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학교 후배와 함께 박노해 사진전에 다녀왔습니다. :)

'노동운동가이며 시인인 그가 사진전을...?'

궁금한 마음에 그가 잡혀 들어갔던 중부 경찰서 맞은 편의
갤러리 M으로 향합니다.


작은 갤러리에 흑백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사진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깜빡잊고 메모리를 안가져가서 휴대폰으로 찍었더니 사진이 흠률하네요. =_=


무엇보다, 따뜻한 차가 우리를 반깁니다.


따뜻한 샤이 드세요.
"총알은 언젠가 바닥이 나겠지만 샤이를 마시는 건 영원하지요.
먼데서 온 친구여, 우리 함께 갓 구운 빵과 샤이를 듭시다."
박노해 시인이 찾아간 전쟁과 가난의 별 그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은 따뜻한 차 한 잔 하고 가라며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새해 ' 라 광야'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따뜻한 차는 얼어붙었던 몸을 녹이고,
당분 가득한 달디단 물은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한 잔 마시면 이방인,
두 잔 마시면 친구,
세 잔 마시면 가족이라는 차의 힘입니다.

사진전은 10년동안 궁금하던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나를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의 그 마음을 간직하며
우리나라에서 지금은 그 세상을 넓혀
분쟁이 있는 세계 곳곳을 돌며 평화운동가로서
자리를 잡은 박노해씨를 만날 수 잇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는 동안, 노래 선물이 도착합니다. 


대학교에서 뒤적이던 민중가요 책에서
불러보았던 아득한 노래가 중얼중얼 입가를 맴돕니다.

박노해씨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라크에서, 이스라엘에서, 터키에서
분쟁의 현장에서 사진을 기억하려 도록을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올해 태어날 제 딸에게 첫번째 선물이 생겼습니다. :)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을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사람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 라 광야 전시회 : http://www.ra-wilderness.com

- 전시기간 : 2010.01.07 ∼ 2010.01.28
- 입장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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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의 10년에 걸친 중동 현장의 기록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터키 쿠르디스탄에 이르는 4만여 컷의 사진 작업

갤러리 M (관장 이기명)은 2010년 1월 7일부터 1월 28일까지 박노해 초대전 <라 광야>展을 개최한다. 박노해는 지구시대 인류의 가장 아픈 지점인 중동 분쟁현장, 그 삶의 존엄과 계속되는 고통과 슬픔을 공유하고자 10년에 걸쳐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터키_쿠르디스탄을 사진적 증언으로 기록하였다. 이번 <라 광야>展은 박노해가 중동 현장에서 10년간 촬영해 온 4만여 컷의 흑백 필름 사진 중 37점을 선정해 최초 공개하는 그의 첫 전시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사진은 국경을 넘는 詩이다”
시인 박노해가 카메라를 든 ‘사진가 박노해’로

박노해의 중동 사진 작업은 1999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999년 첫 해외 방문 현장에서, 쿠르드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의 체포 구속으로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쿠르드인의 대대적인 항의 시위를 목격하고 중동 평화활동을 결행했다. 박노해는 국경 너머 분쟁현장과 빈곤현장을 뛰면서 거기 살아 있는 진실을 시와 글로는 다 전달할 수 없는 문자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카메라를 들었다고 되 뇌인다.

“박노해. 그는 민주화 이후 지난 10년 동안 어디에 서 있었던가? 우리 역사의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대를 온 몸으로 뚫고 나온 박노해는 민주화 이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를 부르는 수 많은 소리에도 왜 침묵하며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그는 자신의 이름마저 버리고 다시, 지구시대의 가장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울고 웃고 있었다. 그의 사랑과 실천은 인류 전체로 확장되고 심화되고 있었다.” - 이기명, <기획의 글> 중에서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곁에서 함께 울어주고 어깨를 안아주고 총성이 그치면 아이들과 바람 빠진 공을 차며 놀아주는 일 밖에는. 국경을 넘는 순간 언어의 국경을 넘지 못하는 나의 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래된 만년필을 쥐고 있던 내 손에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가 함께 들려 졌다.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20리 밤길을 단숨에 달려가는 어머니처럼 나는 현장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아가고 있었다.” - 박노해, <작가의 글> 중에서


