 거의 비슷하군요..
    영화는 아직 못봤지만 꼭 한번 봐야겠네요~
    네덜란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나라인데 나중에 제대로 한번 더 가고 싶네요~^^

    2010/03/06 15:42
    • 쁘리띠님  수정/삭제

      여행 가신 분들이 네덜란드에서
      암스테르담만 다녀오셔서 안타깝더라구요~
      (네덜란드쪽 가이드북을 썼거든요..-.-)

      정말 좋은 곳이 많은데...
      네덜란드에 다시가신다면 꼭 다녀오시길~ :)

      2010/03/06 21:39
  3. freeday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그림 멋있네요~~ㅠ_ㅜ 나도 언 제 쯤 저정도 그래 본다나..ㅠ_ㅜ

    2010/03/06 15:58
  4. 텍삼  수정/삭제  댓글쓰기

    델프트 정말 멋진 곳이죠..또 가고 싶어지는 곳이라는....:)

    2010/03/06 21:43
    • 쁘리띠님  수정/삭제

      저두 너무 좋았어요~ :)

      정말 낭만적인 곳인데 잘 안알려져있더라구요~

      2010/03/06 22:00
  5. 텍삼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좋다는...:) 사촌동생이 델프트에서 지금 공부하고 있는데, 그김에 한번 가야하는데....

    2010/03/07 04:25
    • 쁘리띠님  수정/삭제

      우앙~ 거기 그 유명한 공대 다니는 거에요? +.+

      로얄 델프트 앞이 그 대학이었는데!!

      2010/03/09 13:05
  6. 릴리폰드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고가요. 2002년부터 충성스런(?) 정회원인데, 요즘 로그인이 잘 안되네요... 서울에 산다면 오프라인에도 나가고, 쁘리띠님과 동갑이니까 정말 친해질 수도 있었을텐데...
    하여간, 저 이 소설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터라 굉장히 반가웠어요~ ^^ 언젠간 꼭 델프트에 가보고 싶네요. 나침반 위에도 서보고 싶어요. 기분이 어떨까 궁금해요...

    2010/03/07 05:56
    • 쁘리띠님  수정/삭제

      2002년이면... 정말 오래되신 회원이시네요. :)
      게다가 저랑 동갑이시군요! :)

      정회원방 로그인은 정상적으로 하실 수 있는데
      윗쪽에 있어 그런지 접속을 잘 안하시는 것 같아요~

      델프트 작고, 좋아요.
      베르메르를 좋아한다면 반드시!! ^^

      2010/03/09 13:06
  7. 초코홀릭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초콜릿때문에 베네룩스 가면서.. 준비겸 여러책을 읽다가 빠지게된 베르메르..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영화를 넘 재밌게 봐서.. 그 후 소설도 보고.. 베르메르 관련 책도 보면서.. 여행의 중심이 베르메르로 살짜쿵 옮겨갔었더랬죠.. 암스테르담에서 봤던 우유따르는 여인.. 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어요.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델프트 풍경.. 그림들 직접보면 정말 너무 좋구요. 깊고.. ^^ 마을은 아담하니 산책하기 좋아요.. 책과 영화를 재밌게 보셨던 분들은 마을 곳곳이 배경이기 때문에 느낌이 새롭답니다. 베네룩스로 많은 분들이 가셨으면 좋겠어요. 넘넘 좋은 곳이더라구요. ^^

    2010/03/08 03:53
    • 쁘리띠님  수정/삭제

      우아~ 직접 다녀오신 분은
      정말 거의 보지 못했는데... 초코홀릭님은 다녀오셨군요! :)

      저도 베네룩스 많이 가셨으면 좋겠어요~
      책 쓰면서 더 알게된 곳이지만,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지역!!

      2010/03/09 13:08
  8. 패딩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이케아 매장 바로 옆에있는 캠핑장에서 숙박했어요..
    방갈로가 있어서 .. 특이한게 지붕에 잔디를 심었다는..
    더 신기했던건 이케아 매장 옆에 삼성전자 건물이 크게 있더라구요..
    한국사람들도 많이 근무하고 있었던거 같아요.. 점심시간때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사람 몇명을 봤거든요..
    운하가 너무나 멋지고.. 운하를 따라서 상점들과 집들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던 곳으로 기억합니다.

