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물다섯번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해가 떠오르고 있다.
오늘도 길을 걸어야 한다.



정상의 십자가
7시 20분 출발, 산 중턱에서 하루 쉬었더니 정상까지 오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금새 정상에 도착했고, 정상에 다다르자 높이 세워진 십자가가 보였다. 


십자가는 돌무더기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순례자들이 십자가 주변에 놓고간 돌이 작은 동산으로 변한 것 같았다.


순례자 한 명이 십자가 가까이로 다가간다.

그리고 십자가를 올려다 본다.


십자가가 세워진 기둥에는 사진과 편지 등이 실과 리본에 묶여 있다.
성황당 같기도 하고, 티벳인들이 사는 곳이면 펄럭이던 천들도 생각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세상은 모두 비슷비슷하구나.

 [위의사진] 십자가 기둥에 매달아 놓은 여러가지 사연들.

 [위의사진] 왠지 사연이 있을 것 같았던 한 아저씨.
항상 한 손에 무거운 비닐봉지를 들고 다녔다.


산의 내리막 길을 걸으니 안내표지가 나타났다.
산티아고까지는 이제 222km남았다. :)

 [위의사진] 예루살렘까지 5000km, 마추픽추까지 9453km

두 곳 다 갔었는데... 참 멀리도 떨어져 있구나.
걸어서 가면 도대체 며칠이야...? -_-;
평균 27km 걷는다고 치면 예루살렘까지는 185일, 마추픽추까지는 350일이 걸리는구나.
아... 바다는 빼야하는데...--;;;;

 [위의사진]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지팡이가 가지런히 놓여진 모습이 조화롭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아버지 할머니용 지팡이부터 키가 큰 젊은이용 지팡이까지 다양하다.

머리에 꽃을 단 아줌마
길을 가다 며칠 전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스페인 아줌마(다리에 바르는 알콜을 알려줬던...)를 만났다.
그때는 알베르게 안이라서 몰랐는데 옷차림이 독특하다. :)

챙이 작은 귀여운 모자를 쓰고, 모자엔 작은 꽃을 꽂았다.
가방에는 비닐봉지, 호리병, 옷, 신발, 매트, 주렁주렁 달기도 많이 달았다.
게다가 한 손엔 보온병을 들고 다니신다. 보온병의 꽃장식을 보니... 흠... 범상치 않다..
정신없는게 나의 20~30년 뒤를 보는 듯하다. ㅎㅎㅎ

여튼, 이런 모습은 걷는데 아마추어라는 의미다.
스포츠웨어에 등산용품으로 완전무장하고 걷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위의사진] 스페인 아줌마의 모습
뒷모습이라 잘 보이지 않는데 상당히 귀여우시다~

걷는 속도도 나와 비슷하고 해서 잠시 같이 걸었는데
아주머니가 어찌나 손동작을 많이 하시는지... 재밌어서 스페인식의 제스쳐를 배웠다.

'로꼬(Loco, 미친)'는 한쪽 머리에 손가락을 대고 비튼다. (한국과 비슷~)
'무에르토(Muerto, 죽은)'은 턱 가운데에 손가락을 댄다. (파라오를 연상케함)
'멜라꽁(Melacong, 게이)'은 뺨에 손가락을 대는데 우리나라의 '예쁘지?'할 때와 비슷하다. -.-
 
치노(Chino)는 자기네 사람들은 '돌'이라는 의미로 쓴단다.
돌처럼 많아서 그렇다는데... 같은 동양인으로 좀 불쾌했다. =_=

아줌마는 내가 보아온 잘 걷는 유럽인들과 달리 나랑 속도가 비슷했지만
그래도 나보다 빨리 걸으셨다.. ㅠ_ㅠ

몇 키로만 더 가면 수영하기 좋은 강이 나오는데
그곳에 있는 알베르게에 묵으면서 수영도 할거라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위의사진] 이날 길에서 먹은 점심, 야채참치 맛나는 통조림이 맛있다. 1.5유로

[위의사진] 아주머니가 묵으신다던 그 곳. 수영하기 좋긴하다. +.+

[위의사진] 날씨가 더우니 아껴뒀던 젤리가 녹아 붙어 버렸다. ㅠ_ㅠ

[위의사진] 누군가 다음 사람을 위해 두고간 아쿠아 슈즈.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 내게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쉽게 구분이 된다.
매일매일 알베르게와 길에는 이렇게 두고 가는 물품이 허다하다.
내 안의 욕심이 뭐였는지 알 수 있다.

[위의사진] 저 멀리, 도시가 보인다. 폰레라다, 오늘 내가 머물 곳이다.
 

스물 다섯번째 날, 폰페라다(Ponferrada) 28km
도시에 들어갔다. 곳곳에 깨끗한 유리창이며 정돈된 건물이며 모두 시골과는 다르다.
거울같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반가워 셀카놀이를 잠시...--;;;;

[위의사진] 정말 깨끗한 유리! +.+

머리에 쓴 스카프는 목 뒤와 어깨와 팔을 햇빛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
저걸 쓰지 않으면 어깨와 팔이 따끔거릴 정도로 햇살이 뜨겁다.

[위의사진] 유리는 좀 흐리지만 정면 사진을 찍을 만큼 크기가 넉넉했다! >.<

흑, 저 지팡이...기념으로 한국으로 가져오려고 했었는데..
어이없이 포르투갈 리스본 화장실에 두고왔다지. ㅠ_ㅠ

잠시 알베르게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헤맸었는데 금새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순례자를 따라가면 되었으니까...ㅎㅎㅎ
모자도, 가방이 없어도 순례자를 찾을 수 있어.
그냥 봐도 뭔가 순례자 삘이 난다...

척 봐도 알 수 있어.
우린 뭔가 후즐근하다...-,.-

[왼쪽사진] "우리를 따라오세요~"라고 쳐다보는 순례자.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안답니다. :)
순례자 밥 먹은지 벌써 25일 째라구요~


이 알베르게는 도네이션제. 돈을 내도되고 안내도 된다.
도네이션 알베르게에는 항상 5유로를 냈다.
돈안내고는 미안해서 도저히 못 묵겠어. --;

7시 20분 출발, 3시 30분 도착.
8시간 20분 소요.

[위의사진] 우아~~ 이렇게 으리으리한 알베르게는 처음이야! >.<

높은 천장에 탁트인 정원. 게다가 분수까지 있다! (물론 발을 담그고 있지만..-_-;)
모든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기분이 업되었었다지~ :)

주방도 빨래터 시설도 모두모두 좋았어.
(무료인터넷도 가능했지만 한글 읽기조차 안되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분수에 발을 담그고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나도 함께 담그고 있었는데 발이 시려서 도저히 담글 수가 없었어. ㅠ_ㅠ
다들 발에 열을 빼려고 담그는데 난 왜 이런거야..흑흑.

이날, 저녁식사
[위의사진] 슈퍼에 갔더니 500g 해산물이 담긴 팩(5유로)이 있어서 해물탕을 끓였다.
새우랑 오징어, 홍합 등등 해산물은 푸짐~
고춧가루가 있었음 딱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

사람들이 내가 한 요리가 뭐냐고 자꾸 물었다.
그냥 물넣고 끓인건데...-_-;;;;

[위의사진] 막다른 길, 누군가 순례자들에게 길을 알려주기 위해 자기 창문에 화살표를 달았다.

창가의 작고 예쁜 화분이 이 사람의 마음같아.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

2008. 10. 7(2010.4.30 업데이트) pretty chung..:-)

다음 글 읽기 ☞ [순례자의 길28] 스물여섯번째 날, 엉터리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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