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열 여섯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어미개는 앙상하게 말라 뼈만 남아 있었다.
 

    다이어리를 보니 이날은 몇시에 일어났는지도 써 있지 않다.
    아마도 어제 힘들었으니 늦게 일어나 출발했을 것이다.

    순례자의 길 내내 자주 만났던(앞으로도 만나게 될) 기세라와 실야, 그리고 나초 모두 떠나고 없었다.
    촉촉한 아침 길을 걷는데 문득, 헝가리인 실야와 어제 나눴던 얘기가 생각났다.

    "그는 정말 좋은 남자였어."
    "그런데 왜 헤어졌어?"
    "자꾸 거짓말을 했어.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음... 실야, 거짓말을 하는 남자는 좋은 남자가 아니야."

    실야는 산티아고까지 빨리 가야해서 그동안 함께 걷던 롤란드와 헤어지고 앞서 걷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으흠, 실야는 롤란드를 좋아하고 있어.

    "올라, 굿모닝, 아니따~"

    뒤를 돌아보니 롤란드다. 아이고, 깜짝이야. ㅋㅋ

    "안녕, 롤란드. :)"

    알고보니 같은 마을에서 묵었다.
    이런, 실야가 이 사실을 알면 정말 안타까워했겠군! =_=

    롤란드 주위에 개 한 마리가 따라오고 있었다.
    마을에서 본 개다.

    어제 마을의 광장에서 차에 치여 다리 하나가 거의 떨어질 듯하게 너덜너덜 거리는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보고 깜짝놀라 애써 눈을 돌렸었다.

    알베르게의 여행자들은 스페인 사람들은 강아지가 저런데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화를 냈었는데...
    바로 그 새끼강아지를 포함한 몇몇 강아지들의 어미개다.

    "저 개는 왜 데리고 왔어?"
    "내가 데려온게 아니야. 마을에서부터 날 따라왔어."
    "롤란드, 저 개는 새끼가 있어. 마을로 돌아가게 해야해."

    몇 번이나 가라고 쫓았지만, 막무가내다.
    롤란드도 따라오는 어미개에게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다.

    롤란드와 하루종일 함께 걷는 동안 어미개는 계속 따라왔다.
    [위의 사진]과 같은 끝없이 펼쳐진 땡볕의 밀밭길도 말이다.

     

      중간에 자그마한 교회가 나왔다.

      이 교회는 순례자들에게 매우 유명한 교회로 많은 사람들이 머물고 싶어하는 곳이란다.

      오래도 되었고, 내부 모습도 아름답다.
      진작 알았다면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렀을텐데 아쉬운 곳이었다.

      한 아줌마가 따라오는 개를 보자,
      "Que pasa.."  (께 빠사~ What's up? 잘 지내?) 라고 말하며 개를 불렀다.

      아줌마에게 이전 마을부터 따라오고 있는데, 새끼 개가 있고 벌써 마을에서 멀리 떨어졌으니
      이제 돌려보내야한다고 사정을 설명하자 걱정스러운 눈길로 어미개를 쳐다봤다.

      아줌마는 교회 안에서 물을 떠와 개에게 마시게했다.
      그러는 동안 롤란드에게 눈짓을 해 개를 두고 가자고 하고 조용히 걸어갔다.

      [위의 사진] 하지만, 다시 따라오는 개. ㅠ_ㅠ

      정말이지 걱정이 되었다.

      이 어미개가 순례자의 길 내내 롤란드를 쫓아다니면 어떻게 될지 상상했다.

      마을의 새끼 강아지들은 젖이 없어 굶어죽을지도 몰랐다.
      어미개 역시 뼈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루에 몇십키로씩 걷다간 언제 죽을지 몰랐다.

      따라오는 동안 물도 챙겨줘야하고, 먹을 것도 챙겨줘야했다.
      길의 끝까지 따라온다면 산티아고에선 어떻게 할건지도 걱정되었다.

      물론, 나의 개는 아니다. 날 쫓아온 것이 아니니.
      하지만, 롤란드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ㅠ_ㅠ

      물도, 먹을 것도, 새끼들도...

       [위의 사진] 수도의 손잡이가 너무 예쁘다.

      열 여섯 번째 날, 보아디야 델 까미노(Boadilla del Camino) 30km

      [왼쪽 사진] 롤란드와 함께 묵었던 알베르게. Alvergue Municipal de Peregrinos
      요금 : 무료


      오래된 침대에 아무도 없어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보려했지만,
      롤란드가 자긴 이곳에서 묵겠다길래
      혼자 숙소를 구하러 가기 그래서 그냥 함께했다.

      어미개가 마을에 들어올 때 동네 개들이 경계했지만, 알베르게의 뒷마당 그늘에 자리를 잘 잡았다.

      물을 주고 쉬게했다. 그녀는 오늘 30km를 따라왔다.
      거의 먹지도 못하고(점심 때 내가 빵을 조금 준게 다였다) 너무 많이 걸었다. 게다가 너무 멀리 왔다. 나는 점점 더 걱정이 되었다.

      알베르게에 주방이 없어 마을 구경(?)겸 저녁을 위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위의 사진] 앗. 좋은 알베르게 겸 식당 발견! ㅠ_ㅠ


      벌레 공포증 때문에(물렸던 전적..-_-)
      항상 깨끗해 보이는 알베르게를 찾는 거였는데,
      아무도 없는 알베르게보다 이곳이 훨씬 더 좋아보였다.
      게다가 수영장도 있다. ㅠ_ㅠ
      가격은 5~6유로 정도 했던 것 같다.

      이곳에서 아이슬랜드 친구들을 만났다.
      걷는 초기에 만났던 친구들이라 반가워 알베르게에서 함께 운영하는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어미개를 위한 음식을 챙겼다.

      롤란드는 다른 사람들이 후식을 먹을 때까지 아주 느린 속도로 본 음식을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투덜거렸지만 난 그런 그가 마음에 들었다.

      [위의 사진] 롤란드가 찍어준 내 사진.
      몇 장 안되는 전신 사진 중 하나다.

      2008. 4. 13(2010.3.9) pretty chung. :)

      다음 글 읽기 ☞ [순례자의 길19] 열일곱번째 날, 세상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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