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무번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뜨거운 땅 위의 십자가조차 묵묵히 한마디만을 하고 있다.
"네가 가야할 곳은 순례자들의 상징인 조개가 가리키는 그 곳,
그 곳은 산티아고다." 라고...

 

잠을 설친 아침
오늘 걸을 구간은 31km, 길은 평지지만 거리가 거리인지라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어제 죽은 듯 일찍 자 버렸으나
걱정했던 알베르게의 독특한 구조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잠을 깼다.

누군가의 알람소리, 짐을 싸는 부스럭대는 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림...
눈을 비비며 일어나 어제 사뒀던 빵에, 사람들이 끓여놓은 뜨거운 물에 커피를 타 아침밥을 먹었다.

이날, 시끄러운 사람들 덕분에 감사하게도 새벽 6시 45분!!! 에 길을 출발하는 기염을 토했다. 음홧홧.

[위의 사진] 어스름한 새벽. 오래된 다리의 불빛도 아직 남아있다.
가을에 걷는 순례자들은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우리처럼 새벽말고, 아침에 출발한단다.

물 없는 13Km
길에서 나초와 얀을 다시 만났다.
(있다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들은 눈에 잘 띨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스페인 사람인 나초는 15일째 만났었고(관련 글 - '오아시스' 편),
네덜란드인 얀은 17일째 만났던 사람이다. (관련 글 - '세상의 진실' 편)

앞으로 13km구간동안 물이 없단다.
(말해줘서 감사하다! 이번엔 물 없이 걷지 않을테야. ㅠ_ㅠ)
13km 구간 직전의 마을의 이름은 El Burgo Ranero(엘 부르고 라네로)이니 미리 이곳에서 물을 가득 채우자.

[위의 사진] 13km구간의 시작, 그래도 마의 17km 구간보다 백만배쯤 럭셔리하다.
자갈길보다는 아스팔트 길이 걷기 편하다.


나무 옆에 난 길이 순례자가 걷는 길이지만 차가 없어 아스팔트로 걸었다.
역시, 그늘은 없었다. 사진 속의 그늘은 거대한 구름이 만든 것.
이보다 멋진 그늘은 없지. :)

[위의 사진] 이날의 점심, 아침에 먹다 남은 바게트 빵과 감자 샐러드.
Isavel(이사벨) 브랜드... 좀 비쌌지만 좋은 반찬꺼리.


[위의 사진] 얀과 나초, 그리고 미국에서 온 한 언니와 함께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걷다
중반쯤부터는 서로 이야기를 하며 함께 천천히 걸었다.
이야기하면서 걸으면 시간은 걸리지만 좀 더 쉽게 걸을 수 있다.
사진은 거의 목적지에 다 온 모습. 인가가 보인다.

스페인 사람인 나초는 내게 '마리아'라고 불렀다.

해가 너무 강해서 선크림을 발라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되자
한낮동안에는 긴 스카프를 모자 위에서부터 쓰고 양 옆으로 내린 후
손목에서 묶어 어깨와 팔을 감싼 후 걸었는데 이 모습을 보고 '마리아'같다면서 그렇게 불렀다.

황송한 이름이라 그렇게 부르지 말랬는데 끝끝내 마리아란다.

나초는 스페인인으로 그라나다에서 경찰로 살고 있다.
산티아고에 가면 피앙세인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고 올 가을에 결혼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길은 스포츠를 목적으로 걷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복장도 남다르다.
순례자들 중에서도 보기드문 쫄바지 패션...+.+

네덜란드인인 얀은 키가 2m가 넘는 장신으로 나의 부러움을 샀다.

"와, 너는 키가 크니까 발도 클꺼야. 세상에나! 신발이 항공모함 같잖아!!
 나는 다리가 짧아서 너의 기다란 한걸음이 세걸음 정도는 될껄?
 세상은 불공평해. 네가 정말 부러워...ㅠ_ㅠ"


"이 봐, 아니따. 난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보통 사람들보다 빨기 걷기는 해.
 하지만, 큰 키 때문에 쉽게 피로해져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물을 먹고 더 자주 쉬게 돼.
 결국, 하루에 걷는 거리는 결국 마찬가지더라구. 그러니 세상은 공평한거야."