“폐허더미에서도 협동하며 일어서는 강인한 생활력, 서로 나누고 보살피는 인간의 위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무릎 꿇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는 광야의 사람들에게 나는 다만 경외의 마음을 가질 뿐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가 언제 부턴가 잃어 가는 빛나는 그 힘, 마지막 남은 종자 같은 재생의 힘 앞에, 카메라를 들기 전에 나는 먼저 광야의 낙타처럼 무릎을 꿇는다.” - 박노해, <작가의 글> 중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의 역사를 계승한 박노해의 사진 작업
현장성, 사실성, 진실성, 작업의 역사성

박노해의 사진은 현실문제에 뿌리를 두고 온몸으로 작업해온 사진가의 체취를 느끼게 한다. “모든 진실은 현장에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박노해가 딛고 선 그 현장성이, 보는 이로 하여금 생생한 역사적 진실과 직접 맞닥뜨리게 한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장일지라도 단신으로 총구를 헤치며 사실을 기록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의연히 다가서는 박노해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감동을 고스란히 이어간다. 더욱이 박노해의 사진 세계는 주제의 깊이와 통일, 나아가 한 주제를 10년 동안 천착해 온 ‘작업의 역사성’을 갖고 있다.

갤러리 M 관장이자 한국매그넘코리아에이전트 이기명 대표는 “나는 기획자로서, 사진가 박노해의 작업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로버트 카파展과 앙리 카르티에-브레송展을 기획할 때만큼 박노해의 첫 사진전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광야의 아침에 빛으로 쓴 시, 박노해 첫 사진전 <라 광야>展에서 박노해와 해 뜨는 광야를 함께 걸으며 밝아오는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획의 글

빛으로 쓴 경애의 詩
기획의 글 | 이기명 (GALLERY M 관장, 한국매그넘에이전트 대표)

1
해 뜨는 광야에서 박노해를 맞는다. 인류 최초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원지 알 자지라에서, 뜨거운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시리아 사막에서, 중동의 눈물 쿠르디스탄에서, 카메라를 든 사진가 박노해를 만난다. 그는 어린아이까지 집단학살 당한 레바논 까나 마을 폭격현장을, 감춰둔 전통복장을 꺼내 입고 금지된 모국어로 노래하는 쿠르드 아이들의 비밀공연을, 분노와 슬픔의 시선으로 필름에 담았다. 그의 사진은 억압 받고 고통 받는 지구마을 민초의 강인한 삶에 바치는 빛으로 쓴 경애의 시이다. 그것은 한 장 한 장 심장의 떨림으로 촬영한 박노해의 <사진의 노동의 새벽>인 것이다.

박노해는 지구시대 인류의 가장 아픈 지점인 중동 분쟁현장, 그 삶의 존엄과 계속되는 고통과 슬픔을 공유하고자 10년에 걸쳐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터키_쿠르디스탄을 기록하였다. 그는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총구를 헤치며 두 발로 걸어 다니며 그 땅과 이야기를 지켜온 토박이의 삶의 방식, 그리고 이라크 전쟁과 레바논 전쟁 현장까지를 단신으로 파고든다. 중동 문화에 관한 깊은 이해와 성찰에서 나온 10년의 사진작업은 중동현장의 진실을 사진을 통해 충분히 전달한다. "모든 진실은 현장에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박노해가 딛고 선 그 현장성이, 보는 이로 하여금 생생한 역사적 진실과 직접 맞닥뜨리게 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기꺼이 현장성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충분하게 만족스럽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은 것이다." (If your photographs are not good enough, you are not close enough.") 로버트 카파(Robert Capa)가 남긴 이 금언은 카파이즘의 정수이다. 카파이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사진가 정신을 일컫는다. 카파의 이상은 가능한 한 현장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었다. 박노해의 사진에서, 그 현장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죽음의 현장일지라도 사실을 기록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의연히 다가서는 박노해를 발견한다. 그리고 동시대를 직시하고 현장에 입회하여 현실문제에 뿌리를 두고 온몸으로 작업해온 사진가의 체취를 느낀다.

박노해는 중동 분쟁현장을 다루게 된 동기를 이렇게 술회했다. "전쟁의 공포에 울부짖는 아이들 곁에서 함께라도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전쟁터로 달려 나온 제 마음입니다. 미움없이 분노하고, 냉소없이 비판하고, 폭력없이 투쟁하고 싶습니다. 비록 전쟁의 세상에 살지만, 내 안에 전쟁이 살지 않기를..." 사진은 현실을 대상으로 한다. 박노해의 사진에 찍힌 것은 존재하는 것이거나 존재했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 어떤 매체보다도 더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의 본질적 특성인 사실성이 있다. 더우기 의식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박노해는, 조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그의 사진의 진실성을 우리는 더욱 신뢰하게 된다.