    2010/03/12 18:03
    • 쁘리띠님  수정/삭제

      맞다, 저도 이케아 얘기 들었었는데...

      거기가면 시간가는 줄 몰라서..ㅠㅠ
      문제는 사도 짐 때문에..흑.

      2010/03/13 00:33

[그리스, 아테네] 신들의 도시

여행이야기/유럽 2010/03/04 15:05 Posted by 쁘리띠님
<아테네,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내의 모습>
아크로폴리스와 에게해가 보인다.

누군가 아테네는 공해에 뒤덮힌 혼잡하고 볼 것 없는 도시라며
오래 머물지 말고 그리스의 하이라이트인 섬으로 이동하기 위한
경유 도시쯤으로 여기라고 했다.

공항에서 시내에 들어올때까지만해도
아마 그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나에게 아테네는 정말이지 황홀한 신들의 도시가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도시 어느 곳에서나 보이던 아크로폴리스,
특히나, 이 사진을 찍은 전망대에서 보면
지형적으로 우뚝 솟은 아크로폴리스가 도심 한가운데 도드라져 보이고
저 멀리 신화에 종종 등장하는 포세이돈의 바다가 보인다.

이 사진을 찍을 무렵 내 눈엔
이웃나라와의 전쟁을 마친 아테네가
한손엔 칼을, 다른 한손엔 방패를 들고
어디선가 날아와
아크로폴리스에 내려앉는 모습이 보였어. :)

멋진 신화의 나라, 그리스.
빨리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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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입니다. 오늘 막을 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당당히 세계에서 5위를 차지했지만,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는 주권을 빼앗겨버린 힘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런 상황속에 일본인의 앞잡이가 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글은 우리나라가 주권국임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발자취입니다. 

  [위의 사진] 이준, 이상설, 이위종 이 세 사람은 헤이그로 향합니다.


언젠가 헤이그에 가게된다면, 이준 열사 기념관에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고종황제의 특사가 도착했던 헤이그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운명을 달리한 이준열사.
 그는 왜 이곳에 왔고,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덴하그(헤이그) HS 기차역

 [위의 사진] 덴 하그(헤이그) HS역


1907년 6월 25일,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명은 헤이그 기차역에 도착합니다.

한국에서 유럽까지 비행기로 가는 12시간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2개월 동안의 긴 여행 끝에 도착한 것입니다.

머나먼 헤이그에 온 까닭은
국제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인데요,
일본에 의해 강제로 맺어진 을사늑약의 부당성과
대한제국의 상황을 세계인에게 호소하기 위해
이준이 고종황제로부터 위임장 [오른쪽 사진]
받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상설이 합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위종과 만나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이준은 변호사로 법률에 능했고,
이상설은 을사늑약의 과정을 모두 보았으며,
이위종은 러시아에 있는 대한제국 대사의 아들로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실력을 가진 뛰어난 인재로 이 세 사람은 
대한제국의 상황을 알릴 특사로서는
환상의 팀웍이었죠.

당시 한국의 상황을 잘 알고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던 미국의 헐버트는
이준과 같은 시기, 미국으로 건너가 도움을 요청하고 이후에 헤이그로 합류하기로 합니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국제평화회의가 시작한지 열흘이 지난 후였습니다.
사실은 회의시작 시기에 맞춰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황제를 만나기 위해
열흘동안 기다리다 시간이 지체된 것이지요.

당시 세계정세는 열강들의 식민지쟁탈전이 난립하던 시기로
국제평화회의 역시, 말이 '평화'지 식민지쟁탈전을 위한 열강들의 전쟁으로 군비가 늘어나자
이런 문제들을 조율하고 '평화'(그게 싸우지 말고 잘 나눠갖자는 거지, 평화인지 모르겠지만...)를 유지하자는
데에서 출발한 회의입니다.  물론, 이런 회의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그래서, 회의기간 내내 회의장 주변에는 많은 시민운동가와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당시 약소국이었고 식민지쟁탈전의 희생자로
대한제국을 차지하기 위한 열강들의 파워게임 끝에 일본이 승리하면서
1905년 강압적인 을사늑약이 이루어진 것인데요,

러시아는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어서(뭐 이것도 일본과 라이벌 관계여서 그런 듯. -_-)
고종이 이준으로 하여금 러시아 황제에게 친서를 전하고 황제를 만나라고 한 것인데
이준 일행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러시아는 일본과의 비밀회담을 통해
일본이 대한제국에 하는 일에 대해 눈감아주는 대신 러시아의 동북아시아의 이권을 인정해주는
회담이 열리고 있었던터라 러시아 황제는 이들을 만나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즉, 친서만 전달하게 되고 열흘동안의 시간만 허비한 채
국제평화회의에 열흘이나 늦은 셈이었죠.

