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물세번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순례자들은 시속 80km 속도를 유지하시오."
라고 쓰여있는 것 같아 잠시 큭큭. 하고 웃었다.

우리는, 시속 3~5km로 걷는다.
아침엔 4~5km, 몇시간 이후엔 3~4km ㅋㅋㅋ


점점 가까워지는 산티아고

[위의사진] 와, 이제 200km 대구나...ㅠ_ㅠ
며칠 있으면 100km 대가 되겠지...ㅠ_ㅠ

11km쯤 걸으니 걸으니 멋진 마을이 나타났다.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

 [위의사진] 멋진 중세 마을로 들어가는 길

 [위의사진] 마을까지 길고 긴 다리로 연결된다.

[위의사진] 2년마다 7월 첫째주 일요일 중세 페스티발이 열린단다. (2011년에 열릴 예정)
시간이 맞다면 구경할 만할 것 같다.

조금 더 걸으니
아스토르가를 갈 수 있는 두 갈래길이 나타났다.

[위의사진] 간혹 이런 표지판을 만날 수 있는데,

대부분
빠르지만 아름답지 않은 도로 길이 있고,
좀 돌아가지만 아름다운 길이 있다.
(위의 길은 1km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10km 정도 차이나는 것도 있다.)

항상 그렇듯 선택은 자유다.

봉우리
분명히 지도 상에는 이렇게 심한 오르막 길이 아니었는데... 계속 오르막 길의 연속이다. -_-
오늘 걷는 길이 그렇게 긴 것도 아니고, 조금만 더 걸으면 분명히 목적지인
아스토르가가 나타나야 하는데... 당췌 나타나질 않는다. 오늘 많이 지친걸까...-_-


한참을 올라가다보니 언덕 끝이 보인다.
저 언덕을 넘으면 아스토르가가 보이겠지...하는 기대감에 오른다.

하지만...

 [위의사진] 아니다.
다시 끝도 없이 펼쳐진 길이 보였다.

아아, 너무 멀다. ㅠ_ㅠ

 [위의사진] 또 다시 긴 길을 지나
그리고, 언덕을 넘어야 한다.

문득, 양희은(김광석)이 부른 '봉우리'가 생각났다.

"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대로만 흘러내리는...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우리가 오를 봉우리.
 "


끝도없이 이어진 길.
저기까지 올라가면 되겠지... 하지만,
더 높은 봉우리가 있고 또 길은 이어진다.

이럴땐 바다가 그립다.
높은 곳 말고, 한없이 낮은 곳으로 가면
끝도없이, 깊이도 알 수 없는
거대한 바다로 이어지는 그런 길, 그리고 그런 삶.

역시, 높은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길은 계속 되었다. 

 
부부는 자전거를 타고 십자가를 향해 달린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그들이 부러워진다. =_=

그리고, 십자가가 드디어 느린 발걸음의
내 눈 앞에도 가까이 오고....

 
그리고,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아스토르가가 눈 앞에 보였다. ㅠ_ㅠ

아아, 정말 멋진 전경이다.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정말 몰랐어!

(하지만, 이렇게 높을 줄도 정말 몰랐어..-_-;)

 
내려가는 길이 가파라 발이 미끌어진다.
안그래도 다리에 힘이 다 풀렸는데 픽픽 미끌어지기 일쑤다.

아까 부러워했던 자전거 타던 부부,
내려가느라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이젠 하나도 부럽지 않아졌다. -_-

역시, 도보가 최고다.
 

스물 세번째 날, 아스토르가(Astorga) 26.4km

7시 20분 출발, 3시 도착.
7시간 40분 소요.

오늘 들리게 된 곳은 모두 아름답다,

중간에 들렀던 중세 마을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도,
그리고 오늘 도착한 아스토르가도.

이곳에는 알베르게가 3개가 있었는데
[왼쪽사진]이 내가 묵은 곳이다.
4유로, 인터넷 무료.

알베르게 건물의 반대편이 절벽인데
식당쪽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꽤 멋있다.

아스토르가는 작은 마을이지만,
나름 관광지로 예쁜 곳이다.
게다가 슈퍼마켓도 있다! +.+

 [위의사진] 광장의 모습.

[위의사진] 가우디가 만들었다고 써 있다.

[위의사진] 이날 먹었던 점심과 저녁.

점심으로는 며칠 전 산 인스턴트 스파게티. 보기보다 맛은 있었다. =_=
저녁으로는 또... 뿔뽀...--;;;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샐러드!!! +.+

다시 만난 일본 할아버지
마을을 돌아보고 알베르게에 돌아왔는데... 어..?
얼마전에 길에서 만났던 일본인 할아버지가 앉아 계시다! +.+

며칠전 길을 걷다 그늘진 작은 휴식처가 보이길래 점심을 먹으러 들어 갔는데
거기서 조그마한 라디오로 엔카를 들으며 점심식사를 하던 일본인 할아버지를 만났더랬다.

매우 마른 몸에 칠순이 넘는 분이셨는데(정확히는 75세!!)
엄청나게 커다랗고 무거워보이는 가방을 가지고 계셔서 첫번째로 놀랐고,
그 가방 안에 세계 각국의 작은 술병들이 들어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랬었다. =_=

할아버지는 한국 트로트 노래를 들려주며 한국 음악이 좋다고
내게 무슨 뜻인지 묻기도 하셨는데... 점심식사 후에 조금 함께 걸었더랬다.

내게 언덕길을 오르는 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먼 곳을 바라보지 말고,
발있는 근처를 바라보며 '하나, 둘, 하나, 둘'만 속으로 세며
팔자로 걷는 것이 지치지 않고 편하다고 알려주셨다.

할아버지는 짐도 무거운데 뭔가에 쫓기듯  빨리 걸으시길래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 왜 그리 빨리 걸으세요? 일정이 바쁘신가요?"
"아니, 난 시간은 많아. 하지만, 다리가 긴 서양사람들을 따라잡으려면
 내 짧은 다리를 빨리 놀리는 수 밖에 없지."


할아버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며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렇게 헤어졌으니 나는 할아버지가 나로부터 2~3일쯤은 더 앞서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스토르가에서 다시 만나다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

테이블로 다가가 앉아계신 할아버지를 보니
발에 붕대를 칭칭감고 계시다. -_-

"무리했더니 발바닥에 커다란 수포가 생겼어.
 이곳에서 치료받고 오늘이 이틀째인데 좀 더 머물러야할 것 같아."


......

무리해서 걷는 것은 이곳에서 소용없다.
누군가를 이기려고, 따라잡으려고 걷는 것 역시 이곳에서는 소용없다.
순례자의 길은 경쟁을 위한 길이 아니니까... 

자기 몸 보다 더 큰 먹이를 옮기고 있는 개미.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2008. 8. 25(2010.3.22 업데이트) pretty chung..:-)

다음 글 읽기 ☞ [순례자의 길26] 스물네번째 날, 그가 걸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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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미  수정/삭제  댓글쓰기

    곧 순례자의 길을 걸을 것 같아요. 연재 보면서 정말 기대되고 어서가고싶어요! 히히,

    2010.06.11 21:4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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