2
박노해는 언제나 현장참여의 길을 걸었다. 그를 키운 것은 현장이었다. 철야노동의 현장이었고, 최루탄 터지는 거리였고, 가난하고 냉대 받는 민중 삶의 현장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 곁을 떠난 적이 없었고 우리 시대 역사 현장을 떠난 적이 없었다. 이런 현장성에서 그의 지성은 익어왔고 그의 사랑은 단련되었고, 바로 이 삶의 현장에서 <노동의 새벽>과 같은 시의 절창이 잉태되어 울려 퍼진 것이다.

우리 역사의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대에 온 몸으로 폭력과 지하밀실 고문장과 사형수와 감옥 독방을 뚫고 나온 박노해는, 마침내 민주 정부가 들어서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해 온 동지들이 한국 사회 주류로 진입할 때, 지난 10년 그는 어디에 서 있었던가? 그를 부르는 수 많은 소리에도 왜 그는 침묵하며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박노해는 다시 새벽에 길을 떠나고 있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는 그의 시의 다짐처럼. 박노해는 스스로 자신을 거친 광야로 추방했다. 그는 주류의 경계 속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경계 밖으로 자신을 유배시켜, 안주하려는 우리 모두를 일깨우며 진보시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마저 버리고 다시, 지구시대의 가장 힘 없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 곁에서 함께 울고 웃고 있었다. 민주화 이후 그의 사랑과 실천은 국경 너머 인류 전체로 확장되고 심화되고 있었다. 어떤 사회적 인정도 보상도 없이, 어떤 안전한 신분 보장도 없이, 그는 맨 가슴으로 총구를 헤치며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는 미국과 서구를 가면 이슬람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고, 중동 순니파 나라에서는 시아파로, 시아파 나라에서는 순니파로, 중동 이슬람 정부에서는 절대 성역인 쿠르드인의 진실을 밝히는 위험분자로, 코리아에 돌아오면 한미동맹과 전투병 파병의 걸림돌로, 심지어 빨갱이와 변절자로 비난 받으며 여전히 불온한 존재로 취급 당해왔다.

"나는 어디에도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박노해의 고독한 실천을 나는 몇 년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박노해는 1999년 첫 해외 방문 현장에서, 쿠르드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의 체포 구속으로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쿠르드인의 대대적인 항의 시위를 목격하고 중동 평화활동을 결행했다. 그리고 그는 국경 너머 분쟁현장과 빈곤현장을 뛰면서 거기 살아 있는 진실을 시와 글로는 다 전달할 수 없는 문자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사진은 언어와 인종과 종교와 이념을 넘는 인류의 공통언어이고 소통의 시라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평화나눔과 사랑의 활동에 있어서 절실한 필요 때문에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었다고 되 뇌인다.

그에게는 지난 10년 동안 현장에서 기록해 온 수만 컷의 흑백 필름 사진과 수천 편의 미 발표 시들이 육필로 새겨져 있었다. 여기 박노해의 지난 10여 년의 뜨거운 침묵의 실천, 그 한 자락이 <라Ra광야> 사진전으로 첫 선을 보인다. 나는 기획자로서, 사진가 박노해의 작업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로버트 카파전과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전을 기획할 때만큼 박노해의 첫 사진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3
박노해의 사진을 처음 본 순간, 빛으로 쓴 詩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진 한 장 한 장 마다 진실하고 깊숙한 시적 울림이 전해져 온다. 박노해의 사진은 프레임 내 엄격한 질서가 돋보인다. 대상들의 결합을 통해 구축된 프레임은 우리로 하여금 중동을 재인식하게 한다. 사진화면을 구성하는 각각의 개별적인 대상들과 그것들의 유기적인 구성이 증폭하는 의미의 복합체로서 화면 내의 구조 속에서 필연적인 의미를 부여 받는다. 전사한 형의 초상사진 앞에 두 형제가 앉아있는 모습의 사진이 있다. 언제 서로 떨어질지,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형제들은 언제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 형제의 모습이 전사한 형의 사진과 결합되어 절박함이 더욱 강조된다. 실제 나블루스 발라타 난민촌은 집집마다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가족 사진이 걸려있다. 그리고 골동품과 연결된 페트라의 후손 사진이 있는데, 아이의 기품이 골동품과의 결합에서 우러나온다. 관광객에게 골동품을 팔며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생활이지만 페트라의 아이는 기원전 6세기 시리아 사막에서 웅대한 문명을 이룬 조상과 이어진 내면의 끈을 느끼는 듯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우리는 죽은 아빠의 사진 앞에서 군복차림으로 장난감 총을 든 난민촌 아들 딸들, 파괴된 이스라엘 탱크 위에 서서 헤즈볼라 깃발과 레바논 국기를 흔드는 아이들, 이스라엘 군의 체크 포인트에서 치욕적인 검문을 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등 여러 현장의 대상들의 전체적 연쇄구조에서 슬픈 중동의 오늘을 읽는다.