저도 이런 내용을 조사하고 이렇게 쓰자니
당시 특사들의 절망감과 참담함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주권을 빼앗겨 나라를 잃을 위기에 대한제국이 어떻게되든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않는... 약소국의 서러움과 구져진 자존심 말입니다.

헤이그에서 대한제국의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책임감과 심적인 부담은 상당했을 텐데요,
이들은 일단 기차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Wagenstraat 124A번지 De Jong 호텔에
숙소를 정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창문 밖으로 태극기를 걸고 본격적인 외교활동을 시작합니다.

 이준 평화 박물관(Yi Jun Peace Museum)

[위의 사진] 이준 평화 박물관
주소 : Wagenstraat 124A 전화번호 : 070 356 2510
운영 월~금 10:30~17:30, 토 11:00~16:00

이 기념관은 1620년대에 만들어진 건물로
이준열사 일행이 국제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헤이그에 왔을 때 머물렀던 호텔이었습니다.

2, 3층이 기념관인데 교민인 이기항, 송창주 부부가
지난 1995년 사재를 털어 건물을 사들여 기념관으로 만든 것을
지난 2007년, 이준열사 100주년을 맞아 정부의 지원으로
기념실을 확대, 개편해 재단장 해놓았습니다.
(2009년은 이준열사 탄생 150주년이었습니다.)

[왼쪽 사진] 한글로는 이준 열사 기념관으로 되어 있는데
영어로는 이준 평화 박물관(Yi Jun Peace Museum)이네요.
(저는 이준 평화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더 좋아서 제 글에는
평화박물관으로 통일했습니다.)


지금도 이곳 관장님이 기념관의 문을 열자마자 하시는 일은
태극기를 다는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제가 좀 일찍가서
문 열이 전이라 태극기가 보이질 않네요~

박물관 내부에는 이준, 이상설, 이위종에 대한 설명과
국제평화회의 당시의 상황, 그리고 세계 각국의 대통령들이 친필로 ‘평화’라고 쓴 평화의 방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쉬웠던 건 단체 관광객인 어른들은 이곳에서 많이 보았는데
젊은 여행자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관장님께 설명을 듣고 질문을 하느라 꽤 오랜시간
이곳에 있었는데 단 한명의 젊은 여행자만 보았을 뿐이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위의 사진] 단체 관광객에게 설명 중이신 이기항 관장님

비넨호프, 만국평화회의장

[위의 사진] 비넨호프(Binnenhof)

이곳은 1907년 6월 15일~10월 20일,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비넨호프입니다.

관광지로서 비넨호프는 ‘안뜰’이라는 뜻으로 13세기에는 백작의 성이었다가
현재는 정부 청사, 수상 집무실, 총리실 등의 중앙관저로 쓰이는 곳으로 여왕의 집무실도 있습니다.
건물 중앙에는 헤이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13~14세기에 걸쳐 지어진 리더잘(Ridderzaal, ‘기사의 홀’ 뜻)이
있는데 현재 국회의사당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당시의 국제평화회의도 바로 이곳에서 열렸지요.

한국인들에게 이곳은 즐거운 관광지라기 보다는 씁쓸한 공간입니다.
국제평화회의는 '국제'가 아닌 '가진 국가'들의 평화회의였으니까요.

