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두(成都)의 한 호스텔에서 머물고 있을 때였다.
방으로 가기 위해 정원을 가로지르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이 거북이가 어떻게 수조에서 나왔는지 알고 있나요?”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동양 사람은 보통 낯선 사람에게 말을 잘 걸지 않는데,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모습이 맘에 들었다.
 
“아뇨,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네요. 수조는 이렇게 높은 곳에 있는데, 
 거북이가 바닥을 기어다니다니 말이죠. 어떻게 나왔나 저도 정말 궁금한걸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 보았지만, 거북이의 탈출 비결은 결국 밝혀내지 못했다.
대신 영화 ‘뮬란’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리리와 친구가 됐다.

그녀는 홍콩에서 온 여행자였다.

“같은 중국어를 쓰니 넌 참 여행하기 편하겠다.”

잠자는 시간을 빼곤 온통 한자에 둘러싸여 있으니, 한자 때문에 하루 종일 멀미가 난다고 말하자 그녀가 깔깔대고 웃는다. 하지만 같은 중국어를 쓴다고 해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심해 서로 소통이 잘 안 된단다. 홍콩과 대만 사람들도 서로 못 알아 듣는다고 한다. 자기도 어떤 경우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짐작만으로 이해할 때가 있단다. 하긴 중국 땅덩어리가 좀 커야지 말이다.

서양인들은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이 생김새도 비슷하고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말도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간혹 호스텔에서 한·중·일 세 나라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때 영어를 사용하면 서양인들은 상당히 놀란다.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문자는 비슷한 부분이 있어도 말하는 건 완전히 다르단 말이지?”
라며 말이다.

리리와 나는 영어로 말했다. 물론 한자에서 파생된 ‘지단(鷄蛋)’이나 ‘매표(賣票)’처럼 발음이 같은 말을 할 때는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한번은 같이 버스를 기다리다 노점상에서 음식을 시켰다.

“이 아줌마는 순두부와 냉면을 판대.”
“뭐라고? 방금 ‘냉면’이라고 했어? 한국말과 같은데?”
“아, 냉면은 중국음식이 아니야. 한국이 원산지야. 중국에는 차가운 면 요리가 없거든.”

냉면을 시켰더니 정말 ‘차가운 면(冷麵)’ 위에 소스만 얹어 준다. 매운맛으로 유명한 쓰촨 지방답게 빨간 소스를 잔뜩 얹어서 말이다. 리리와 나는 울면서 매운 냉면을 먹었다.

◇ 맵기로 유명한 사천음식을 먹는 나와 리리.


이렇게 며칠 동안 친자매처럼 지냈던 리리와 헤어지는 날이 다가왔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리리가 청두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수원(文殊院)에 함께 가기로 했다. 절이라고 해서 한국 절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한가로운 공원 같았다. 낮잠 자는 할아버지,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 한가롭게 앉아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 문수원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시민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길거리엔 군데군데 해바라기씨 껍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중국인들은 해바라기씨를 무척 좋아하는데, 껍질을 깔 때 손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앞니와 입만을 사용한다. 덕분에 앞니가 벌어진 사람이 많다. 먹는 속도도 빠르다. 해바라기씨를 먹을 때 껍질을 뱉는 모습은 마치 기관총 탄피가 떨어져 나오는 것 같다.

문수원은 신선이 사는 무릉도원 같았다. 바쁜 도시의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 걸음걸이도 공원 밖과 달랐다. 걸음도 느리고 생각도 느리니 시간마저 느려졌다.

“우리, 차 마시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말했다. 이야기하며 차 한 잔을 비우니 주전자를 든 아저씨가 귀신처럼 소리없이 다가와 찻물을 다시 따라 준다. 찻물을 채우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한 손엔 멋진 주전자를, 다른 한 손엔 부채를 들고 신선 같은 표정으로 우리를 조용히 바라본다. 정말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난 스튜어디스였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삶의 의미가 없는 거야. 살아 있기는 한데 내가 그 무엇에도 감동받지 못하는 기계가 돼버린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야. 아무런 의욕이 없어서 그냥 회사를 그만뒀어. 그리고 여행을 떠났지. 다시 무언가 하고 싶으면 돌아갈 거야.”

문수원 풍경만큼이나 그녀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 문수원에서 찻물을 채워 주던 아저씨.
찻잔의 색깔과 그림을 보고 손님이 어떤 차를 마시는지 구별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청두

청두는 쓰촨성(四川省)의 성도(省都)로, 현지에서는 ‘청뚜’라고 발음한다. 대륙의 중심에 위치해 수·당 시대 4대 도시 중 하나였다. 티베트(시짱)와 윈난성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다. 도시 분위기는 매우 현대적이나 전통적인 모습도 간직하고 있다. 제갈량(諸葛亮)을 모시는 무후사(武侯祠), 이백과 함께 중국 2대 시인 중 한 명인 두보를 모신 두보초당(杜甫草堂)이 있다. 현재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방문지는 판다 생태공원이다. 청두시 측은 멸종돼 가는 판더의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호강받는 판다를 볼 수 있다.

여행정보
아시아나항공과 중국 국제항공에 청두 직항 노선이 있다. 인천공항에서 4시간 걸린다. 중국에 들어갈 경우 비자를 받아야 한다. 여권·여권용 사진 1장· 주민등록증 복사본이 필요하다. 신청부터 발행까지 3박4일 걸리는 비자 수수료는 3만5000원.
청두의 저렴한 숙소로는 유스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도미토리 가격은 30 ∼40위안 선 (1위안은 150원)이다. 중국 8대 요리이며 맵기로 유명한 쓰촨음식은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다양한 음식 중에 절대 놓쳐선 안 되는 음식은 단단면(단단미엔)이다. 무후사 맞은편에 위치한 ‘성도 단단면’이 솜씨가 좋기로 유명하다. 문수원 입장료는 5위안. 차는 2∼5 위안.

<세계일보에 올려진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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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이제르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분이 닮았다고 생각되는건 나뿐인가?

    2009.12.23 15: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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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띠의 여행 플래닛, 떠나볼까
여행이 좋아 여행을 다니다보니 여행사이트를 운영하고 여행작가가 되었어요. 맛난 것도 굉.장.히 좋아해요~♥ (원고청탁 및 강연, 인터뷰는 chungeuni@naver.com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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