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입니다. 오늘 막을 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당당히 세계에서 5위를 차지했지만,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는 주권을 빼앗겨버린 힘없는 나라였습니다.
그런 상황속에 일본인의 앞잡이가 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글은 우리나라가 주권국임을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발자취입니다. 

  [위의 사진] 이준, 이상설, 이위종 이 세 사람은 헤이그로 향합니다.


언젠가 헤이그에 가게된다면, 이준 열사 기념관에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고종황제의 특사가 도착했던 헤이그역에 도착하게 됩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운명을 달리한 이준열사.
 그는 왜 이곳에 왔고,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덴하그(헤이그) HS 기차역

 [위의 사진] 덴 하그(헤이그) HS역


1907년 6월 25일, 이준, 이상설, 이위종 세 명은 헤이그 기차역에 도착합니다.

한국에서 유럽까지 비행기로 가는 12시간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은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2개월 동안의 긴 여행 끝에 도착한 것입니다.

머나먼 헤이그에 온 까닭은
국제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인데요,
일본에 의해 강제로 맺어진 을사늑약의 부당성과
대한제국의 상황을 세계인에게 호소하기 위해
이준이 고종황제로부터 위임장 [오른쪽 사진]
받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상설이 합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위종과 만나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이준은 변호사로 법률에 능했고,
이상설은 을사늑약의 과정을 모두 보았으며,
이위종은 러시아에 있는 대한제국 대사의 아들로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실력을 가진 뛰어난 인재로 이 세 사람은 
대한제국의 상황을 알릴 특사로서는
환상의 팀웍이었죠.

당시 한국의 상황을 잘 알고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던 미국의 헐버트는
이준과 같은 시기, 미국으로 건너가 도움을 요청하고 이후에 헤이그로 합류하기로 합니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국제평화회의가 시작한지 열흘이 지난 후였습니다.
사실은 회의시작 시기에 맞춰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황제를 만나기 위해
열흘동안 기다리다 시간이 지체된 것이지요.

당시 세계정세는 열강들의 식민지쟁탈전이 난립하던 시기로
국제평화회의 역시, 말이 '평화'지 식민지쟁탈전을 위한 열강들의 전쟁으로 군비가 늘어나자
이런 문제들을 조율하고 '평화'(그게 싸우지 말고 잘 나눠갖자는 거지, 평화인지 모르겠지만...)를 유지하자는
데에서 출발한 회의입니다.  물론, 이런 회의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그래서, 회의기간 내내 회의장 주변에는 많은 시민운동가와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당시 약소국이었고 식민지쟁탈전의 희생자로
대한제국을 차지하기 위한 열강들의 파워게임 끝에 일본이 승리하면서
1905년 강압적인 을사늑약이 이루어진 것인데요,

러시아는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어서(뭐 이것도 일본과 라이벌 관계여서 그런 듯. -_-)
고종이 이준으로 하여금 러시아 황제에게 친서를 전하고 황제를 만나라고 한 것인데
이준 일행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러시아는 일본과의 비밀회담을 통해
일본이 대한제국에 하는 일에 대해 눈감아주는 대신 러시아의 동북아시아의 이권을 인정해주는
회담이 열리고 있었던터라 러시아 황제는 이들을 만나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즉, 친서만 전달하게 되고 열흘동안의 시간만 허비한 채
국제평화회의에 열흘이나 늦은 셈이었죠.

저도 이런 내용을 조사하고 이렇게 쓰자니
당시 특사들의 절망감과 참담함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주권을 빼앗겨 나라를 잃을 위기에 대한제국이 어떻게되든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않는... 약소국의 서러움과 구져진 자존심 말입니다.

헤이그에서 대한제국의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책임감과 심적인 부담은 상당했을 텐데요,
이들은 일단 기차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Wagenstraat 124A번지 De Jong 호텔에
숙소를 정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창문 밖으로 태극기를 걸고 본격적인 외교활동을 시작합니다.