또한 배경과 대상의 융합된 이미지가 불의의 기습을 가해온다. 여기에 농부가 삽질을 하는 흔한 농촌 사진이 있다. 하지만 그 배경이 인류 최초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낳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알 자지라(섬) 대평원이라면, 그리고 농부가 인류 최초의 농경시대를 열었던 5천년 전 관개농법을 고스란히 이어가는 농부라면 의미는 달라진다. 또 다른 사진에서 4천년 전에 세워진 페니키아 시대의 유서 깊은 항구도시, 레바논 남부 수르 항구에서 어부가 얽힌 삶을 풀어가듯 그물을 정리하고 있다. 이곳은 이스라엘 전함에 의해 해상봉쇄 상태이고 한국군이 파병되어 있는 곳이다. 사막에 강제로 이식되어 말라 죽은 오렌지 나무 사진에서 오렌지 나무는 중동에 강제로 주입된 서구의 이념을 상징화하면서 사막 하늘의 텅 빈 공간은 누구의 가슴인가를 보는 이에게 사유케 한다. 그는 빼앗긴 자유의 알 자지라 평원에서 양치는 쿠르드 청년들, 광야의 고향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여인, 수장될 위기에 놓인 8천년 된 인류문명의 자궁인 하산케이프와 쿠르드인 등 배경을 이루는 중동 문명에 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대상인 오늘의 억압 받는 인간을 융합시킨다. 그래서 피상적인 외연의 의미를 넘어 내포적 의미를 창조한다. 이러한 의미들이 모여 주제를 이룬다. 그 주제는 시적 울림을 통해 오늘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과 우리 삶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끈다.

박노해의 사진 세계는 주제의 깊이와 통일, 나아가 사진작업의 지속성을 갖고 있다. 그는 한 주제를 10년 동안 천착해왔기에 사진작업의 일관성을 통해 작업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는 극적인 장면을 찍고 떠나는 사진가가 아니라 그 곳 주민들과 혈육처럼 스며들어가 지속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즉 작업의 지속성을 통해 스스로 작업의 역사를 획득한 것이다. 또한 그의 사진은 사건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사건에 대한 해석 나아가 세계에 대한 시대정신을 담은 시각적 표출이다. 그는 오늘의 중동이 겪는 비인도성과 폭력성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조명하고 나눔과 평화에 관한 시대적 메시지를 던져준다. 한편 그의 사진은 사진가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견해 또는 대상에의 의미부여로서 다큐멘터리 표현을 가지고 있다. 즉 그의 작업은 주제에 있어서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사진 형식에 있어서도 감흥을 준다. 아울러 본 전시작품이, 간편한 디지털 만능의 시대임에도, 영구보존을 위한 전통적인 아날로그 사진 인화방식으로 인화된 작품이라서 사진 계조의 깊이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박노해의 빛으로 쓴 경애의 시가 우리 앞에 첫 선을 보인다. 국경을 넘어선 사진가 박노해가 첫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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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 광야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박노해 시인 사진전 <라 광야>展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스텝입니다. 아마도 광야에서 뵈었을 텐데 이곳에서 다시 만나니 더 반가운 마음입니다. 추운 날 먼 곳까지 달려와 주신.. 쁘리띠님의 후기를 보니 준비한 사람의 입장에서 더 감사한 마음인데요.. 라 광야 사이트에도 올려서 더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게 이 글을 퍼가도 될지 여쭈어 봅니다. 그럼 또 뵙기를 바라며..^^

    2010.01.18 17:36 신고
    • 쁘리띠님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전시회 너무 좋았습니다. :)
      글을 퍼가셔도 되는데 어떻게 퍼갈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하하.

      페이지에 올리는 곳이 있던데 제가 올리도록 할게요~ :)

      2010.01.19 23: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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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띠의 여행 플래닛, 떠나볼까
여행이 좋아 여행을 다니다보니 여행사이트를 운영하고 여행작가가 되었어요. 맛난 것도 굉.장.히 좋아해요~♥ (원고청탁 및 강연, 인터뷰는 chungeuni@naver.com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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