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열 세번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위의 사진] 안개 가득한 새벽 산 길


순례자의 길은

매일 늦잠자는 삶을 사는 내게
(정확히 말하자면, 밤낮이 바뀐 삶...-,.-)
일찍 일어나는 삶을 사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들에 대해 일깨워주곤 했는데
이 날 역시 그랬다.

그 날 아침은...
한국까지 걸어서도 갈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에너지가 넘쳐 흘렀다.
머리는 또 어찌나 맑은지 사전이라도 통째로 외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는데...

내 의지였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묘했던 그 때...
살아오는 동안 부끄러웠던 일과 타인에게 주었던 상처들이
하나하나 생각나기 시작하는 거였다.

의도했던, 또는 의도하지 않았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피하고 싶어 애써 다른 생각을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다른 말을 중얼거려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더니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용서받고 싶어졌다.

그들에게 또는 신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받기를 원하자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지은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
.
.
신기하게도
정말 내가 용서받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위의 사진] 길에서 발견한 웃는 표정의 돌

 [위의 사진] 항상 애매한 길이 나올 때면 순례자들이 한돌 한돌씩 모아 만든
화살표가 있다. 안개낀 산길도 마찬가지였다.

 

    소용돌이 치던 마음이 평안해졌다.
    차분한 마음으로 조용히 걷고 있는데 다리가 자꾸 가렵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바지를 걷어보니
    엄지손톱만한 물린자국이 종아리에 7개가 일렬로 나 있다. -_-

    빈대다. 아아...ㅠㅠ

    걷느라 피가 순환하자 빈대에 물린 독(?)이 퍼져 가렵기 시작하는 거였다.
    30분도 안되어 금방 부어오르더니(벌레 알러지가 있다ㅠㅠ) 종아리가 울퉁불퉁하게 부어올랐다.

    내 머릿속은 금방 빈대에 대한 저주로 가득차 버렸다.
    난 빈대에게 잘못한 적이 없단 말이다!

    열 세번째날, 알타푸에르까(
    Altapuerca) 19.5km

    [위의 사진] 이날의 알베르게,  5유로

    빈대 때문에 급우울의 나락으로 빠졌다. 물린 다리가 안물린 다리와는 비교도 안되게 부어올랐다.
    도대체 몇 번째인지... 너무 우울하다. 그래서 그냥 가까운 곳에 머물기로 했다. 작은 마을이다.

    7시 45분에 출발해서 1시 10분에 도착했으니 6시간 25분 소요.
    이 마을엔 알베르게가 두 곳이 있다고 나와 있었는데, 깔끔해 보여서 들어갔다.
    시설도 새거고 깔끔한데다 주방도 있어 좋았는데 비쌀 줄 알았는데 가격도 저렴.

    작은 정원에서 사람들은 일광욕을 했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걸어놓고서 다시 일광욕을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왼쪽 사진]
    내 사랑, 뿔뽀(Pulpo)

    참치캔에 담긴 참치처럼
    캔안에 담겨 나오는 조리된 문어, 뿔뽀.

    처음엔 뭔가 해서 슈퍼에서 사먹어 봤는데
    올리브유에 담겨져 있다.

    접시에 덜어 전자렌지에 살짝 돌리면
    고소한 문어구이 냄새가 나면서
    따끈해진다.

    바게트를 문어가 담겼던 올리브 오일에
    찍어 먹으면 정말 맛난다. +.+

    사진에 나오는 것보다 맛난 게 있었는데
    상표를 알려주고 싶었는데 아쉽다. -_-;

    진짜 맛난 뿔뽀 통조림이 있었는데...



     

    [왼쪽 사진] 이날의 저녁, 8유로

    낮잠을 자고 일어나
    널어놓은 빨래와 말린 목욕가방을 챙기러
    마당으로 나갔더니 빨래 세제가
    흩뿌려져 있다. -_-;;;

    누가 내 세제를 몰래 가져 가다가
    바닥에 떨어뜨린 거였다. -_-;;;

    그냥 말해도 줬을텐데
    완전 범죄도 아니고
    내가 알아채게 만들다니...

    안그래도 다리 때문에 우울한데
    기분이 더 우울해서 기운이 없다.

    일찍 자고싶어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사먹었다.

    사진은 예쁘게 나왔지만,
    음식맛은 그닥그닥.

    이날의 기분은 며칠을 갔다.


    [위의 사진] 산 길 한가운데에 누군가 만든 하트, 사랑이다.

    2007. 11. 5(2010.3.1 업데이트) pretty chung..:-)

    다음 글 읽기 ☞ [순례자의 길16] 열네번째 날, 은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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