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의 호텔이란 이름의 호스텔,

Hotel Espana~


아침식사 시간이 되면
원하는 메뉴를 돈을 내고 주문하면 된다.
(보통 호텔이나 호스텔은 포함된 경우가 많다)

밥을 먹는데, 내 의자를 누가 자꾸 툭툭~ 친다.

"뭐야? -_-+"

하고 돌아봤더니 아무도 없다.

툭툭치는 진동이 바닥에서부터 올라오길래 보니,
이런!!!

거... 거북이닷! +.+

아니, 얘가... 왜 물에 안있고
이렇게 호스텔을 돌아다녀...=_=
.
.
.

육지거북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처음 안 나는,
그때 당시 거북이가 죽을까봐 전전긍긍..=_=

일하는 사람에게 얘기했더니
그냥 두란다. 아.. 그냥...그냥 둬야된다. -_-

거북이는 슬금슬금 기어 이번엔 다른 의자를 향한다.



덜그덕~ 덜그덕~

의자 다리 밑으로 기어들어가려는 거북이..-_-;;

이 사람들도 깜짝 놀라 바닥을 보고
또, 놀란다. ㅋㅋㅋ


거북이가 한마리가 아니었어.

동물들이 모두 함께 있으니 좋았다.
나도, 동물, 거북이도 동물.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 입니다

    2010/03/11 00:08
    • 쁘리띠님  수정/삭제

      일상얘기쪽에 쓰는데... 요즘은 배가 불러서(임신)
      잘 못나가네요~ ㅋㅋ 노래 잘하시는데요? +.+

      2010/03/11 00:36
    •  수정/삭제

      비밀댓글 입니다

      2010/03/11 00:54

◇일이 고되지만, 마더하우스 봉사자들의 표정은 항상 밝다.

세계여행을 떠나기 전 결심한 것이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은 인도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자원봉사로 마무리하겠다고 말이다.

인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콜카타까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콜카타는 5년 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여행자들의 거리인 서더 스트리트도 그대로였고, 낡아빠진 숙소, 심지어 샌드위치 가게까지 그대로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머무는 패러건 호텔의 한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마더하우스의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봉사자 오리엔테이션은 1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마더하우스에서 운영하는 7개 시설에 대한 소개를 듣고 한국 수녀님과의 상담을 통해 일할 곳을 배정받게 된다.

봉사자들의 일상은 단순하다. 오전 6시 정도에 일어나 간단히 세수를 하고, 30분에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숙소를 나선다. 걸어서 무슬림 거리를 지나 마더하우스에 7시쯤 도착하면 식빵 두 조각, 바나나 한 개, 차이(인도의 전통 차)로 아침식사를 하며 다른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식사가 끝나고 종이 울리면 “We have our hope in Jesus…”로 시작되는 노래를 부른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봉사자들이 있으면 생큐 송을 불러주며 축하해 주기도 한다.

이후에 ‘차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셔터문이 열리고 찬란히 쏟아지는 햇빛 속에 봉사자들은 삼삼오오 각자의 봉사지로 떠난다. 필자는 이 시간을 매우 좋아했는데, 빛 속으로 사라지는 봉사자들의 모습이 꼭 날개 없는 천사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필자가 봉사활동을 하던 곳은 프렘단이라는 곳으로, 병든 성인 남녀를 수용하는 곳이다. 며칠에 한 명씩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이지만, 많은 봉사자들이 선호하는 ‘칼리가트’(성인 환자들이 수용된 곳으로 병세가 심각한 사람들이 많다. ‘죽음의 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에 가려져 봉사자의 일손이 항상 부족한 곳이다.

프렘단은 기찻길 옆의 빈민촌에 있는데, 문을 열면 환자들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 “굿모닝 안티.”(안녕, 이모: 여자 봉사자들은 모두 안티라 불린다)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르고 일할 곳으로 가면 산더미 같은 빨랫감들이 우리를 맞는다. 겹쳐 놓은 벽돌을 의자 삼아 빨래와의 전쟁을 끝내면 간식 시간이 주어진다. 평범한 비스킷과 차이지만, 이 맛을 그리워하는 봉사자들이 많다.