 이준 평화 박물관(Yi Jun Peace Museum)

[위의 사진] 이준 평화 박물관
주소 : Wagenstraat 124A 전화번호 : 070 356 2510
운영 월~금 10:30~17:30, 토 11:00~16:00

이 기념관은 1620년대에 만들어진 건물로
이준열사 일행이 국제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헤이그에 왔을 때 머물렀던 호텔이었습니다.

2, 3층이 기념관인데 교민인 이기항, 송창주 부부가
지난 1995년 사재를 털어 건물을 사들여 기념관으로 만든 것을
지난 2007년, 이준열사 100주년을 맞아 정부의 지원으로
기념실을 확대, 개편해 재단장 해놓았습니다.
(2009년은 이준열사 탄생 150주년이었습니다.)

[왼쪽 사진] 한글로는 이준 열사 기념관으로 되어 있는데
영어로는 이준 평화 박물관(Yi Jun Peace Museum)이네요.
(저는 이준 평화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더 좋아서 제 글에는
평화박물관으로 통일했습니다.)


지금도 이곳 관장님이 기념관의 문을 열자마자 하시는 일은
태극기를 다는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제가 좀 일찍가서
문 열이 전이라 태극기가 보이질 않네요~

박물관 내부에는 이준, 이상설, 이위종에 대한 설명과
국제평화회의 당시의 상황, 그리고 세계 각국의 대통령들이 친필로 ‘평화’라고 쓴 평화의 방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쉬웠던 건 단체 관광객인 어른들은 이곳에서 많이 보았는데
젊은 여행자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관장님께 설명을 듣고 질문을 하느라 꽤 오랜시간
이곳에 있었는데 단 한명의 젊은 여행자만 보았을 뿐이어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위의 사진] 단체 관광객에게 설명 중이신 이기항 관장님

비넨호프, 만국평화회의장

[위의 사진] 비넨호프(Binnenhof)

이곳은 1907년 6월 15일~10월 20일,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비넨호프입니다.

관광지로서 비넨호프는 ‘안뜰’이라는 뜻으로 13세기에는 백작의 성이었다가
현재는 정부 청사, 수상 집무실, 총리실 등의 중앙관저로 쓰이는 곳으로 여왕의 집무실도 있습니다.
건물 중앙에는 헤이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13~14세기에 걸쳐 지어진 리더잘(Ridderzaal, ‘기사의 홀’ 뜻)이
있는데 현재 국회의사당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당시의 국제평화회의도 바로 이곳에서 열렸지요.

한국인들에게 이곳은 즐거운 관광지라기 보다는 씁쓸한 공간입니다.
국제평화회의는 '국제'가 아닌 '가진 국가'들의 평화회의였으니까요.

고종의 특사로 파견된 세 사람은 이곳에 입장조차 하지 못합니다.
국제평화회의에서 가장 많은 수의 참가자를 파견한 일본이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을 서명했기에
대한제국의 외교권은 일본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 입장할 자격이 없다고 이미 로비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구열강들은 일본이 다른 지역에 대한 식민지 확장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주고, 일본의 심사를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특사들은 절망에 빠져 망연자실하고 있었냐구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회의장 밖에서 외교활동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참가국가의 대표들에게 을사늑약이 부당성을 알리고 참가자격을 달라는 청원서를 돌리죠.
또, 회의의 의장인 러시아인 넬리도프 백작을 찾아가 만나줄 것을 부탁을 하지만
그는 이미 러시아에서 온 '대한제국의 일원을 만나지 말라' 라는 연락을 충실히 따릅니다.
그 뿐인가요? 회의의 부총재이던 네덜란드 외교관인 드 보포트를 만나 대표자격을 인정해 달라고 합니다.
이들의 진정성이 인정 돼 서류를 상부에 올려주었지만 그 역시 회의적이었습니다.

세계의 강대국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이득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러나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헤이그에는 국제평화회의에 문제제기를 하는
시민운동가들과 150여명의 언론사 기자들이 이곳에 와 있었습니다.

회의장의 문 앞에 서 있던 이위종에게 한 기자가 인터뷰를 청합니다.

