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세계일보에서 [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란 꼭지로
2007.7.19~2009.3.19일간 연재했던 글입니다.
신문에 썼던 글이라 조금 딱딱한 부분은 조금 수정했습니다. :)


◇산 위에서 바라본 두브로브니크 전경


그녀를 만난 건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에서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로 가는 기차 안이었다. 뚱한 표정에 부스스한 상투머리를 하고 반쪽 눈썹에 마스카라가 번진 화장까지….

호감이라는 단어를 단 한구석에서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그녀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수다스러운 내가 아시아인이 드문 동유럽의 기차 안에서 인사 한마디 건네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랬던 그녀에게 자그레브의 기차역 로비에서 말을 걸었다. 호감은 가지 않더라도, 그녀는 작고 마른 데다 자기 몸의 두 배는 됨 직한 트렁크를 끌고 있었고, 외로워 보였다. 무엇보다 낯선 도시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해 보였다.

우린 목적지가 달랐지만, 하루 동안 함께 다니기로 했다. 둘이 함께 코인 라커에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고, 구시가지를 돌아다니고,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결국 그녀는 국립공원에 가려던 일정을 바꿔 나와 함께 두브로브니크로 갔고, 우리는 함께 며칠 동안 묵을 펜션을 구했다.

“주방이 있어야 해요. 반드시!”

나는 두브로브니크의 버스터미널에서 우리를 둘러싼 호객꾼들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직접 해 먹는 음식에 목말랐던 내겐 정말 간절한 필수조건이었다. 그리고 약간의 흥정이 오간 몇 시간 뒤, 우리는 성곽 안 펜션의 식탁에 앉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환기는 잘 안 되지만 주방이 있는, 나름대로 낭만적인 분위기의 펜션이었다.

◇레이코(오른쪽)와 필자.

레이코는 음식을 전혀 만들 줄 몰랐고, 난 요리를 좋아하지만 맛을 장담할 순 없었다. 하지만, 음식 만들기에 굶주렸던 나는 엄청난 양의 재료를 사서 엄청난 양의 음식을 만들어대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지낸 4일 동안 레이코는 그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고문을 당했다.

“바지를 입으면 숨을 쉴 수 없어. 너와 있는 며칠 동안 3㎏은 찐 것 같아.”

당연했다. 아동용 수영복을 입어야 할 정도로 가녀린 그녀를 보며 나는 모성애에 불타올랐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레이코는 조금씩 웃기 시작했고, 말도 많이 했으며 머리도 더 이상 상투를 틀지 않고 예쁘게 묶었다. 난 그녀로부터 야경 사진을 예쁘게 찍는 법과 재미난 일본식 영어 억양을 배웠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의 풍경

나는 그녀가 수줍음이 많고 조금만 슬픈 얘기에도 눈물을 글썽이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이며, 배려심 많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어떤 사람의 첫인상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나는 여행 중에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한 사람으로부터 이름을 얻는 취미가 있는데, 당연히 그녀에게도 일본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유리’라는 일본 이름을 얻게 됐다.

당시 오사카에 살던 그녀는 간호원을 그만두고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한참 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해 고민하다 지금은 뷰티살롱에서 일하게 됐다고 연락이 왔다. 내가 다코야키(밀가루 반죽에 잘게 썬 문어를 넣고 구운 일본과자)를 무척 좋아한다고 하자, 다코야키는 오사카가 원조라며 꼭 놀러오라고 한다. 따뜻한 그녀가 그립다. 그리고, 오사카의 원조 다코야키도.

◇산 위에서 바라본 아드리아해.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는 발칸반도에 위치해 있으며, 아드리아해 동쪽에 인접한 세로로 긴 나라다. 크로아티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도시인 두브로브니크는 그 중 최남단에 자리 잡고 있는데, 예로부터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렸다.

7세기 중반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해 베네치아 공화국의 주요 거점도시 중 하나였다. 13∼15세기에 가장 번성했던 지중해의 해상도시 중 하나였던 이곳은 1557년 지진으로 인해 심하게 파괴되었다 복구되었으나, 1991년부터 벌어진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파괴되었다. 종전 이후 유네스코 등의 국제적인 지원으로 재건되었다. 전쟁 당시 이곳을 아끼는 많은 유럽의 지식인들이 달려와 해안에 배를 띄우고 “우리를 먼저 폭파하라”며 인간방패로 나서 지켜낸 일화로도 유명하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진정한 낙원을 찾으려거든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했을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곳은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 중 하나다.

두브로브니크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여행 포인트는 구시가지와 아드리아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산 정상에 오르는 것과 해질녘 베네치아인들이 쌓은 두브로브니크 성곽을 따라 산책하는 것이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교회·수도원·궁전 등이 잘 보존된 구시가지 전체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두브로브니크는 크로아티아어인 ‘두브라바(Dubrava·오크나무 숲)’에서 유래했으며, 예전엔 이 주변이 오크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 박정은씨는 국내에서 회원 수가 가장 많은 배낭여행 전문 사이트 ‘떠나볼까(www.prettynim.com)의 운영자다. 박씨는 활발한 기고와 방송 출연을 통해 자신의 여행담을 소개해 왔다.

여행정보
한국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가는 직항 노선은 없다. 일단 유럽으로 들어간 후 비행기를 갈아타고 두브로브니크 공항으로 들어간다. 오스트리아에서 슬로베니아를 거쳐 수도인 자그레브로 들어간 후 야간버스나 야간기차를 이용해도 된다. 이탈리아에서는 바리에서 페리를 타고 갈 수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숙박업을 겸하고 있다. 레스토랑의 식사요금은 서유럽과 비슷한 수준으로, 저렴한 메뉴가 10∼20유로 정도다. 화폐는 유로화를 사용한다. 영어 사용에도 장애가 없다.
두브로브니크의 공식 사이트는 www.dubrovnik-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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