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열 여덟번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이 자식아, 큰 길로 다녀."
"Fuck you"

.
.
.
꼭 큰 길로 다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사라진 어미 개
아침에 일어나 어미개에게 인사를 하러갔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 것일까?

맞아, 아무리 롤란드가 좋아도 젖을 기다리는 강아지가 몇인데....
돌아갔겠지. 그래, 돌아갔겠지. 정말 다행이다. ㅠㅠ

롤란드에게 이 얘기를 하자, 역시 전혀 근심걱정 없었던 표정으로....
말만 "정말 잘된 일이야. 드디어 돌아갔구나." 란다.

어미개에 대해 걱정한 사람은 역시 나 혼자 뿐이었어. -_-;

사실,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어제만 하더라도 난 롤란드를 붙잡고 진지하게 말했었다.

"롤란드, 이 어미개는 너를 따라오는 것이니 네가 책임져야 해.
 개는 마실 것과 먹을 것이 필요해. 봐, 이 개는 뼈밖에 남지 않았다구.
 만약 산티아고까지 따라온다면 넌 개줄을 사야겠지. 도시는 차 때문에 개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어. 
 그러면서 넌 이 개의 주인이 되겠지. 도시에서는 지금과 달리 사료를 사야하니 돈도 들게 될꺼야.
 이후에 여행을 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네 여행에 짐이 될 수도 있어. 개를 받아주지 않는 숙소도 있으니까.
 그러니, 서둘러 차를 타고 마을로 돌아가서 강아지들이 있는 곳에 돌려주는게 나을꺼야.
 그나저나 강아지들이 벌써 죽었으면 어떡하지? ㅠ_ㅠ"
 

동시에, 만나는 사람 족족...
이 개가 수십키로 떨어진 곳에서 롤란드를 따라왔으며
젖이 필요한 강아지들을 두고 왔다고 말해댔었다.

모두 근심스런 표정으로 나의 고민을 나눠줬지만,
사실 난 그저... 나의 걱정을 최대한 많이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불암함을 조금이라도 전가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거야.
어떻게될지 모를 미래까지 걱정하다니...
얼마나 부질없는 말이었던가.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던가.

롤란드에게 먼저 걷겠다고 말하고 혼자서 숙소를 나섰다.
롤란드의 걸음은 나보다 빠르니 아마도 잠시 뒤 길에서 만나게 될테다. -_-

[위의 사진] 산티아고는 이제 400km대가 되었다. 아침의 길.
이 길은 예쁘지 않다. 도로 옆에 난 순례자의 길에 저렇게 똑같은 표지를 몇 키로나 심어놨다. 


[위의 사진] 중간에 경유한 마을,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Carrion de los Condes
오른쪽의 순례자 동상은 나중에 조금 비슷한 것으로 큰 동상을 만날 수 있다.

슈퍼마켓
마을을 지나는데 슈퍼마켓이 보였다.

이 빌어먹을 아메바 같은 나의 뇌세포는 몇가지 것에 정신을 잃고 반응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슈퍼마켓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것..-_-;;

몇시간 뒤에 펼쳐진 가련한 미래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른채
오랜만에 본 슈퍼마켓에 눈이 돌아 정신없이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영수증을 보니,빵, 크로와상, 체리, 홍합 통조림, 미트볼, 고기 스프레드,
전자렌지용 볶음밥, 그리고 복숭아 3개를 샀다.

흠. 견적을 보니 내일 아침까지 먹을 식량을 샀군.

- 체리-> 걸으며 먹을 간식
- 빵+홍합통조림+복숭아 1개 -> 점심
- 빵+미트볼+복숭아 1개 -> 저녁
- 크로와상+복숭아 1개 -> 내일 아침
- 고기 스프레드, 전자렌지용 볶음밥 -> 무슨 맛인지 궁금해서 샀을거다. 분명히...-_-;;;;

보통 때보다 정말 훨씬 많이 산 것이다. -_-
보통은 1끼 식량만 사는데... 하루 먹을치에 +알파로 샀으니 말이다.

가방이 무거워졌다. -_-;; 특히, 미트볼 통조림 330g -_-;;;

순례자의 길을 걸으면서 음식을 살 때 무게를 보는 버릇이 들었는데
겨우 330g? <- 이럴 수도 있지만...
아마 이 길을 걷게될 사람들은 나중에 "아~"하고 이해될 날이 올테다. -,.-
이 무게는 시간이 지나면서 1kg이 되고 2kg이 된다..

어찌됐건, 쇼핑을 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체리씨를 툭툭 뱉으며 흥얼거리며 길을 걸었다. 흣흣.

잠시 뒤, 길이 나타났다.

흠. 그늘이 없네?  +.+ 얼마나 계속되려나...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한 순례자가 나타나 말을 걸었다.

"올라~ 안녕! 물은 충분해? :)"
"응...?"
"앞으로 17km동안 물이 없는 곳이야. 물이 없으면 나눠줄게."
"아... 그래? 난 괜찮아. ^^;"
"응, 그럼 부엔 까미노! :)"

다리가 긴 그는 그렇게 말하고 인사를 하며 나를 지나쳐 가더니 곧 사라졌다.