“나는 법과 정의 그리고 평화의 신을 만나러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회의장에서 영향력 있던 신문인 평화회의보(Courrier de la Conference)에
평화주의자 윌리엄 스테드가 쓴 이위종과의 인터뷰(1907.7.5) 중에서

기   자 : "여기서 무엇을 하십니까? 왜 딱한 모습으로 나타나 이 회의장의 평온을 깨뜨리십니까?"
이위종 : "나는 흔히 제단이 헤이그에 있다고 말하는, 법과 정의 그리고 평화의 신을 혹시라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먼 나라에서 왔습니다. " ..... (중략)
            "독립 군주를 자택에 감금해 두고서 신변을 보호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식민상태로 몰아 넣고서 우리의 독립을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대한제국의 정체성은 일본이 한국을 분할해서 점차적으로 정복하지 않고
             단번에 삼켜버렸기 때문에 유지되었을 뿐입니다."

기   자 :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위종 : “그렇다면 이 세상에 정의란 없는 것이군요. 여기 헤어그에서조차도!
             당신들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하려는 것이로군요.
             결국 가증스럽게 당한 치욕을 회복할 길은 없고, 정당한 조약이 불법적으로 위반된 사실에 대한
             한 민족의 항의가 무시되어질 수 있으며, 또 한 나라의 독립은 그것의 국제적인 보장여부와 관계없이
             침탈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기   자 : "당신은 일본이 강대국임을 잊고 계십니다."
이위종 : "그렇다면 당신들이 말하는 법의 신이란 유령일 뿐이며, 정의를 존중한다는 것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고,
             당신들의 기독교란 한낱 위선에 불과합니다. 왜 대한제국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대한제국이 약자이기 때문입니까? 왜 대포가 유일한 법이며 강대국들은 어떤 이유로도
             처벌될 수 없다고 솔직히 시인하지 않습니까?"
기   자 : "하지만..."
이위종 : "싫습니다. 정의에 관해서 나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소위 말하는 평화주의자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나에게서 당신 신앙에 대한 절대적 부정을 찾아보십시오.
             대한제국은 무장하지 않은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침략적 야심이라고는 전혀없는 나라였습니다.              대한제국은 평화롭게 그리고 조용히 살아갈 것만을 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 평화론자들이 전도하는 것을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이 신문 기사와 이위종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기자 덕분에
이위종은 7월 8일 프레스센터에서 연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위종의 '한국인의 호소' 연설로 많은 기자들은 감명을 받고 대한제국에 대해 알게 됩니다.
기자들은 대한제국의 상황에 기사화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장외외교가 활기를 띠게 됩니다.

[위의 사진] 이위종이 프랑스어로 '한국인의 호소'를 연설했던 곳, 주소 : Prinsessegracht 6
가는 방법 : 비넨호프 앞의 Buitenhof 트램역에서 Centraal기차역 방향 트램 16번을 타고 2정거장을 가서 내린다.
트램 진행방향으로 걸어가다 나오는 큰 길이 Prinsessegracht  번지수를 찾아가면 된다.

7월 10일, 특사와 합류하기로 한 헐버트가 도착합니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미국으로 다시 떠나는데 이는
헤이그에서 대한제국에 대한 동정여론이 형성되었고 이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러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다음날인 7월 11일, 이위종은 부인이 아프다는 전보를 받고 러시아로 돌아가 
헤이그에는 이준과 이상설 만이 남아있게 됩니다.

사실, 이 대목에서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드는데...
이위종은 외교활동에 꼭 필요한 인물로 이준과 이상설의 입이 되었던 사람인데
이 중요한 시점에 돌연 러시아로 돌아갔다는게 조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헤이그에서 이들의 발언권이 인정된 상태도 아니었구요...
대한제국의 상황을 알렸으니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고 활동을 접은 것일까요?

그리고, 3일 뒤 이준열사가 돌연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준열사의 죽음
이준 열사의 사망에 대한 의견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병으로 사망했다는 설과 할복자결설. 또, 병사와 비슷한 일제의 음독설도 있었습니다.