고종의 특사로 파견된 세 사람은 이곳에 입장조차 하지 못합니다.
국제평화회의에서 가장 많은 수의 참가자를 파견한 일본이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을 서명했기에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일본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 입장할 자격이 없다고 이미 로비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구열강들은 일본이 다른 지역에 대한 식민지 확장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일본의 심사를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특사들은 절망에 빠져 망연자실하고 있었냐구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회의장 밖에서 외교활동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참가국가의 대표들에게 을사늑약이 부당성을 알리고 참가자격을 달라는 청원서를 돌리죠.
또, 회의의 의장인 러시아인 넬리도프 백작을 찾아가 만나줄 것을 부탁을 하지만
그는 이미 러시아에서 온 '대한제국의 일원을 만나지 말라' 라는 연락을 충실히 따릅니다.
그 뿐인가요? 회의의 부총재이던 네덜란드 외교관인 드 보포트를 만나 대표자격을 인정해 달라고 합니다.
이들의 진정성이 인정 돼 서류를 상부에 올려주었지만 그 역시 회의적이었습니다.

세계의 강대국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이득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헤이그에는 국제평화회의에 문제제기를 하는
시민운동가들과 150여명의 언론사 기자들이 이곳에 와 있었습니다.

회의장의 문 앞에 서 있던 이위종에게 한 기자가 인터뷰를 청합니다.

“나는 법과 정의 그리고 평화의 신을 만나러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회의장에서 영향력 있던 신문인 평화회의보(Courrier de la Conference)에
평화주의자 윌리엄 스테드가 쓴 이위종과의 인터뷰(1907.7.5) 중에서

기   자 : "여기서 무엇을 하십니까? 왜 딱한 모습으로 나타나 이 회의장의 평온을 깨뜨리십니까?"
이위종 : "나는 흔히 제단이 헤이그에 있다고 말하는, 법과 정의 그리고 평화의 신을 혹시라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 ..... (중략)
            "독립 군주를 자택에 감금해 두고서 신변을 보호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식민상태로 몰아 넣고서 우리의 독립을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대한제국의 정체성은 일본이 한국을 분할해서 점차적으로 정복하지 않고
             단번에 삼켜버렸기 때문에 유지되었을 뿐입니다."

기   자 :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위종 : “그렇다면 이 세상에 정의란 없는 것이군요. 여기 헤어그에서조차도!
             당신들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려는 것이로군요.
             결국 가증스럽게 당한 치욕을 회복할 길은 없고, 정당한 조약이 불법적으로 위반된 사실에 대한
             한 민족의 항의가 무시되어질 수 있으며, 또 한 나라의 독립은 그것의 국제적인 보장여부와 관계없이
             침탈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기   자 : "당신은 일본이 강대국임을 잊고 계십니다."
이위종 : "그렇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법의 신이란 유령일 뿐이며, 정의를 존중한다는 것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고,
             당신들의 기독교란 한낱 위선에 불과합니다. 왜 대한제국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대한제국이 약자이기 때문입니까? 왜 대포가 유일한 법이며 강대국들은 어떤 이유로도
             처벌될 수 없다고 솔직히 시인하지 않습니까?"
기   자 : "하지만..."
이위종 : "싫습니다. 정의에 관해서 나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소위 말하는 평화주의자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나에게서 당신 신앙에 대한 절대적 부정을 찾아보십시오.
             대한제국은 무장하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침략적 야심이라고는 전혀없는 나라였습니다.              대한제국은 평화롭게 그리고 조용히 살아갈 것만을 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 평화론자들이 전도하는 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이 신문 기사와 이위종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기자 덕분에
이위종은 7월 8일 프레스센터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위종의 '한국인의 호소' 연설로 많은 기자들은 감명을 받고 대한제국에 대해 알게 됩니다.
기자들은 대한제국의 상황에 기사화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장외외교가 활기를 띠게 됩니다.

[위의 사진] 이위종이 프랑스어로 '한국인의 호소'를 연설했던 곳, 주소 : Prinsessegracht 6
가는 방법 : 비넨호프 앞의 Buitenhof 트램역에서 Centraal기차역 방향 트램 16번을 타고 2정거장을 가서 내린다.
트램 진행방향으로 걸어가다 나오는 큰 길이 Prinsessegracht  번지수를 찾아가면 된다.

7월 10일, 특사와 합류하기로 한 헐버트가 도착합니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미국으로 다시 떠나는데 이는
헤이그에서 대한제국에 대한 동정여론이 형성되었고 이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러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다음날인 7월 11일, 이위종은 부인이 아프다는 전보를 받고 러시아로 돌아가 
헤이그에는 이준과 이상설 만이 남아있게 됩니다.