아아, 난 왜 이 천사의 말을 거절했을까...ㅠ_ㅠ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천사였다. ㅠㅠ

신은 다른 순례자의 몸을 빌어 내게 나타나
목마를 자에게 물을 나눠주려 하셨는데
난 그것을 거부하고 말라 죽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내가 가진 물은 겨우 500~600ml 되었을까...? ㅠㅠ
아까 마을에서 식수대를 찾지 못해 물을 받아두지 못했었다. 흑.

[위의사진] 뜨거운 밀밭. 표지 위에는사람들의 돌이 놓여져 있다.

 [위의 사진] 앞서 걸어가는 순례자. 이들도 내 뒤에서 걸어오던 사람들이다. -_-;

[위의 사진] 조금 더 많아진 돌. 물이 마시고 싶은 거겠지. -_-;

잠시 뒤, 난데없이 식수대 표시가 나타났다.

가봤더니....


[위의 사진] 말라 버린 우물과 마시고 버린 물통만 가득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하고 발길을 돌렸을까...--;;

이전에도 이렇게 땡볕에서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이번엔 더 길었다. 최장 거리 17km.
지금 생각해도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었다. -_-

순례자의 길을 걸을 사람이라면 이전 마을인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Carrion de los Condes에서
반드시 물을 채워가고, 물을 한 통 더 준비해 가길 바란다.
생에 최악의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슈퍼마켓에서 산 것들을 모두 버릴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란...-_-;

복숭아는 이미 다 먹어 버렸다. 무거운데다 물 대용으로...-_-;

[위의 사진] 다리가 후들후들, 입술을 말라 버린지 오래.
정말 여기서 쓰러져 죽으면 아무도 알지도 못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내일 신문엔 내 이름이 실리겠지.


"남한 Corea del Sur에서 온 순례자 길에서 말라 죽어....
그녀의 수통은 겨우 850ml로 어이 없었는 양이었다. 아마도, 물이 부족해 죽은 것으로 추정.
 순례자들은 모두 앞서가 그녀를 발견하지 못해, 죽은지 24시간은 된 듯..."


하지만 동산을 넘으니...

[위의 사진] 오아시스가 보였다.

빨리 뛰어가서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다리에 기운이 없어 뛰어가지도 못하겠다. ㅠㅠ

눈 앞에 식수대가 보이는데 내 다리는 문워킹하듯 느리고 또 느리다. ㅠㅠ
겨우겨우 식수대에서 물을 마셨을 때의 그 느낌이란.....

생명수가 바로 이런거구나...싶었다.
내 몸 안 구석구석으로 생명이 퍼져갔다.

열 여덟 번째 날, 깔사디야 델 라 꾸엔사(Calzadilla de la Cuenza) 23km

8시 25분 출발, 3시 40분 도착.
7시간 15분 소요.


[왼쪽 사진]
언덕을 넘자마자 보였던 알베르게. 6유로.
한 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잤지만 괜찮았다.
(자리가 있어서 고마웠다. ㅠ_ㅠ)

침대를 배정받고 씻고 밥을 먹으니
또 내가 언제 그랬었냐는 듯...
여유로운 마음으로 돌아왔다..-_-;

역시 너무 간사하다.

수영장도 있었지만, 수영할 기운까지는 없어서 그냥 패스.
그리고 산책(?)을 나갔다.

사악한 나
몸과 마음이 좀 진정되자 알베르게 앞의 의자에 걸터 앉았다.
선글라스를 쓰고 내가 넘어왔던 길의 언덕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잠시 뒤, 아니나다를까...
광고에 보면 사막에 물이 떨어져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있지않나?
어깨는 축 늘어뜨리고... 갈 지자로 비틀비틀 걷는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커다란 가방을 멘 젊은 일본 남자다.

한시간 전의 나처럼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난 핫팬츠에 선글라스를 낀채 벌떡 일어나
하나도 목마르지 않은 자연스런 표정과 자세로
곧 있으면 그가 미친 듯이 벌컥벌컥 들이킬 식수대로 천천히 걸어갔다.

당연히 그의 걸음보다 나의 천천한 걸음이 더 빨랐다.

그리고, 물을 마시며 그가 다가오길 기다렸가 말했다.

"안녕. 목마르지?"

.
.
.
.

난 이 날 왜...
그 모습을 보며 즐기고 싶었을까...-_-;;;

[위의 사진] 이렇게 큰 표지가 있는데도 안보인다구요? +.+
 

2008. 4. 24(2010.3.15 업데이트) pretty chung..:-)

다음 글 읽기 ☞ [순례자의 길21] 열아홉번째 날, 세상과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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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패딩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 대단 하십니다.
    저처럼 땀이 많은 사람은 중간에 쓰러 졌을듯.. ㅠㅠ

    2010.03.15 21: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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