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하염없이 계속된다.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신문이나 책을 보거나 졸면서 지하철을 기다린다.
이날 1시간30분을 기다려 겨우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요즘 한 달간 파리 근교에 방을 얻어 지내고 있다.

(※ 쁘리띠주 : 이 글은 2007년 말에 쓴 글이에요. ^^;;)

지난 14일 오전, 여느 때처럼 시내로 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갔다. RER(파리 교외를 연결하는 고속 지하철)의 배차시간을 알리는 모니터가 텅 비었다. 평소 사람들로 북적이던 플랫폼도 적막한 게 뭔가 이상했다.

파업이었다. 사르코지의 연금개혁안에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반발해 무기한 파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한국에서의 파업을 생각했다. ‘설마 차가 없겠어?’

40분 정도를 기다려 일단은 시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돌아올 때였는데, 대부분의 메트로(일반 지하철)와 RER가 운행을 중단해 버렸다. 그나마 많이 다니는 1호선을 타고 종점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서야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평상시라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이날은 3시간이 걸렸다.

다음날이 되자 어제는 운이 좋았던 것임을 깨달았다. 나갈 때는 3시간, 돌아올 때는 중간 버스의 연결편이 없어 3㎞ 정도 되는 뱅센 숲을 가로질러 걸었다. 집에 돌아와 시계를 보니 4시간이 걸렸다.

하이라이트는 파업 3일째, 시내 나가는 데 5시간이 걸렸다. RER 운행이 없어 버스를 두 번 타고 겨우 파리 외곽의 지하철역에 도착했지만, 입구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다. 지하철 직원 몇 명이 안쪽에 있었다. 한국이라면 누군가 소리 지르며 항의할 만한 상황인데도 모두들 조용히, 심지어 웃으며 교통정보만 나누는 모습이었다. 물론 간간이 한숨소리가 섞였다.


 
◇ 퇴근시간의 센 강변. 파업 여파로 보통 때보다 교통체증이 훨씬 더 심했다.

일단 밖으로 나와 길가는 사람에게 시내로 가는 버스편을 물었지만 그들은 “없다”고 답한다. 이미 3시간이나 차를 타고 왔는데 다시 돌아가자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학생들에게 파리 시내로 어떻게 가냐고 묻자, 영어를 하는 한 남자를 붙잡아줬다. 그는 나이트클럽에서 근무하는데 출근 중이란다. 어제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차가 없어 2시간을 걸었단다.
그는 친절하게 TVM이라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는 연결편을 알려주며 따라오란다. TVM 정류장으로 갔지만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40분을 기다리느니 난 걷겠어. 기다리는 동안 몸이 얼어붙는 게 싫어.”
“나도 따라 걸을래.” 버스를 너무 오래 탔더니 좀 걷고 싶어 얼른 따라 나섰다.

“파업이 정말 대단하구나.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1995년엔 더 대단했지. 정말이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야. 무려 3주 동안 파업이 지속되었으니까.
  그 중에 일주일은 청소부도 파업에 동참했었는데, 일주일 동안 수거하지 않아
  동네 곳곳에 산더미만큼 쓰레기가 쌓였어. 냄새도 심했지.”


◇ 가물에 콩나듯 도착하는 메트로는 늘 만원이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연결 칸에 올라탄 시민도 있다.

그는 재밌는 경험이었다는 듯 웃음을 지어보였다.

“사람들은 파업 기간 어떻게 출근했지?”
“다들 대책을 마련했지. 호텔이나 친구네 집에 머물기도 하고, 또는 택시를 타든가, 자전거를 타든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도 했지. 킥보드 알지? 킥보드가 등장한 것도 1995년 파업 때부터라고. 바퀴 달린 건 다 탔지.”


그는 키득대며 웃었다.

“난 예전 파업이나 지금 파업이나 모두 이해해. 모두가 더 많이 일하고 싶어하지는 않으니까.
  내 불만은 딱 한 가지야. 왜 파업은 항상 추울 때 하는지 모르겠어.
  날이라도 따뜻하면 길거리에서라도 잘 수 있을 텐데 말야.
  나 같은 직업의 사람들이 새벽에 집으로 돌아올 때 얼마나 추운지 알아? 어휴.”


사르코지의 개혁안에 대해 국민들 사이에서는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며
자기도 어떻게 결말이 날지 궁금하단다.

◇ ‘C’est ou la sortie?’('It's either exit). 신문 ‘파리지앵’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그나저나 이번주에 오랑주 카드(carte orange: 일주일간 교통편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끊었는데 어떡하지? 비싸게 주고 산 건데 파업 때문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어. 파업인 줄 알았다면 사지 않았을 텐데.”
“하하하. 오랑주 카드 따윈 잊어. 파업 기간엔 아무도 교통비를 내지 않아.”

그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고, 파업은 열흘간 더 계속되었다.

사랑하는 이와 키스하고픈 파리
해가 지면 에펠탑은 매시 정각마다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이고, 센강엔 아름다운 유람선이 빛을 뿜으며 고고히 움직인다. ‘이곳이 낭만의 파리구나’ 하고 한눈을 팔다간 자칫 개똥을 밟기 십상이니 항상 발밑을 조심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시테 섬을 중심으로 파리가 탄생했다는 등의 역사 공부는 잠시 접어둬도 좋다. 파리는 로망을 자극하는 확실한 감성의 장소임에 틀림없으니 말이다. 물론 루브르와 오르세, 오랑제리, 로댕, 피카소 등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여자들에겐 며칠을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은 쇼핑의 천국이 바로 파리다.
몇 가지 해 볼 만한 파리의 로망을 소개한다. 메트로 안의 연결통로는 음악가들의 연주공간이다. 마음에 드는 음악이 있다면 발걸음을 잠시 멈춰 감상하고 동전을 넣어주면 된다. 또 커피(에스프레소)나 와인 한 잔을 시켜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이곳에서 해 봐야 할 로망 중의 하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파리의 야경을 바라보며 키스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로망이 아닐까.

여행정보
파업 기간 프랑스를 여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부 테제베를 제외한 기차 대부분의 운행이 중지되어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번 파업처럼 규모가 크면 시내에도 메트로와 버스가 드물게 다니고 사람들로 가득 차 불편하다.
파업 기간에는 30분∼1시간에 한 대인 메트로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르다.
시내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파리지앵들은 시티바이크(시당국이 도시 곳곳에 비치한 자전거)를 타거나
인라인스케이트, 킥보드, 오토바이 등을 이용한다. 파업 기간 메트로는 개찰구를 모두 열어놓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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