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른두번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양은 겁이 많아 모여있는 걸 좋아한다.
앞을 보고 걷기 보다는 바닥을, 고개는 항상 푹 숙이고 바로 앞의 양의 엉덩이만 졸졸 따라 간다.
양처럼 살면 이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다.


벌레 스트레스
갈리시아에 온 이후론 밤마다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어제도 11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순례자들은 보통 9~10시쯤 잠. -_-)
새벽에 벌레가 물어 깨고 말았다. ㅠ_ㅠ

세어보니 이번엔 8군데다. 그래도 몇십군데는 아니라서 다행인건가? ㅠ_ㅠ
한숨을 쉬며 약을 바르고 긴팔 모자티를 입고 지퍼를 채운 뒤 다시 잠들었다.

잠시 뒤... 이번엔 땀에 온몸이 다 젖어 깨고 말았다. ㅠ_ㅠ
졸리운데 너무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아이처럼 짜증이 난다.
화장품 케이스 뚜껑으로 부채질을 하다 졸다 떨어뜨리다를 반복하며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불을 켜서 일어났다. 7시 20분이다.

정말이지 이제 벌레 스트레스는 한계에 다달았다.

산티아고에 가면 알베르게엔 절대로 가지 않을꺼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물론, 오늘도 방에서 맨 마지막으로 나왔고,
길가의 카페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이번엔 크로와상과 커피, 그리고 쥬스다. 3유로가 좀 안된다.

 [위의사진] 맑은 공기를 선사하던 숲길

 [위의사진] 내가 좋아하는 무화과!

그런데 아직 덜 익었다. ㅠ_ㅠ
늦여름에 걷는 사람들은 공짜로 맛볼 수 있을 듯.

 [위의사진] 이제 33km남았다. 숫자가 예뻐서 찍었다. :)

표지는 이제 0.5km~1km간격으로 남은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위의사진] 시원하게 펼쳐진 옥수수밭

 [위의사진] 그리고, 예쁜 꽃이 펼쳐진 길

 [위의사진] 귀여운 지도

 [위의사진] 꽃 색깔이랑 창문의 커튼 색깔이 잘 어울린다.


서른 두번째 날, 아르카 오 피노(Arca O Pino) 22km
8시 10분 출발, 1시 50분 도착.
5시간 40분 소요.
거리에 부담이 없어 천천히 걸었던 날.

100km부터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는 증명서를 주기 때문에
100km가 시작되던 며칠전부터 사람도 많이 늘고, 처음 걷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덕분에 내가 마치 워킹머신(walking machine)이나 된 듯 사람들을 추월하고(세상에, 이런일이!+.+)
생쟁부터 걸었다는 나의 말은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심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있다. -_-;;;
(다른 순례자들이 들으면 우스워할 것 같아 앞으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_-;)

[위의사진] 하루 전날 묵었던 알베르게.

이제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나머지 순례자들도 두근대는 심장에 잠이 잘 오지 않는지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내 두근증은 사실 일주일쯤 전부터 시작됐다.

산티아고에 점점 더 가까이 가는 것은 당연히 설레는 일이었지만,

(이제 곧 이 지긋지긋한 벌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도 매우 기쁜 일이었다. -_-)
산티아고에 가까이가면 갈수록 순례길이 끝난 이후가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세계여행 중에 생일 선물로 준 한달 도보여행이 예상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앞으로 얼마남지 않은 시간 내에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해야 했다.
거리는 먼데 시간은 없고... 정말, 집엔 어떻게 가야하나... -_-;;;;

순례자의 먹고, 자고, 걷는... 근심걱정없는 '심플 라이프'에서
다시 복잡한 현실로 돌아가야 하다니...

앞이 캄캄해진다. ㅠ_ㅠ

아아아아.
몰라~몰라~

어찌됐건 내일부터는
날마다 잠자기 전 항상 준비하던
다음날의 루트를
포스트잇에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난 당연히 산티아고에 있을 테니까.


왼쪽부터
3.99유로, 6.3유로, 4유로.
종류도 많잖아? =_= 산티아고에서 한국으로 왔으면 이걸 사는건데...아쉽다. -_-

2008. 11. 7(2010.4.12 업데이트)  pretty chung..:-)

다음 글 읽기 ☞ [순례자의 길35] 서른세번째 날,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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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뭔소린지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례라는게 뭐죠
    어떤 종교든 종교생활하는 사람은 왜 종교생활인이 될려는건지 개인적으로 너무 너무 이해하기 힘든
    여행지가 사진엔 좋아보이기는 하는데 글의 내용이 좀 이상한거 같은
    산티아고가 유럽에 있는건가요
    유럽여행해보고 싶지만 워낙에 비싸서 싸구려 동남아 여행 자주 했었는데
    싸구려라고 재미없는건 아니지만 머~
    그래도 사실 패키지여행보다는 더 비싼게 배낭여행인데
    패키지로 가면 무슨 역사운은 하면서 유적지 이런곳 돌아다니는거 꼴보기 싫어서
    한국인 정서에 이런게 맞는다고 생각하나?
    누구나 대충 살다가 죽는건데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가하는
    사진에 나온곳보다는 오히려 저질 동남아가 유흥시설등에서는 오히려 즐길건 더 많은듯 ^^;

    2010.04.12 20:49 신고
    • 쁘리띠님  수정/삭제

      저는 무교랍니다. -.-

      제가 걸은 길이 '까미노 데 산티아고'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까지의 길이거든요~
      그래서 순례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거지요.