7월 14일 7시, 이준열사의 죽음은 확실하나 사망원인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1년이 지나면 의사의 사망진단을 폐기해 버린다고 하네요~)

이준열사는 당시 얼굴에 종기가 나 있었다고 하는데(위의 7월 5일 신문에는 보이지 않아요~)
당시 헤이그에 있었던 일본이 한국으로 보낸 전문에 따르면 부검을 해보니
'얼굴에 난 종기의 단독에 걸려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냈다고 하네요.

단독은 피부병의 일종으로 피부의 일부가 붓고 열이나는 병입니다.
사실, 암치료나 에이즈 등에 의해 몸의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졌을 경우에나 단독에 걸렸을 때
패혈증으로 죽을 수 있지, 단지 '단독'만으로 사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하네요.
그 때문에 '병사설'을 의심하기에 충분하지요.
그래서 이러한 일본의 주장은 '할복자결'설을 은폐하고
독립심 고취를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한편, 할복자결설은 회의장에서 일본과 대한제국이
회의장에서 '외교권' 논쟁을 하다 퇴장명령을 받자 이준열사가 가지고 있던 단도로
회의 참석자들이 보는 가운데 약소민족의 상황을 묵과하는 강대국들의 모순된 모습을 항의하며
할복자결을 했다는 것인데 7월 19일자의 대한매일신보 등의 신문에 실리며
독립심을 고취시키고 항일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함께 있었던 이상설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이준의 '할복자결'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이 주장은 이준이 병사로 사망한 것을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이준열사 기념사업회에는 이 '할복자결설' 내용이 올라와 있습니다.

진실은 돌아가신 이준열사와 함께 있었던 이상설, 이위종 등이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로서는 그 진실을 알기위한 정보가 매우 희박합니다.
두 설을 증명할 자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_=

현재 '기정사실'화된 내용은 '분사', 즉 분하고 원통해 돌아가신 거죠.
이위종은 이준이 며칠동안 먹지 못했다고 신문에서 인터뷰했는데 '단독'증으로 아파서 그런 것인지,
외교활동을 하면서 약소민족의 희생을 묵과하는 강대국들의 모습에 분하고 고종황제의
뜻을 이루지 못해서 단식을 한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2개월간의 여행과 외교활동, 단독으로 체력적으로도 많이 떨어졌고 스트레스도 심했을 겁니다.
하지만, 특사활동을 하면서 갖게된 원통하고 분통한 마음이 어디 그보다 심했을까요.
그런 마음이 결국 죽음에 이르렀을 것이다. 라고 현재는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준의 죽음으로 러시아에서 다시 헤이그로 돌아온 이위종이 신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죽기직전 "조국을 구원하소서. 일본이 한국을 침탈하고 있습니다." 라고...

 
[위의 사진] 이준 평화박물관의 이준열사상

이 사건으로 일본은 을사늑약을 했던 것처럼 자기네 마음대로 고종을 폐위시켰고,
이상설 사형, 이준과 이위종은 종신형을 언도합니다.
이미 고인이된 이준에게 종신형이라...-,.- 참....
 
이준열사의 시신은 헤이그의 뉴에이크다우 공동묘지에 묻혔고
묻을 당시에 한국인 한명과 호텔의 일하는 사람, 단 두명이 있었다고 하네요.
그 한국인은 크게 서럽게 울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상설이었겠지요.

여튼, 이준열사는 그토록 열망하던 대한제국의 독립이 지나고 한참 후인...
56년이 지난 1963년에서야 독립된 한국땅으로 돌아와 수유리의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위의 사진] 이준열사의 묘석, 한국으로 이장된 후
이준열사의 무덤에는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로이터 통신이 헤이그를 떠나 미국으로 가는 이위종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위종은 언어도 능수능란 했지만, 정말 뛰어난 외교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

"본인은 우리의 임무가 실패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령에 동의했거나 독립을 포기한 사실이 결코 없음을
 헤이그 회담 뿐 아니라 유럽의 모든 정부와 미국에 알리기 위해 황제의 밀사로 임명된 사람입니다."