간단한 휴식이 끝나면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배식을 한다. 간혹 음식이 모자라기도 하기 때문에 골고루 잘 배분되도록 신경 써야 한다. 설거지까지 끝내면 이날의 봉사활동이 끝난다.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씻고 점심을 먹고 각자 시간을 보낸다.

◇ 콜카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릭샤라는 인력거.

봉사활동이 익숙해진 어느 날 아침, 혼자서 마더하우스로 걸어가고 있었다.
필자의 느릿한 발걸음과 비슷한 속도로 가는 동양 남자가 있어 말을 걸었다.

“Hi, Are you going to Mother House?(안녕하세요, 당신도 마더하우스에 가고 있나요?)”

“Yes, I’m going to there.(네, 저도 그리로 가고 있어요.)”

“Where are you from?(어느 나라 사람이죠?)”

“I’m from South Korea.”

“한국사람이셨어요?”


머리형과 옷차림이 특이해서 일본 사람인 줄 알았더니 한국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신유철. 1년간의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아시아 여행을 하는 중이다.
보통은 위에 소개한 대로 수녀님과 상담해서 봉사지를 선택한 후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는 등록도 하지 않고 일주일에서 열흘씩 7곳 모두를 차례로 돌며 일을 하고 있었다.

◇ 2006년 10월 콜카타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한국팀을 응원하는 유철과 필자.(뒷줄 가운데와 오른쪽)


말도 별로 없고 한국 봉사자 그룹과 조금은 떨어져 지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이메일을 교환해 연락을 하게 되었다. 5개월 반의 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복학해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더니, 얼마 전에 S중공업에 취직이 되었다.

부산에 갈 일이 있어 그가 일하는 거제도에 들러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다. 마더하우스에서 일하면서 뭘 느꼈냐고 물었더니 인간은 결국 누구나 한번은 죽고, 인생은 무상하다는 것을 배웠단다. 그래서, 항상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그의 모습이 참 예뻐 보인다.

“행복이라… 그럼, 여행할 때랑 지금이랑 언제가 더 행복해?”

“여행할 때가 더 행복하긴 하지만, 힘들게 취업 준비 중인 친구들에 비하면 안정된 직장을 가진 지금도 행복해요.”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마더하우스의 봉사활동을 준비하던 그 시간에 이제 그는 직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여행자는 항상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그 역시 올여름 이집트 여행을 준비 중이다.

콜카타(Kolkata)
인도 서벵골주의 주도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1772년부터 1911년까지 인도의 수도이기도 했다. 콜카타라는 이름은 인도의 죽음과 파괴의 여신인 칼리에서 나왔다. 1690년 영국인들이 처음 도착한 곳이 칼리카타(Kalikata, ‘칼리의 땅’이란 뜻)라는 마을이었는데, 여기에서 콜카타(Kolkata)란 이름이 지어졌다. 관광지로는 칼리 신전(Kali Temple)과 영국군의 요새로 사용되었던 포트 윌리엄(Fort William), 빅토리아 여왕의 추모 기념관인 빅토리아 메모리얼(Victoria Memorial),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시인 타고르의 자취를 볼 수 있는 타고르 하우스(Tagore House) 등이 있다.

여행정보
한국에서 콜카타로 가는 직항은 없다.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싱가포르항공과 태국 방콕을 경유하는 제트 에어웨이 인디아(Jet Airways India), 타이항공이 있다. 인도는 사전 비자가 필요하며 인도대사관의 비자 대행사에서 받을 수 있다. 6만5000원의 인지대와 8690원의 비자 수수료가 필요하다. 신청하면 다음날 받을 수 있다. 화폐는 루피(Rupee)를 쓰는데 1루피는 26원 정도다. 저렴한 호텔의 도미토리는 80∼100루피 하는데, 콜카타에서 깨끗한 숙소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10∼30루피면 서민적인 식사를 할 수 있고, 차이는 3∼5루피정도 한다. 깨끗하고 잘 갖추어진 음식을 먹고 싶다면 100루피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 인터넷은 1시간에 15∼20루피다.

ps : 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글을 읽어주세요. :) --> [인도, 캘커타] 마더 테레사 하우스의 하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애기를 낳을 때가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요즘 사놓고 못읽은 책들을 거실 선반에 주르륵~ 늘어놓고
다 읽으면 책장에 꽂기를 반복하고 있다.

