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물두번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순례자들에게 도시는 정글이다.
명확하게만 보이던 화살표는 도시에만 들어가면 숨은 그림 찾기가 되어버리고
수없이 나뉘어진 길들과 건물, 그리고 화려한 색깔의 물건들로
순례자들은 어리둥절해하다 어느새 판단력을 잃어 버리고 만다.

표지를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복잡한 도시에서 숨겨진 화살표를 찾는 것.
그것은 험한 세상의 내 삶의 길에서 표지를 찾는 것과 같다.

당신은
[위의 사진]에서 화살표를 찾았는가...?

표지는 오직 찾으려는 자에게만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숨겨진 화살표를 찾는 일,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상.

백번을 지나가도 표지의 의미를 아는 자만이 그 가치를 깨닫는다네.

광장의 순례자
어제보다 늦게 출발했는데 다행히 알베르게에 나 말고도 한 사람이 남아있다.
그녀는 다리에 깁스를 한 순례자. -_-;;; (이런걸 기뻐해야하는 건지...-,.-;)

원래 순례자는 한 알베르게에서 하루 이상 머물 수 없지만
이 순례자처럼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가능해진다.

반짝반짝 광나던, 벌레 한 마리도 없던 유스호스텔을 빠져나오는데 아쉬워 죽겠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그녀처럼 깁스를 하고 께끗한 유스호스텔에서 3일 쯤 쉬고 싶었다..-_-;;
마그네슘같은 거 먹지 말고 말이다...ㅠ_ㅠ

레온을 막 빠져나가는데 앞쪽에 커다란 광장이 보인다.
광장의 한 가운데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는데 얼핏 누군가 앉아있다.  [아래 사진]


누구지...?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 아니라 동상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순례자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십자가에 등을 기대고 허공을 향해 고개를 조금 든다.
눈을 지긋이 감고 지친 숨을 고르며
감은 눈으로 느껴지는 햇살은 따뜻하다.
달콤한 휴식, 그것은 폭신한 구름 속에 누운 느낌이다.


그리고, 그의 발은...


얼마나 걸었는지 가죽 신발의 바닥엔 발자국이 나 있다.
그동안의 걸었던 고난의 무게만큼이나 선명한 발가락 자국...

그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눈물이 핑돈다.

광장의 십자가에 기대어 쉬고 있는 순례자 동상 때문에
한참 걸어야할 시간에
한동안 광장을 떠나지 못하고
그렇게 서 있었다.

스물 두번째 날, 비야단고스 데 파라모(Villadangos de Paramo) 20.4km
7시 45분 출발, 2시 40분 도착. 7시간 소요.
다리는 기름칠을 하지 않은 기계처럼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원래 5km 더 가려고 계획을 세웠었는데 [아래 사진]의 알베르게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이렇게 정원이 멋진 알베르게는 오랜만이다.
한가롭게 휴식을 즐기는 순례자들의 모습은 마치 천사같다.

발바닥과 다리의 고통만 뺀다면 천국이 따로 없을텐데...
아니, 오늘 하룻동안 걸었던 것 때문에 이 휴식이 더 달콤한 것이겠지.


주방 있음. 3유로
(정원은 아름다웠지만 깨끗한 침대를 고르고
 몸에 벌레방지약을 발랐음에도 불구하고
 또 벌레에 물렸다. ㅠ_ㅠ)


[왼쪽 사진] 어제 산 인스턴트 스파게티로 점심을.
맛은 그닥그닥
 
그리고 [아래 사진] 저녁으로는
이제는 완전 매니아가 되어 버린 올리브 오일에 저려진
뿔뽀에 양파를 볶은 음식을 메인으로 준비했다.
또, 한국에서도 종종 해먹게 되어 버린 스페인식 샐러드
(보통은 상추, 올리브, 토마토를 잘라 만들지만,
 걷는 동안 상추 구하기가 어려워 항상 오이로 대체하고 있다)

당연히 신선한 바게뜨빵을 곁들이고....
후식으로는 복숭아 하나를 준비했다.

이 정도면 정찬이지, 그럼. 천국이 따로 없고나. :)

2008. 8. 23(2010.3.22 업데이트) pretty chung..:-)

다음 글 읽기 ☞ [순례자의 길25] 스물세번째 날,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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