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일곱째 날의 이야기지만 첫 번째 글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니
처음 읽으시는 분은 위에 글을 먼저 읽어주세요~ :)
 

알베르게(숙소) 정원에 책을 읽으려고 내려가니 이미 만원이다.

며칠 전 길에서 만난 브라질 친구는 "생각을 하러 왔어."라고 제법 심각하게 말하더니
그새 여자친구를 사귀었는지...-_-;  언니에게 한쪽 팔에 팔베개를 해주고
착 달라붙어 누워서 서로 속닥속닥 거린다. 하하. 누가 브라질 사람 아니랄까봐~ ㅎㅎㅎ

또, 다른 쪽에는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있고, 예쁜 언니 두명이 붙어서 사뭇 심각하게 설교를 한다.

"넌 걷는 방법이 잘못되어서 그래. 걸을 때 발바닥을 쿵쿵~하고 땅에 발의 전체면이 동시에 닿지?
 그래서 여기가 아픈거야. 걱정마. 잘 알고 있으니. 우린 르 퓌(Le puy)에서부터 걸어왔다고.
 그래도 괜찮아. 처음엔 모두들 그러니까. 걷는 방법을 익히지 않으면 앞으론 더 아프게 될꺼야."


그러면서 풋크림을 이용해 남자 발을 정성들여 마사지 해준다.

아하하! 저 남자, 무릉도원이 따로 없겠고나~* -.-

예쁜 언니들의 축복어린 발마사지를 받다니...
아마, 발이 하나도 안아플게다. 아님 계속 아프고 싶을 수도. -.-

다시 시작하는 걸음마
이제서야 얘기하지만 걷기 시작한 2~3일 동안엔
이때까지 내가 걷던 걸음걸이가 올바른 것이었는지 시험받게 된다.

마치, 공기와 물의 소중함을 몰랐다 깨닫는 것처럼
몇십년동안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나의 걸음에 대한 화두가 던져진다.

걸음에 문제가 있다면,
갓 걷기시작한 어린아이처럼 다시 걸음마를 익혀야 한다.

당신의 큰 발에, 또는 체력에 만만히 봤다가는
3일도 못가 당신 발은 수포와 고통으로 가득찰테니...

물집(Blister, 영어로 블리스터, 스페인어론 Ampolla, 사전을 찾아보니 '암뽀야'라고 나오는데
현지에서는 그냥 뽀야라고 한다. 철자는 이건가?? -> polla 여튼, 알아두면 유용한 단어)
이 잡힌다면
자신의 걷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자.

양말을 제대로 신고 바르게 걸었다면 물집은 거의 생기지 않는다.
(뭐, 수많은 사람들이 물집으로 고생하고 어떤 알베르게엔 물집만 전문적으로 터뜨려주는 분도 계시다~
 그런 곳엔 알베르게에 ╂ 표시가 있는데, 주로 기부형식으로 운영된다. 안주는 사람도 있지만 1~3유로 낸다.
 난 한달동안 작은 물집 2개가 생겼지만, 대신 무릎과 발바닥이 아팠다. -_-;; )


걷는 방법은 아주 쉽지만, 또 어렵다.

뒷꿈치 먼저 땅 바닥에 닿게해서 발의 중간, 그리고 앞쪽을 순서대로 놓으며
이 원칙을 절대 잊지 않고 계속해서 신경쓰며 꼼꼼히 걷는 거다.

처음엔 신경을 써서 천천히 한발한발 걷다 한시간에 5~6km씩 빨리 걷게될 때도
제대로 적응시킬 수 있다면 당신의 걸음걸이는 일단 합격!

해보시라. 생각보다 쉽지 않다. -.- (해보면 안다)

걸을 때조차 겸손함을 잊어선 안된다.

일곱째 날,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21km
오늘은 6시 50분 출발, 순례자의 길을 걸은 이후 최초로 6시 대에 출발했다. -_-;;;

드디어 좀 많은 사람들과 걸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 6시~6시 반쯤에 출발한 관계로 내가 봤던 사람들은 다 후발주자들.

게다가 걸음봐라, 나른다 날아. 아아, 다리 길이 자체가 틀리다니까...-_-;;;

조금 걷다보면 항상 이전 마을(3~5km)에서 출발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이들은 항상 다를 지나쳐 걸어간다.

