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열 일곱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위의 사진] 마을을 떠나며... 이날 오랜만에 9시쯤 출발했다.
 

일어나자마자 몸 상태를 체크했다.
어제 알베르게의 침대에서 말라 죽은 빈대 몇 마리를 봐서...-_-;;;

긴팔 후드티에 모자를 쓰고, 긴바지에, 양말까지 신고 잤는데...
오른쪽 발목 좀 위에 커다란 수포가 생겼다. 이런 적은 또 처음이다. ㅠㅠ

며칠만에 또 벌레에게 물린건데
특이하게 커다란 수포를 만들어서 정말 무시무시했다.
(이 벌레는 나중에 다른 사람이 물린 것도 한번 보게 되는데... 정말 무서운 벌레다.-_-;)

벌레에 물린 모습을 본 롤란드는(롤란드도 충분히 내가 벌레에 계속 물린 것을 알고 있다)
자기가 인도 여행할 때 어떤 벌레는 피부 아래에 숨어 살면서 밤이 되면 나와서
몸을 무는 벌레가 있는데 그 벌레가 아니냐며 나를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이게 했다. ㅠ_ㅠ

잘 생각해봤지만, 그 벌레라면 매일매일 물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

밖에 나와 어미 개가 잘 있는지도 살폈다.
문을 나서니 반갑게 꼬리를 치며 인사한다. 얘는 잘 잤나보다. ㅠ_ㅠ

[위의 사진] 누가 만들었는지 너무 예쁘다.


나의 순례자의 길에 변화가 생겼다.

이전과 다른게 있다면,
매일 혼자걷다가 어제부터 롤란드랑 함께 걷게 된 것과
내 개는 아니지만 남의 개를 돌봐주기 시작한 것과 -_-
모처럼 매우 늦은시간(롤란드는 나보다 더 늦게 걷기 시작한다. 9시쯤 부터)에 걷게 된 것이다.

롤란드와 이야기하며 걷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개가 언제 돌아갈까 자꾸 걱정이 됐다.

걷다가 어제 함께 저녁식사를 한 아이슬란드 친구 3명을 다시 만났다.

그 중에 한 여자는 나와 비슷하게 벌레에 잘 물리는 체질이었는데,
어제 그 숙소에서 엄청 물렸단다. -_-; (음.... 거기 갔어도 마찬가지였겠군..-_-;;;; 조금 위안이...)

그런데, 얘네들 속도가 정말 빠르다. 다리가 아파 못 쫓아가겠다. ㅠ_ㅠ

가만보니 롤란드도 하루에 40~50km 걷는 친구인데 어제 내 발걸음에 맞춰서 걸어준거였다.
롤란드랑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아이슬란드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함께 걸으니 그걸 알겠다.
롤란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들과 보조를 맞추며 걷는데... 난 못따라 가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따라가기 힘들어서
좀 천천히 갈테니 있다 숙소에서 보자고 하고 뒤로 빠졌다. -_-; 아이고, 내 다리...

 [위의 사진] 멀어지는 친구들

앞서가는 친구들은 이해하지만,
어미개는 나와 롤란드를 번갈아가면서 보더니 몸을 훽~ 돌려 롤란드를 따라간다. -_-;

나쁜 것. 물과 밥을 챙겨주는 건 난데...-_-;;
누가 여자아니라고 남자 따라가는 것 좀 봐.. 오늘 저녁 안챙겨줄까봐. 씨. -_-;;;; 

열 일곱 번째 날, 비야카사르 데 시르가(Villacazar de Sirga) 19.5km

9시 5분 출발, 3시 45분 도착.
6시간 40분 소요.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아까 다리긴 친구들이랑 함께 걷다가
내 페이스를 잃는 바람에
힘들었던 하루. -_-;;;;

[왼쪽 사진] Villasirga Casa del Peregrino
요금 : 도네이션제 (5유로 냈다)

롤란드도, 아이슬란드 친구들도
어미개도 도착해 있다.

씻고, 나가서 장을 봐 왔다.

뭘 먹을까 하다가 간단한 통조림과
빵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문어를 먹어봤으니 오징어를 먹어봐야지~
오징어는 스페인어로 깔라마리라고 한다.

 
[오른쪽 사진] 깔라마레스(복수) Calamares 통조림

문어처럼 익혀 올리브유에 담근 줄 알았는데,
오징어 먹물기름인가...-,.- 색깔이 까맣다.

가격도 착하고(0.8유로) 맛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문어가 훨씬 맛난다.

앞으로는 뿔뽀 Pulpo를 사랑할테다.

밥을 먹는데, 한 남자가 눈에 띤다.
키가 2m나 되는 네덜란드인 얀이다.

배가 출출하다며 주방의 찬장을 뒤적거리더니 마카로니를 찾아냈다.
(순례자들이 두고 간 음식은 누구나 먹을 수 있다.)

얀은 마카로니를 삶더니 접시에 건저내 기름과 설탕을 쳐서 슥슥 비비기 시작했다.
보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웠는데...--; (느끼해서.. 우웩) 동양인인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다들, 신기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맛있어? -,.-"

"응, 맛있어. 난 옛날부터 이렇게 먹었는데... 맛있어."
 
내가 아무리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걸 좋아해도...-_-
이 음식만은 도전하지 못하겠다.

세상의 진실
이날, 주방의자에 앉아 롤란드와 나,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세상에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롤란드는 진실을 찾아 20살부터 10년동안 세계를 여행했으며, 실제로 많은 진실 Truth을 찾아냈단다.

매스미디어가 말하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진실이 아니며('빅 브라더'처럼)
세상을 조종 Control 하는 자들이 그렇게 믿도록 만드는 것이며
그래서 롤란드는 신문이나 뉴스, 잡지 등은 보지 않으며 인터넷도 메일정도만 이용한다고 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닭, 소, 돼지 등의 동물을 포함한 대량 생산, 재배된 것들 또한
Control의 코드(원하는 대로 쉽게 길들일 수 있는)가 들어있기 때문에 그는 베지테리언이 되었다고 한다.

지구에 살면서 자신의 정체성(본성)을 잠식당한 채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서는
먹을 때는 음식을 집중해 천천히 먹고, 잠잘 때도 집중해 자며, 걸을 때도 걷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모든 것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참된 삶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왔고, 조지 오웰의 1984와(좋아하는 책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The Truth is out there)고 말하는 미국 드라마 X파일(좋아하는 드라마다-_-)과
또는 영화, 컨스피러시(Conspiracy Theory, 음모이론)와 매우 닮아있었다.

얀은 롤란드를 선지자(또는 정신나간 사람)로 생각하고 아틀란티스 대륙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롤란드는 다빈치코드에서 나오는 언어학자의 고미술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처럼
아틀란티스 대륙은 독일의 북쪽의 한 섬이라고 증명했다. (난 이곳에 꼭 가볼테다. ㅎㅎㅎ)

또한,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냐는 질문에 롤란드는
"정말 진실을 알고 싶습니까?"
라고 반문하며 진지하게 답해주기도 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이라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에 쓰지는 않겠다. 궁금하면 직접 묻길...^^;)

그의 말이 사실이던 그렇지 않던,
그의 눈은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것처럼 맑았고 빛이 났다.

난 빛이 나는 사람이 좋다.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밀아다.

세상엔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위의 사진] 이 순례자 동상은 벌써 수만명의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봤을테다.
 

2008. 4. 13(2010.3.9 업데이트) pretty chung..:-)

다음 글 읽기 ☞ [순례자의 길20] 열여덟번째 날, 마의 1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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