밖에 잘 나가지 않으니(지하철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함)
진도가 잘 안나가 아직 열권도 넘게 남았는데
과연 출산 전까지 다 읽을 수나 있을까 걱정 중. ㅠㅠ
(산후조리원에서 책 읽을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애기 젖주고 산후조리하느라 바쁘기도 하지만,
몸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책 읽으면 눈 나빠진다고 읽으면 안된단다. ㅠㅠ)


'끌림'은 골드미가 예전에 읽어보라고 추천해줬던 책인데(한 2년전..? -.-)
정말 늦게도 읽었다. -_-

저자인 이병률이 시인이어서인지 다른 여행작가들과 글이 다르다.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감성에 듬뿍 젖어있다.

게다가 사진은 어쩜 이리도 잘 찍으셨는지,
그냥 '잘'찍은 사진은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감성가득한 사진은 참으로 오랜만인 듯.
글보다 사실 사진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더 좋았다.

67년생으로 70여개국을 여행했다니,
정말 방랑하는 시인이 맞는 듯.

오랜만에 나보다 더 여행을 많이한 사람을 만났다.

모로코, 티벳
그리고 오늘 꿈에 나타난 네팔.

아직 세상엔 갈 곳이 너무 많고나...:)

나도 5~10년 후면,
세계여러나라에 대한
이런 산문 형태의 책을 쓸 수 있기를...

끌림: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저 | 랜덤하우스코리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카를로스 가르델 집 주변에는 그의 얼굴을 그린 많은 벽화와 악보가 그려져 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페루나 볼리비아 등 남미와는 또 다른 유럽풍의 활기찬 분위기다. 도시 분위기에 조금 익숙해지자 유독 한 남자의 얼굴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길거리와 음반매장 등 곳곳에서 중절모를 쓰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인상적인 그의 이름은 카를로스 가르델. 그는 탱고의 황제였다.

우리는 ‘탱고(Tango)’라 부르지만 현지에서는 ‘땅고’라고 부른다. 아르헨티나는 탱고의 본산지다. 가르델은 ‘20세기 남미가 낳은 전설의 가수’로 추앙받는 사람이다. 그의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진다면 영화 ‘여인의 향기’나 ‘트루 라이즈’를 떠올리면 된다. 그는 그 영화들에서 소개된 유명한 탱고음악 ‘포르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를 부른 가수이다.

<영화, 여인의 향기 중>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그가 살던 집과 묘지 등이 있는데 무료 투어가 있어 자세히 들어보기로 했다. 투어는 영어로 진행되었고 카를로스 가르델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그의 동상에서 시작했다.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가 지긋했는데 유독 한 명 어려보이는 친구가 있어 말을 걸었다. 영어 투어라 당연히 외국인인줄 알았는데 아르헨티나인으로 관광학과를 다니는 여학생이다. 이름은 나탈리. 공부도 할 겸 투어를 들으러 왔단다.

그녀는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20여일동안 영어로 이야기를 나눈 유일한 아르헨티나인이 되었다. 참고로 중남미를 여행할 계획이 있는 사람은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스페인어를 익혀서 가는 것은 필수다.

카를로스 가르델은 1887년(혹은 1890년)에 태어나 동상이 세워져 있는 아바스토 시장(Abasto Market) 근처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성인이 된 후 주로 바와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을 했었는데 마르티노와 호세 라사노와 트리오로 노래를 불렀다. 1917년 ‘미 노체 트리스테(Mi Noche Triste, 나의 슬픈 밤)’ 음반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데 당시 10만장이나 팔렸다고 한다.

 <까를로스 가르델, 미 노체 트리스테(Mi Noche Triste, 나의 슬픈 밤)>
이후 칠레 우르과이 브라질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에 이어 스페인 프랑스, 미국에서도 공연하며 탱고의 황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1935년 순회공연의 일환으로 콜롬비아에 갔다가 메데진(메데인·Medellin)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514곡의 탱고를 비롯해 총 770여곡의 노래를 작곡했으며 가수와 영화배우로 눈부신 활약을 했다.

