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세계일보에서 [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란 꼭지로
2007.7.19~2009.3.19일간 연재했던 글입니다.
신문에 썼던 글이라 조금 딱딱한 부분은 조금 수정했습니다. :)


◇  반호수에 있는 반 성의 모습<터키 관광청 제공>

메마른 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터미널도 아닌 길가에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멈춰 섰다. 가방을 메고 주변을 둘러보니 길거리엔 온통 남자들뿐이고 다들 무뚝뚝하게 쳐다본다. 간혹 지나가는 여자의 옷차림으로 짐작건대, 터키의 서쪽지역과는 달리 확실히 보수적이다.

‘이렇게 시골인 줄 몰랐어. 그래도 이곳 넴루트(Nemrut)산의 호수가 예쁘다는데….’ 난감해하고 있을 때 쿠르드인 메메트가 방명록을 들고 다가왔다. “내 집엔 많은 여행자들이 다녀갔어요. 자 보세요. 한국 사람들이 남긴 글도 있을 거예요.”

이런 시골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자 의심이 먼저 갔다. 눈치를 챘는지 그가 금방 이렇게 말한다. “이해해요. 당신은 여자고 혼자 왔으니 당연히 걱정되겠지. 하지만 차 안에 함께 갈 다른 외국 여행자들도 있으니 안심하세요.”

대중교통 수단도 없는 산골짜기 쿠르드인 집에서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묵어볼까 싶어 호기심에 따라 나섰다. 차 안에는 메메트의 말대로 이미 두 명의 외국인이 있었고 곧바로 출발했다. 중간중간 마을주민들을 하나둘씩 태우니 이내 가득 차다 못해 포개 앉기 시작한다. 메메트는 비정기적으로 타트반 시내와 마을을 연결해 주는 마을버스 운전사 일도 하고 있었다.

◇ 메메트의 부인과 손녀들이 함께 앉아 있다.

메메트는 15세에 결혼해 딸 넷과 아들 셋을 뒀고, 이들 중 아들 둘이 결혼해 세 명의 손녀가 생겼다. 조금 덧붙이자면 부인이 아닌 여자들 사이에서 난 딸 셋과 아들 셋이 더 있단다. 옆에 앉았던 본부인의 둘째딸이 웃으며 말해준다. (하.하.하)

손녀딸 중 한 명인 페르빈은 차에서 내리는 필자를 보고는 냉큼 숨어버렸다. 문 뒤에 숨어서 눈 하나만 빠끔히 내밀고 찬찬히 관찰하는 모양새를 보니 수줍음이 많은 아이다. 그후로 그는 이틀 동안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먼저 말을 걸면 다시 쪼르르 숨길 여러 번. 나와의 거리는 조금씩 좁아졌지만, 3일째가 되자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에 도리어 내가 안달이 났다. 옳거니! 그림을 그려주겠다며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냈다.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성큼 다가선다. “얼굴을 그려야 하니까 날 똑바로 쳐다봐야 해”라고 말하며 눈을 마주쳤더니 얼굴이 빨개진다.

◇ 필자가 그려준 그림을 들고 웃고 있는 페르빈.

슥슥슥슥∼ 참 예쁘게도 생겼다. 잠시 뒤 자기 얼굴이 그려진 종이를 보더니 천사 같은 표정으로 웃는다. 머리형만 닮은 그림이 자기와 흡사하다고 좋아한다. 다시 한 번 그림을 보더니 자기는 긴 머리가 좋으니 머리를 길게 덧붙여 달란다.

만족할 만한 그림이 되었는지 노트를 달래서 뭐라고 쓰더니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고모를 데리고 와 통역을 해주라고 손짓한다. “파티마(필자의 아랍이름), 세니 촉 세비요룸.”(Seni Cok Seviyorum, 많이 사랑해요)

‘이런, 깜찍한 소녀를 봤나!’ 수양딸 삼아 가방에 넣어갔으면 좋겠다. 네 미소를 보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니!’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페르빈을 불렀다. ‘얘야, 이건 3일 동안 말 한마디 없이 내 주변을 맴돈 벌이다.’ 손목을 잡고 조금 더 몸을 가까이 당기니 무슨 일이 생길까 슬슬 걱정하는 눈치다. 눈썹에 다시 한 번 힘을 주고 페르빈의 귀에 대고 말했다.

“페르빈, 세니 촉촉촉 세비요룸” (페르빈, 많이많이 또 많이 사랑해요)

우린 한동안 바닥을 뒹글며 까르르대고 웃었다. 페르빈의 그 미소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터키의 타트반(Tatvan)


터키는 비록 한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터키인들은 그 어떤 나라 사람보다 한국인에게 우호적이고 끈끈한 정으로 대한다. 여행하는 동안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는 한국과 피로 맺어진 형제의 나라’라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일 만큼 듣게 된다.

유럽과 맞닿은 이스탄불을 포함한 서부지역과 달리 동부지역 끝에 위치한 타트반은 쿠르드족이 95%를 차지하고 있으며,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민소매나 반바지 같은 노출이 심한 옷은 자제하는 게 이 지역문화를 존중하는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또 혼자 여행하는 여성인 경우 가급적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다니는 것이 좋다.

타트반은 반 호수 주변에 위치한 크고 작은 마을 중 하나로 마을 자체엔 볼거리가 없다. 하이라이트는 터키에서 가장 큰 호수인 반 호수(면적 3874㎢, 최고 깊이 451m)와 주변의 아르메니안 왕조와 이슬람 유적지, 그리고 넴루트산의 칼데라호이다.

넴루트 호수는 지상 2935m 높이에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칼데라호. 크고 작은 다섯 개의 호수로 이루어졌는데, 가장 큰 호수는 직경 7∼8㎞에 깊이가 155m나 된다. 유럽인들에게는 이곳에서 수영을 하고 싶어하는 로망이 있다. 다른 호수에는 화산활동에 의해 덥혀진 섭씨 60도의 온천수가 솟아난다. 광물질이 많이 함유돼 물 색깔이 검다. 선뜻 들어가기 망설여지지만 피부에는 좋다.

여행정보
터키 타트반은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30시간, 수도인 앙카라에서는 22시간이 걸린다. 이스탄불에서 터키항공 국내선(2시간10분 소요)을 타고 반(Van)으로 간 후 버스로 2시간이면 타트반에 도착한다. 이스탄불에서 출발하는 기차도 있지만 그 수가 많지 않고 표를 구하기 힘들다. 타트반에서 넴루트산까지는 대중교통이 없으니 택시나 투어상품을 이용해야 한다. 필자가 묵었던 넴루트산 마을은 메메트 할아버지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타트반까지의 왕복 교통과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를 포함해 1박에 15∼20리라로 쿠르드족의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볼 수있다. 밤마다 은하수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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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0.24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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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띠의 여행 플래닛, 떠나볼까
여행이 좋아 여행을 다니다보니 여행사이트를 운영하고 여행작가가 되었어요. 맛난 것도 굉.장.히 좋아해요~♥ (원고청탁 및 강연, 인터뷰는 chungeuni@naver.com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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