저는 이번 글을 쓰면서 그들이 보기에 주권도 없는 곧 식민지가 될 약소국가의 대표들이
어렵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꼿꼿하게 고개를 세우고 자존감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했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권이 빼앗겨버린 국가를 버리고 일제 권력의 밑으로 들어가
자존심을 버리고 살았던 시기에 이런, 멋진 선조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우리가 뽑았던 대통령이나 정치인 중에 이 정도의 인물만 있었다면....하는... 아쉬움이..-_-;)

헤이그에는 이런 국제회의의 결과로 많은 '평화'와 관련된 기구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전의 국제평화회의는 대단히 모순적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평화'와 관련된 기구입니다.
그래서 헤이그는 세계평화의 도시'라고도 부를 만한 그런 도시가 되었습니다.

 [위의 사진] 평화궁전(Vredespaleis), 세계평화회의 결과 생긴 국제사법재판소 등이 있는 세계평화의 상징 건물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이준 열사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이 글은 이준 열사가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기 이틀 전 강연 후
청중 한 명이
"우리나라가 큰 나라로 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중 일부가 들어있습니다.


이준열사의 말씀처럼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간만 큰 인물들만 많아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픈 요즘입니다. =_=


[이준열사 관련 홈페이지]
* 이준열사 기념관(이준 평화박물관) :
http://www.yijunpeacemuseum.com
* 청소년들을 위한 해외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사이버체험 : http://www.yti815.or.kr

청소년을 위한 홈페이지지만 객관적이고 좋은 정보입니다. 자녀들에게 보여주세요~^^

ps : 네덜란드 여행을 준비중이라면, 여행정보가 궁금하시죠?
제가 참여한
중앙북스의 '프렌즈 유럽' 네덜란드 편을 참고하세요. :)

pretty chung :)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제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감사합니다.

    2010.03.01 19:01 신고
  2. 하레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가슴 찡하네요. 언젠가 네덜란드에 갈일이 있으면 꼭 들러보고 싶어요.

    2010.03.02 22:41 신고
  3. 외대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이준, 이위종, 이상설 열사님들에게 많은 용기를 얻습니다. 대단하시고 멋진 분들이세요. 너무 서럽네요.

    2010.05.13 13:08 신고
  4. 도봉산빛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네델란드에 가서 꼭 들러보려고 합니다.
    좋은 안내 자료가 되었습니다.

    2010.05.14 11:04 신고
  5. meayou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 잘읽고 가네요
    오랜만에 긴글 정독한듯
    읽으면서 소름돋고 속상하고 하네요
    다른 블로그는 그냥 다 복사해서 붙여넣기 식인데
    많은 소소한 정보까지 알고갑니다.

    2010.10.29 10:47 신고
  6. 크라피카  수정/삭제  댓글쓰기

    쁠님~ 제 네덜란드 여행기 편에 링크할게요^^
    http://www.cyworld.com/itmarketerhs/7130881
    알찬 설명, 언제나 감사합니다!! :)

    2011.03.16 03:34 신고
  7. smilewithyu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많은 깨달음과 생각을 얻어 갑니다.

    이 글을 읽으며 흘린 눈물 만큼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2011.05.17 12:51 신고
  8. yechan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네요!! 네덜란드 여행 정보 찾다가 더 좋은 것을 알게되었어요!
    헤이그 꼭 가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2016.06.16 17:55 신고
    • 쁘리띠님  수정/삭제

      잘 다녀오세요~ ^^

      제가 쓴 프렌즈 유럽 네덜란드 편에 헤이그 소개했었는데...
      시티 42개로 개편되면서 빠져서 너무 아쉬워요. ㅠㅠ
      이 글로나마 읽으시고 꼭 다녀오세요~

      2016.06.21 16:3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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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띠의 여행 플래닛, 떠나볼까
여행이 좋아 여행을 다니다보니 여행사이트를 운영하고 여행작가가 되었어요. 맛난 것도 굉.장.히 좋아해요~♥ (원고청탁 및 강연, 인터뷰는 chungeuni@naver.com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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