      꼭 종교를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에요.
      물론, 건강이나 저렴한 여행을 목적으로 걷는 사람들도 있구요~

      저는 동남아여행도 좋아하고, 유럽여행도 좋아하는 사람이랍니다.
      하지만 환락가만 찾아다니는 저질 동남아여행자들은 혐오해요.
      뭔소린지님은 한국인 정서에 맞는 여행이 저질 동남아여행이라고 생각하시나분데...가슴이 아프네요.

      2010.04.13 21:16 신고
    • caminobonito  수정/삭제

      왜이렇게 세상을 삐딱하게 보시는지?
      저도 무교지만 순례자의 길 준비하고 있는데요
      순례자의 길은
      단지 "순례"라는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게 아닙니다. 그냥 운동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자연구경, 현실에서 잠시 떨어져있기.. 등등 종교랑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더군요. 순례라는 단어에 넘 집착하신게 아니신지.. 그냥 고유명사화 되버린거지..지금이 무슨 중세시대입니까? 역경과 고난의 길을 이겨내어 주님을 받들겠습니다 라는 다짐으로 오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구요..
      님이 어떤경로로 들어와서 이 글을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맥락도 모르시면서 이거 하나 읽어보고 뭔소린지 이해가 안된다는둥.. 다 읽어보고 판단하라고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배경지식이없는 무지상태라면 섣불리 판단하기 전에 프롤로그라도 읽어보시고 댓글 다는게 매너아닌가요? 하기야 님같이 저질 유흥 문화나 찾아서 외국가는 남자가 이런 뜻깊은 길을 이해하기는 어렵겠죠. 그러니 한국남자들 동남아에서 평도 않좋은게 당연하고요. 사실 님같은 분은 차라리 모르는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님이 오면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포부와 목표를 가지고 뜻을 찾아 올랐던 길이 더럽혀질 거 같거든요.
      누구나 대충 살다 죽으니깐 이기적이다...
      도대체 무슨논리인지? 님이 대충산다고 남도 대충살겠거니 하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저길을 오르는 사람 치고 인생을 대충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네요
      님같이 "대충" 사는 인생은 "대충" 유흥이나 즐기시라구요 ^^

      2010.04.13 21:17 신고
  2. 찌니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례자의 길' 재미있게 읽고 있답니다.
    하루 밖에 안 남았다니 너무 아쉬워요.
    저두 꼭 한번 걸어보고 싶네요..
    그 전에 스페인어 공부 좀 해야할까봐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가 스페인어였는데, 지금 기억하는 거는 몇 개 밖에 안되네요..인사 정도..ㅋㅋ

    2010.04.13 09:24 신고
    • 쁘리띠님  수정/삭제

      이제 하루랑 에필로그만 남았어요~ :)

      애기낳기 전에 다 올려서 다행이에요. ㅋㅋㅋ

      그리고, 3년 뒤.. 다시 생쟁에 관한 글도 있어요.
      아... 태교로 저도 스페인어를 더 열심히 배웠어야하는데
      너무 아쉽네요. ㅠㅠ 일단 배우셨던 언어이니 금방 배우실 듯...좋겠다. ㅠㅠ

      2010.04.13 22:57 신고
  3. Gregory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처음 산티아고길 기행문 읽을때도 좋았는데 두번째 봐도 여전히 그 감동이 변함 없네요. 나도 시간, 아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한번 경험하고 싶은 여정입니다. 건강한 애기 순산하십시요.

    2010.04.13 17:47 신고
    • 쁘리띠님  수정/삭제

      감사합니당. :)

      업데이트 하면서 빠진 에피소드를 조금 추가하고,
      저도 다시 읽어봐서 좋았어요~

      그때 글 쓰면서도 참 행복했던 그런 기억이 나네요.

      2010.04.13 22:58 신고
  4. British Airways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보기에 저 맨 윗 '뭔소린지'님은 약간 유럽 여행자에 대한 열등감? 이런게 있는것도 같네요.
    그러니까 자신이 유럽 못가니까 유럽(플러스 여러 먼 나라들) 자주 즐겁게 다녀오시는 쁘리띠님과 그 스토리에 태클을 거는건지도(살작 열등감 비슷?- 제가 읽은 심리학 관련 책에 나온거 같음..) 모르겠습니다.
    부럽네요... 이렇게 좋은 (제 꿈이 산티아고 가는길 걷기...)

    2010.06.06 21:08 신고
  5. 곰돌캉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오늘 하루종일 쁘리띠님의 여행 수기를 읽고있어요~
    7월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고 계획중이거든요

    다른 후보지도 많았지만, 여기만큼 설레고 두근거리는 곳이 없더라구요^^

    쁘리띠님 사이트를 알게 된것도 필연이라고 생각해요~

    소중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하루 남았는데, 왠지 보면 안될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하지만 ! ㅋㅋ 보겠습니다~

    2010.06.07 00:3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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