◇ 카를로스 가르델의 집. 현재는 그의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카를로스 가르델 지하철역, 카를로스 가르델 거리, 동상, 길거리의 수많은 벽화들, 그가 작곡한 음악을 악보로 그려놓은 건물 등 가르델이 사망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거리 곳곳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은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나탈리, 카를로스 가르델과 탱고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음∼. 그렇게 잘 알고 있지는 않지만 카를로스는 탱고에 있어 전설적인 인물이야. 탱고는 원래 춤이 중심이었던 장르지. 춤을 추는 데 필요한 보조 수단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카를로스는 탱고에 있어 음악이 중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독립시켰어. 그러니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 사건이라 할 수 있지. 내 부모님들도 열렬한 팬이셔.”

“젊은 사람들은 어때? 젊은 사람들도 그의 음악이나 탱고를 좋아해?”

“아니, 우리들은 레게나 힙합, 팝과 같은 음악을 좋아해. 젊은이들은 탱고가 옛날 노래라 치부하는 경향이 심해. 주로 어른들이 탱고 음악을 좋아하시지. 사실, 탱고를 추는 사람들도 나이 드신 분들이 많고 젊은 사람들은 거의 추지 않아.”

탱고가 아르헨티나의 젊은이들에게는 흘러간 음악일지라도 관광객들에게는 이 나라의 역사이며 문화다.

◇ 투어에서 만난 나탈리와 함께.


그날 저녁 탱고바에서 탱고 공연을 보러갔다.
한국에서 살사를 배우던 중에 탱고를 추는 친구를 따라 탱고바에 가본 적이 있다.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 보니 달라도 너무 달랐다. 탱고바에서는 카를로스 가르델의 감미롭고 감성이 뚝뚝 떨어지는 음악과는 또 다르게 긴장감이 넘쳐흐르는 음악이 흘렀다.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움직임하며 역시 본토의 느낌은 다르구나 싶어 다음 날 당장 탱고 클래스를 신청해 배워보기도 했다.

매년 그가 사망한 6월 24일이 되면 전 세계의 추모객이 그를 기억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한다.

“Gracias Por La Musica y por todo.(당신의 음악과 그리고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오래전 사망한 카를로스 가르델을 기리며 2001년 그의 묘지에 누군가가 남긴 글이다. 죽은 후에도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은 영광스럽고 가치 있는 일이다.

머나먼 한국의 서울에서 카를로스 가르델의 CD를 들으며 언젠가 그의 음악에 맞춰 누군가와 함께 탱고를 출 수 있는 날을 조금 상상해봤다.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아르헨티나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아르헨티나의 인구 3분의 1인 1300만명이 살고 있다. 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남미 대부분의 도시처럼 스페인의 식민도시로 건설돼 18세기에는 식민지 수도로 발달했다. 탱고 음악과 춤의 본산지로 보카(Boca)지구에 가면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볼 수 있다. 유명한 사람으로는 세간의 평이 엇갈리는 전 대통령 부인인 에바 페론과 국민 영웅인 마라도나가 있다. 축구에 열광하는 국가 중 하나이며 나이트라이프가 매우 발달해 있다.

여행정보
한국에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들어가는 직항은 없다.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을 거쳐야 하며 최소 1회 이상의 경유해야 한다. 미국을 경유하는 대한항공 같은 경우는 항공요금만 500만원대로 매우 비싼 편이다. 2회 경유를 하는 에어캐나다와 영국항공은 170만원 이상으로 다른 대륙의 항공권보다 비싸다. 하지만, 입국 시 90일간은 비자가 필요 없고 현지 물가는 매우 저렴한 편이다. 따라서 여행 기간 동안의 총 비용은 유럽여행을 하는 것보다 저렴하거나 비슷한 비용으로 남미여행을 할 수 있다. 화폐는 페소(Peso)를 쓰는데 1페소는 약 330원 정도다. 저렴한 호스텔은 20페소, 식사는 10∼20페소 정도로 저렴하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는 세계 최고의 스테이크를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데 15∼20페소 정도 한다.