주눅들지 말자. 여긴 순례자의 길이지 1등을 목표로 걷는 건 아니라고.

[위의 사진] Bodegas Irache. 포도주가 나온다.

순례자들을 위해 무료로 포도주를 마실 수 있게 해놨다.

술은 못하지만, 그래도 꼭지를 틀었을 때 포도주가 하나도 나오지 않아 서운했다.
(손가락으로 조금 찍어 맛은 봤음. -_- 역시 술 맛은 모르겠고...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먼저 먹는 건 맞는 말인 것 같다. -_-
하지만, 내가 먹을 수 있는 먹이가 아니니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나서 산이 시작됐다. 산 이름은 Villamayor de Monjardin 해발 700m쯤 된다.

[위의 사진] 목적지인 Los Arcos가 16.3km였이니 겨우 3km 걸었을 때다.

[위의 사진] 산에서 보이는 주변 풍경.

산을 넘자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이틀전부터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고, 햇살도 너무 강하다.

 [위의 사진] 앞쪽에 길을 걷는 순례자가 보인다. 앞으로는 계속해서 포도와 밀밭길이다.

 [위의 사진] 양떼도 나타났다.

 [위의 사진] 양은 항상 저렇게 주눅든 모습으로 걷는다. 겁이 많고 소심하다.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도착.
어제의 22.4km에 이어 오늘은 더 적은 21km라 부담이 없었다.
6시 50분에 출발해서 12시 10분 도착했으니 5시간 20분 걸렸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샤워하고 빨래를 한 후 점심을 먹으러 bar에 들렀다.

[위의 사진] 순례자 메뉴(Peregrino menu) 12유로

같은 방 룸메이트였던 프랑스인 델핀이 저녁미사에 함께 가자고 했다.

이 성당은 내부가 동양느낌이 있어 좀 특이한 성당이란다.
미사 때 밖에 성당 문을 열지 않으니(들어와 성당 물건을 훔쳐가는 경우가 많아 요즘은 미사시간에만 오픈하는
성당이 대부분이란다. 불도 미사시간에만 켜서 성당내부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내부를 보려면
가야한단다. 보통 미사시간은 오후 8시. 참석자들은 대부분 순례자들이 많다.

[위의 사진] 왼쪽 사진의 가운데 성모님의 배경, 빨간 부분. 보통 성당에서는 저런 빨간색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성모님도 조금 다르게 생기셨다. 동양인이 내가 보기엔 동양스럽진 않았지만...
 미사가 끝나자 신부님이 순례자들을 축복해 주시고, 교회 내부를 돌아가며 설명해 주셨다. 물론, 스페인어로.

[왼쪽 사진] 미사가 끝나고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으러 사람들이 몰렸다.

머무는 알베르게에서도 도장을 찍어주지만,
길을 걷던 중 지나치는 마을의 알베르게나 성당에서,
이렇게 미사를 드린 후 성당에서도
자신들만의 도장을 만들어 크레덴시알에 찍어준다.

귀여운 할머니 3명이 도장을 찍어줬는데,
흐릿하게 찍히자 호들갑을 떨며 귀엽게 미안해 하셨다. ^^

평범한 하루, 난 점점 순례자가 되어가고 있다.


 2007. 6. 25(2010.2.15 업데이트) pretty chung..:-)

다음 글 읽기 ☞ [순례자의 길10] 여덟째 날, 빈대에 물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 글이 또 올라올까 기다렸는데...^^ 감사해요~~

    2010.02.17 06:29 신고
  2. 홉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니깐요 ㅠㅠ
    저도 매일매일 들어와봅니다 ㅎ

    2010.02.23 20:45 신고
  3. 이성학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까미노 글 읽다가 한가지 알려드리려고 글 남깁니다.
    물집(스페인어로 Ampolla)와 관련된 건데요, 현지에서는 polla로 통한 다는 건 틀린 얘기여서요... ㅋㅋ 아마 누가 장난친 거 같습니다.
    스페인어로 polla라는 뜻은 영어로 penis -_-* 에요 ㅎㅎ
    이거 참고하셔서 나중에 ampolla를 polla로 하는 일 없도록 주의하세요... 민망할테니까 ㅎㅎ
    그럼 이만~

    2010.09.21 23:2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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