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 배경이 되었던 카페. 이곳은 이제 ‘반 고흐 카페’가 되었다.

아를에서 니스로 가는 기차를 탔다. 콩파르티망(3명씩 마주보고 앉는 6인 좌석 칸) 중 빈자리가 있는 한 곳을 골라 앉았는데, 맞은편 좌석에 앉은 아저씨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중국에서 오셨나요?”
“아뇨,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프로방스 지역 사람들은 영어를 거의 못 한다. 필자도 프랑스어를 못해 며칠 동안 반벙어리로 지냈는데,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그래서 냉큼 이제까지 궁금했던 걸 묻기 시작했다. 철도 시간표에 쓰여 있는 ‘Arles’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제가 ‘아를’이라고 말하면 모두 못 알아들어요.
 이곳이 너무 좋아 세 번씩이나 왔는데 지명조차 발음 못 하니 답답해 미치겠어요.”


아저씨는 웃으며 ‘아흐(ㄹ)르’라고 읽어야 한단다.

“그럼, ‘van Gogh’는요?”
“그건 ‘반 고그’로 읽어야 하지. 네가 발음한 대로 ‘반 고흐’라고 발음하면 최소한 프랑스에서는 아무도 못 알아들을걸?”
“그렇군요.”

한국에서는 반 고호나 반 고흐라고 발음한다고 하자 신기해한다.

아저씨는 파리에서 기차를 탔는데 친구를 만나러 툴롱에 간단다.
왜 중국 사람이냐고 물었나 했더니 20년 전 아시아만 1년 동안 여행했단다.

◇ 왼쪽 : 기차에서 만난 크리스티앙 아저씨.

“1년 동안 아시아라고요?
  와, 어떻게 1년 동안 여행할 생각을 하셨어요?”

“처음에 여행할 때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했는데, 어느 때인가부터 사람들과 함께 계획을 세우는 것이 답답해졌어. 그래서 결심했지. 나 혼자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침, 내 직업의 전환기였고 1년이라는 시간을 비울 수 있었어. 집을 친구에게 빌려주고 곧바로 중국으로 떠났지. 예전부터 중국이 가고 싶었거든.”

“20년 전의 중국은 어땠나요?”
“정말 환상적이었단다. 그때만 해도 중국은 단체관광객밖에 받지 않았고, 개별 여행자들에게 여행이 허가된 도시는 정해져 있었지. 하지만 난 상관없이 돌아다녔어. 내가 시장에서 뭔가를 사면 주변에 200명 정도가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날 구경하고 있었다니까! 하하하.”

“여행자가 드물었다면 정말 재밌었겠어요. 하지만 힘든 점은 없었나요? 저도 중국여행을 했었는데, 같은 아시아인이지만 말을 못하니까 음식 시킬 때 곤혹스러웠거든요. 그래서 ‘생존 중국어’를 배우고 거기에서 응용했죠. 예를 들어, ‘워(我·나는) 야오(要·원한다)’라고 말한 뒤에 손가락으로 음식재료를 가리키는 거예요.”

“하하, 물론 나도 그랬어. 식당에 가면 음식을 가져와 보여주면 선택하기도 하고, 또는 옆 사람이 먹는 음식을 가리키며 주문했지. 힘들어도 즐거운 시간이었어. 중국 음식은 내게 잘 맞았으니까. 입맛에 안 맞은 음식이 있었다면 네팔의 ‘참파’(보릿가루를 버터나 기름에 개어 만든 네팔인들의 주식) 정도라고 할까? 매일매일 참파를 먹어 정말 질려버렸지.” 


“아시아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였나요?”
“네팔이었어. 강력한 매력이 있는 곳이지. 그리고 중국 구이린의 양숴(陽朔)도 2개월이나 있을 만큼 좋았고, 인도도 정말 멋진 곳이었어. 모두들 인도의 매운 음식 때문에 탈이 났었지만, 내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

아저씨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난 국가대표 배구선수였어. 몇 년 후 은퇴하니 국가에서 직업을 알선해 주더군. 그 직업이 기차에서 근무하는 차장이었어. 차장은 내게 그다지 좋은 직업이 아니었어. 지루하거든. 하지만 덕분에 전 유럽을 무료로 여행할 수 있었지. 기차로 연결되는 유럽의 모든 곳을 가 보았단다. 하하하. 3년 전에 은퇴해서 지금은 주말에 경마장에서 조금 일하고 평일엔 친구들을 만나러 다닌단다. 때론 내 캠핑카를 끌고 여행할 때도 있지. 이번 여름엔 모로코에도 다녀왔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기차는 어느새 툴롱에 도착했고,
아저씨는 여행엽서를 보내라며 내게 주소를 하나 적어주며 기차에서 내렸다.

이렇게 여행은 낯선 사람을 낯설지 않게 만드는 매개체가 된다.
배낭여행자에게 대선배쯤 되는 아저씨는 공감 가는 얘기를 남겼다.

“난 모던한 곳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정말 재미있는 곳은 개발이 덜 된 곳이지.
  이번 겨울에는 캄보디아나 베트남, 라오스 같은 곳을 가보려고 생각하고 있단다.”


필자는 겁이 많아 위험한 곳은 꺼리지만, 항상 새로운 곳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노력의 원동력이 있다면 그건 바로 호기심이 아닐까?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용기만큼 항상 여행의 기쁨은 찾아온다.

프랑스의 아를(Arles)
아를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2000년 역사를 지닌 작은 마을이다.
그리스의 식민지였다가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령이 되었다.
마을 중심에 원형경기장인 아레나와 극장, 기념비 등 로마 유적이 남아 있어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현재도 아레나에서는 매년 투우 축제가 열린다.
초기 기독교 시기의 중요한 거점도시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순례자의 길을 시작하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건 반 고흐다.
1888년 2월의 어느 날 아를에 찾아와 프로방스의 햇살 가득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흐의 주요한 작품 300개 이상이 이곳에서 그려졌다.

◇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원형경기장. 현재 투우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프로방스 지방에 대한 여행 책자와 엽서들. 이 중 반 고흐 책을 사면 그의 발자취를 따라 아를을 둘러볼 수 있다.


여행정보

파리에서 TGV나 비행기로 아비뇽까지 간 후
그곳에서 아를로 가는 기차와 버스로 갈아탄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에는 아비뇽 TGV역에서
버스로 10∼15분 걸리는 아비뇽 역에서 20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된다.

작은 마을이지만 숙소가 많다.
싱글룸은 30유로부터, 트윈이나 더블은 40유로부터 구할 수 있다.

식당에서는 프로방스식 음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데,
전식·본식·후식을 포함해 15∼20유로 정도가 필요하다.
프로방스 지방의 와인이 유명하므로 와인을 시음해 보는 것도 좋다.

<세계일보에 올려진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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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띠의 여행 플래닛,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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