사실, 이 대목에서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드는데...
이위종은 외교활동에 꼭 필요한 인물로 이준과 이상설의 입이 되었던 사람인데
이 중요한 시점에 돌연 러시아로 돌아갔다는게 조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헤이그에서 이들의 발언권이 인정된 상태도 아니었구요...
대한제국의 상황을 알렸으니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활동을 접은 것일까요?

그리고, 3일 뒤 이준열사가 돌연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준열사의 죽음
이준 열사의 사망에 대한 의견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병으로 사망했다는 설과 할복자결설. 또, 병사와 비슷한 일제의 음독설도 있었습니다.

7월 14일 7시, 이준열사의 죽음은 확실하나 사망원인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1년이 지나면 의사의 사망진단을 폐기해 버린다고 하네요~)

이준열사는 당시 얼굴에 종기가 나 있었다고 하는데(위의 7월 5일 신문에는 보이지 않아요~)
당시 헤이그에 있었던 일본이 한국으로 보낸 전문에 따르면 부검을 해보니
'얼굴에 난 종기의 단독에 걸려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냈다고 하네요.

단독은 피부병의 일종으로 피부의 일부가 붓고 열이나는 병입니다.
사실, 암치료나 에이즈 등에 의해 몸의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졌을 경우에나 단독에 걸렸을 때
패혈증으로 죽을 수 있지, 단지 '단독'만으로 사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하네요.
그 때문에 '병사설'을 의심하기에 충분하지요.
그래서 이러한 일본의 주장은 '할복자결'설을 은폐하고
독립심 고취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한편, 할복자결설은 회의장에서 일본과 대한제국이
회의장에서 '외교권' 논쟁을 하다 퇴장명령을 받자 이준열사가 가지고 있던 단도로
회의 참석자들이 보는 가운데 약소민족의 상황을 묵과하는 강대국들의 모순된 모습을 항의하며
할복자결을 했다는 것인데 7월 19일자의 대한매일신보 등의 신문에 실리며
독립심을 고취시키고 항일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함께 있었던 이상설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준의 '할복자결'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이 주장은 이준이 병사로 사망한 것을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이준열사 기념사업회에는 이 '할복자결설' 내용이 올라와 있습니다.

진실은 돌아가신 이준열사와 함께 있었던 이상설, 이위종 등이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로서는 그 진실을 알기위한 정보가 매우 희박합니다.
두 설을 증명할 자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_=

현재 '기정사실'화된 내용은 '분사', 즉 분하고 원통해 돌아가신 거죠.
이위종은 이준이 며칠동안 먹지 못했다고 신문에서 인터뷰했는데 '단독'증으로 아파서 그런 것인지,
외교활동을 하면서 약소민족의 희생을 묵과하는 강대국들의 모습에 분하고 고종황제의
뜻을 이루지 못해서 단식을 한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2개월간의 여행과 외교활동, 단독으로 체력적으로도 많이 떨어졌고 스트레스도 심했을 겁니다.
하지만, 특사활동을 하면서 갖게된 원통하고 분통한 마음이 어디 그보다 심했을까요.
그런 마음이 결국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라고 현재는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준의 죽음으로 러시아에서 다시 헤이그로 돌아온 이위종이 신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죽기직전 "조국을 구원하소서. 일본이 한국을 침탈하고 있습니다." 라고...

 
[위의 사진] 이준 평화박물관의 이준열사상

이 사건으로 일본은 을사늑약을 했던 것처럼 자기네 마음대로 고종을 폐위시켰고,
이상설 사형, 이준과 이위종은 종신형을 언도합니다.
이미 고인이된 이준에게 종신형이라...-,.- 참....
 
이준열사의 시신은 헤이그의 뉴에이크다우 공동묘지에 묻혔고
묻을 당시에 한국인 한명과 호텔의 일하는 사람, 단 두명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 한국인은 크게 서럽게 울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상설이었겠지요.