요즘도 느끼지만, 세상은 정말 공평하다. 
그러니 나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하던 일만 열심히 하면 돼.   

[위의 사진] 왼쪽은 2m의 얀, 나, 그리고 쫄바지 패션의 나초.

얀에 비하면 정말 우리는 난쟁이같다. ㅋㅋ 저 긴 팔을 봐~
내 지팡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흰 비닐은 쓰레기 봉투.
마을이 없으면 쓰레기 버릴데가 없어 저렇게 가지고 다녀야한다. =_=

[위의 사진] 이번 13km구간엔 유난히 순례자들의 십자가가 많이 보인다.
길을 걷다 이곳에서 운명을 달리한 순례자의 비석. 순례자들이 얹어놓은 돌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며 천국으로 갔을까?

스무번째 날, 레레고스(Relegos) 31km

[위의 사진] 나초가 이곳은 와인을 저장하는 장소라고 했다.
우리나라 도자기를 굽는 가마처럼 생겼는데 여러개가 몰려 있으니 귀여웠다.


6시 45분 출발, 2시 50분 도착.
8시간 5분 소요.


함께 걸었던 친구들 덕분에
마지막 13km가 별로 힘들지 않았다.


부담스러웠던 오전의 마음과는 달리
31km인데 늦게 도착하지도 않았고
시에스타를 즐길만큼 여유있다. ㅎㅎ

[왼쪽 사진] 이날 묵었던 알베르게.
주방 있음. 4유로



[위의 사진] 오늘의 상. 계란 굴 통조림 볶음과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 올리브 샐러드! +.+
(좀 더 좋아하는 음식은 토마토+상추+올리브 샐러드라야 완벽한데! 상추를 안팔았다. -_-)
샐러드를 만드는데 든 돈 1유로(토마토 1개 0.38유로, 올리브 작은 팩 0.5유로. 오이 1개 0.13유로)
계란 홍합 통조림 볶음에 든 돈 1.55유로(계란 2개 0.3유로, 굴 통조림 1.25유로)
그리고 신선한 바게트 0.45유로.
 
뭐야, 한국 물가보다 훨씬 저렴하잖아! -_-;;;;

2008. 8. 14(2010.3.15 업데이트) pretty chung..:-)

다음 글 읽기 ☞ [순례자의 길23] 스물한번째 날, 레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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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뉴맘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재 넘 재밌게 잘 보고있습니당^^
    5개월된 아가와 씨름하다 갖는 황금 휴식 시간에
    쁠님의 순례자의 길을 일으며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있지요;
    (예전에 임신37주라고 하며 슬링 어디서 샀냐고 물었던
    아이디 로즈마리인데 아뒤를 바꿨어요 아기 낳으니 바뀌네요 ㅋ)
    근데 저런 샐러드 만드시면 드레싱은 뭘로 하시는거에요?
    정말 여행기와 너무 상관없는 질문....;;창피하네요ㅋ.ㅋ;;

    2011.07.27 21:51 신고
    • 쁘리띠님  수정/삭제

      슬링... 저는 벌써 2개째 잃어버렸는데..ㅠㅠ
      저렴하면 하나 다시 사고 싶어요. ㅠㅠ

      샐러드 드레싱은 식초(발사믹 쓰셔도 되고)+올리브오일(없으면 그냥 식물성기름도 쓰더라구요. 현지인들은)+약간의 소금+그리고 올리브가 담겨있는 국물도 쓰심 맛나요!

      2011.07.27 22:24 신고
  2. 오뉴맘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슬링 저는 쁘리띠님이 쓰신다는거(분홍색 핫슬링) 따라서 샀는데
    어깨가 아프고 아기 허벅지가 쪼이는 거같아서 몇번 못썼어요.
    조만간 중고나라에 올려서 팔 생각인데(4만원) 관심있음 댓글 남겨주세요ㅎㅎ
    암튼 드레싱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순례자의 길 다 봐 가는데 아쉽네요~

    2011.07.28 23: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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