<세계일보에 올려진 글 보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lucidhun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탱고 음악 좋아해서 아르헨티나는 항상 가보고 싶던 곳 중 한 곳이었는데, 이 글보니까 더 가고싶네요. ㅎㅎ

    2010/03/10 14:50
    • 쁘리띠님  수정/삭제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여행지 블랙홀 중 한 곳으로
      다들 떠나지 못하는 도시랍니다~ :)

      정말 너무 좋고, 고기도 너무 맛있고,
      또 가고싶어요. ㅠㅠ

      2010/03/10 15:22

꺅~! H&M 아기옷 :)

소소한 일상/쁘리띠의 수다 2010/03/09 17:50 Posted by 쁘리띠님
얼마전에 제가 한국에 H&M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올린 적이 있는데
명동에 H&M 오픈 소식~ +.+

어제 출판사에 간 김에 겸사 명동의 H&M에 들리게 되었어요~ :)

출판사의 담당 기획자가 요즘 H&M 가방이 유행이라던데
저의 관심은 H&M의 가격비교와 아기옷이었죠~ -.-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H&M은 비싼 브랜드가 아니거든요,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품질의 옷을 파는 스웨덴의 브랜드인데
여름이나 겨울세일 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저렴해집니다! +.+

저도 유럽여행할 때 종종 옷을 사입기도 했고,
세일때는 더욱 적극적으로 들렀던 가게이기도 합니다. :)

가격대를 보니까, 남자 폴로티셔츠가 14,000원쯤으로
괜찮은 가격이기는 하더라구요~

4층까지 있는데, 4층은 신생아~아이들옷 코너로 한산하더군요. ^^

하트 뿅뿅에 반해 옷을 하나 골랐습니다. :)

3개 반팔 면 옷이 19,000원
0~2개월부터 1~2년생까지 있던데
제가 산 건 2~4개월용이었어요~

엄마는 옷 샀다가 애가 너무 부쩍 커버리면 못입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너무 예뻐서...--;;;

펼쳐보면 이렇게 생겼어요~ :)


저는 하트 뿅뿅이랑 하늘색 땡땡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 샀어요~ :)

집에 돌아와 H&M 가격비교겸 유럽 사이트를 찾았는데,
완전 똑같은 품목은 아니지만 이렇게 생긴 반팔 3벌이 9.95유로.

한화로 하면...요즘 환율이 1유로=1,600원 정도니까(와~ 많이 내렸네요! +.+)
약 16,000원쯤 하네요~

그러니 3천원쯤 더 비싼거군요~ +.+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듯.
한국에 들어와 2~3배 비싼 품목들이 많으니까요~

주변 친구들의 아이에게 선물할 때
좋은 품목이 될 것 같습니다. ^^

어른들 것도 봤는데 딱히 제 마음에 드는 건 없었지만,
제가 임신해서 그런지 아이들껀 예쁜게 많았어요~ :)

옷을 생각하면 역시 아들보다는
 딸키우는 재미가 쏠쏠할듯~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wonnie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니~ 진짜 저만한 아기 옷은
    - 내 아이의 싸이즈와
    - 내 아이가 몇월생이고, 저 옷을 몇월에 입을 수 있고
    등등등 진짜 면밀하게 관찰해야 해요.

    저도 막 계산연구해서 산 저런 옷 결국 못 입힌거 있어요. ㅠ.ㅠ

    그나저나 H&M 옷 예뻐요. 질도 좋구요. 저도 가 보고 싶네요~
    베넷저고리니 뭐니 하지만, 저는 저런 스타일의 옷이 제일 좋더라구요.
    아기 배도 잘 덮어주고 하니...

    진짜 이쁘다.
    @.@

    2010/03/11 06:56

◀ Prev 1 2 3 4 5  ... 43  Next ▶

카테고리

쁘리띠의 글 전체보기 (213)
쁘리띠의 월요편지 (14)
공지&이벤트 (11)
떠나볼까 정모&번개 (1)
이야기사진 (0)
여행이야기 (99)
여행준비 (2)
여행가서 듣기좋은 노래 (1)
해외에서 만난 우리나라 (4)
다음엔 어딜갈까? (2)
소소한 일상 (79)
Tatter & Media textcube get rss
쁘리띠님'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atter & Media.