여튼, 이준열사는 그토록 열망하던 대한제국의 독립이 지나고 한참 후인...
56년이 지난 1963년에서야 독립된 한국땅으로 돌아와 수유리의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위의 사진] 이준열사의 묘석, 한국으로 이장된 후
이준열사의 무덤에는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로이터 통신이 헤이그를 떠나 미국으로 가는 이위종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위종은 언어도 능수능란 했지만, 정말 뛰어난 외교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

"본인은 우리의 임무가 실패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령에 동의했거나 독립을 포기한 사실이 결코 없음을
 헤이그 회담 뿐 아니라 유럽의 모든 정부와 미국에 알리기 위해 황제의 밀사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저는 이번 글을 쓰면서 그들이 보기에 주권도 없는 곧 식민지가 될 약소국가의 대표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꼿꼿하게 고개를 세우고 자존감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했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권이 빼앗겨버린 국가를 버리고 일제 권력의 밑으로 들어가
자존심을 버리고 살았던 시기에 이런, 멋진 선조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우리가 뽑았던 대통령이나 정치인 중에 이 정도의 인물만 있었다면....하는... 아쉬움이..-_-;)

헤이그에는 이런 국제회의의 결과로 많은 '평화'와 관련된 기구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전의 국제평화회의는 대단히 모순적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평화'와 관련된 기구입니다.
그래서 헤이그는 세계평화의 도시'라고도 부를 만한 그런 도시가 되었습니다.

 [위의 사진] 평화궁전(Vredespaleis), 세계평화회의 결과 생긴 국제사법재판소 등이 있는 세계평화의 상징 건물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이준 열사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이준 열사가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기 이틀 전 강연 후
청중 한 명이
"우리나라가 큰 나라로 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중 일부가 들어있습니다.


이준열사의 말씀처럼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간만 큰 인물들만 많아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픈 요즘입니다. =_=


[이준열사 관련 홈페이지]
* 이준열사 기념관(이준 평화박물관) :
http://www.yijunpeacemuseum.com
* 청소년들을 위한 해외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사이버체험 : http://www.yti815.or.kr

청소년을 위한 홈페이지지만 객관적이고 좋은 정보입니다. 자녀들에게 보여주세요~^^

ps : 네덜란드 여행을 준비중이라면, 여행정보가 궁금하시죠?
제가 참여한
중앙북스의 '프렌즈 유럽' 네덜란드 편을 참고하세요. :)

pretty ch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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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감사합니다.

    2010/03/01 19:01
  2. 하레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가슴 찡하네요. 언젠가 네덜란드에 갈일이 있으면 꼭 들러보고 싶어요.

    2010/03/02 22:41

<그리스, 아테네의 한 후식집>
 
달콤한것
먹는사람
훔쳐보기


그리고...


천장이 높은 이런 카페가 너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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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신선한 공기를 방안으로 들이기 위해
호텔 창문을 열면 낮의 아크로폴리스가 보였다. 

" 안녕, 아크로폴리스~ :) "


그리고, 어둠이 내리면... 
노트북의 음악을 켜고 다시 창문을 활짝 연다.

" 또, 안녕, 아크로폴리스~ :) "


빛나는 아크로폴리스의 모습.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
이렇게 매일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는데
아테네 시민들에게 아크로폴리스는 어떨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일상이 되어버렸을까?

아니면, 우리 여행자들처럼 한 눈 가득, 가슴에
그리고 또 마음에 담고 싶은 것처럼 매일 감동할까...?

서울에 살면서
경복궁을 매일 볼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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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텍삼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학기 수업시간에 열심히 그리스 철학을 공부했더니, 아테네가 꼭 고향느낌인데..-.-;; 현실은 안그럴것같아요...

    2010/02/24 19:31
    • 쁘리띠님  수정/삭제

      다들 아테네를 그닥그닥 생각하던데
      저는 정말 아테네가 너무 좋았어요~ :)

      옛날에는 정말 신이 살았을 법한 그런 느낌이랄까요? +.+

      2010/02/25 00:39
  2. 제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아침에 남산타워 봐도 한강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음. 일상이 되어버리면 그런것 같아.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자꾸 이쁘다 좋다 해줘야 소소한 재미가 느껴지는것 같아. 안 그럼 있는둥 마는둥. -_-;;

    2010/02/25 13:59
    • 쁘리띠님  수정/삭제

      아크로폴리스도 아테네인들에게 그렇겠지~?
      역시 여행자가 이럴 땐 좋은 듯.

      2010/02/2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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